[뉴스토마토 차철우 기자] 북·미 회동의 불씨가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이 북한과 대화 재개의 물꼬를 트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북·미 간 담판을 위한 판이 어느 정도 마련된 겁니다. 다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여전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북·미 대화 개최 여부를 가를 '마지막 키'로 평가받습니다. 지난 2019년 이후 약 6년 만에 북·미 대화가 전격 복원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립니다. 전문가들은 북·미 회동 전망에 대해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실제 성사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판문점 견학 '중단'에 조셉 윤 24일 '이임'
통일부는 20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특별 견학이 중단됐다고 발표했습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통일부가 진행하는 판문점 특별 견학은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유엔(UN)군 사령부(유엔사)도 최근 통일부에 오는 27일부터 11월 초까지 판문점 특별 견학 신청을 받지 말라는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유엔사는 판문점 특별 견학을 지난 5월부터 재개했는데요. 이를 갑자기 중단한 겁니다.
유엔사는 이번 특별 견학 중단에 대해 "가정적 상황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겠다"면서도 "판문점 JSA 구역 출입 요청은 안전 확보 및 원활한 조율을 위한 절차에 따라 처리 중"이라고 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 방문 전 케빈 김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부차관보를 오는 24일 이임하는 조셉 윤 미국대사대리 후임으로도 임명할 예정입니다. 김 부차관보는 지난 2019년 판문점 회동 당시 북·미 정상회담 실무를 총괄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실은 미국 정상의 일정에 대해선 알 수 없는 영역이라며 선을 그었는데요.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북·미 대화를 지지하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유엔사의 조치나 일정에 대해서는 확인해드릴 사항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현재 이 자리에서 추가로 말씀드릴 내용은 없다"고 전했습니다.
북·미 대화 가능성에 대한 시그널(신호)은 외신에서도 제기됐습니다. 앞서 <CNN>은 18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를 방문하면서 김 위원장을 만나는 문제를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이 비공개로 논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다만 "(북·미 회담을) 개최하는 데 필요한 실무 계획 논의가 진지하게 이뤄진 건 아니고 북한과 소통은 없다"고 했습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판문점 '깜짝 회동'을 염두에 둔 행동으로 해석합니다. 지난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즉흥적으로 정상회담을 제안, 판문점 남측에서 회동을 한 바 있습니다. 당시 북·미 대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김 위원장에게 제안, 32시간 만에 전격 성사됐습니다.
이번 APEC 정상회의 계기 북·미 대화도 상황에 따라 급물살을 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겁니다. 당시 북한과 미국은 유엔사와 북한군 직통 전화로 양국 간 대화 의사를 교환했는데요. 양측 실무진이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접촉하는 등 실무 준비가 이뤄졌습니다.
지난 2019년 판문점에서 회동을 가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워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사진=노동신문.뉴시스)
북 의향이 '마지막 키'…전문가 "가능성 작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20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과 정상회담 당시엔 "올해 김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김 위원장도 지난달 22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미국이 비핵화 집념을 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해 우리와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개인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좋은 추억이 있다"고 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발언 이후 미 백악관은 같은 달 3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전제 조건 없이 대화하는 데 여전히 열려있다"고 화답했습니다. 이후 김 위원장은 10일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한국과 미국을 겨냥한 발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북·미 대화 개최 의향은 김 위원장에 달린 것으로 분석됩니다. 김 위원장은 북·미 대화와 관련해 최고인민회의 연설 이후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북한이 APEC 계기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입니다. 특히 북한이 꾸준히 요구해온 '핵보유국 인정' 여부에 대해 미국 측은 호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동시에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미국과 대화할 명분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전문가들도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평가했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이날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가능성은 있지만 크지는 않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실무 협의나 경호·장소 조율 등 징후가 보이지 않는데 실제 성사 가능성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행보에 대비한 움직임에 가깝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지도자 이미지 제고라는 기회가 있지만, 북·중·러 관계나 남북 대화 압박 등 부담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고유환 전 통일연구원장은 "(북·미 대화가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현실화 가능성은 작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연내 회동 의사를 밝힌 반면 북한은 핵 문제를 전제로 하지 않는 한 만남은 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남은) 시기적으로 APEC 정상회의 전후가 적절하다"며 "사전 실무 작업과 친서 교환 등 준비가 필요해 단순 '번개 회동'으로는 큰 의미가 없고 실제 회동 성사는 양측의 조건과 양보안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