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썩"
지난 월요일, 출근길 지하철에서 한 정거장 정도 지났을까요. 서 있는 제 옆, 옆에서 이런 소리가 났습니다. 20~30대로 추정되는 여성 승객이 쓰러지는 소리였습니다. 그 주변에 있던 승객들은 "어머, 어머"라고 했기에 이목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승객들은 그 여성을 흔들어 깨우며 "이보세요, 괜찮아요? 정신 차리세요!"라며 쓰러진 승객의 팔과 다리를 흔들었습니다. 앉아 있던 한 승객은 그 즉시 일어나 겨우 정신을 차린 그 승객을 자리에 앉혔습니다.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옆에 있던 남성 승객 두 분의 말다툼이 이어졌습니다. 본인이 70대라고 주장하는 남성 승객과 40대로 추정되는 남성 승객이 말다툼의 주인공이었습니다. 70대 남성 승객은 "젊은 놈이, 너 몇 살이야! 너희 부모가 불쌍하다!"라면서 '어른 공경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었는데요. 참다 못한 40대 남성 승객은 "사람이 쓰러졌는데 술을 얼마나 처마셨냐고 말하는 게 사람이야? 그게 말이야? 사람이 죽을 뻔했어!"라고 말했습니다.
출근길에 쓰러진 사람을 보고 "전날 술을 먹었다"라고 말하면서 "어른 공경을 안 한다"는 인식. 이런 인식을 가진 분들은 우리 사회가 '과로사회'로 불리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질병관리청은 18일 '심장정지 발생 원인 및 위험 요인 규명 추적조사' 연구용역 결과를 통해 "근무 환경과 근무시간이 급성 심장정지 발생과 관련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하루 11시간 이상 근무할 경우, 일반적인 근무시간(7~9시)과 비교해 급성심근경색 발생 위험이 약 1.63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과로사는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게 업계 의견입니다. 과로사는 보통 뇌혈관 질환이나 심장질환으로 인해 돌연사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업무상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 질환을 판단하는 기준은 △장시간 누적 업무로 인한 만성적 스트레스 △단기간의 업무 폭증으로 인한 단기적 스트레스 △갑작스러운 신체 부담으로 인한 급격한 스트레스 등 세 가지로 나뉩니다. 그런데 이 기준과 함께 나이와 기저질환 등을 고려하기 때문에 산재로 인정받으려면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면, 과로로 돌연사해도 회사는 책임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현실이 아주 퍽퍽하다는 얘기입니다. 아침에 쓰러졌던 그분은 출근을 포기했을까요? 아마 출근했겠지요. 갑자기 쓰러졌지만 공식적인 문서로 된 증거가 없고, 왜 쓰러졌는지 이유가 명확치 않으니까요. 만약 70대 남성 승객 같은 분이 쓰러진 분의 상사라면, 어쩔 수 없이 일을 해내야 했을 겁니다.
살기 위해 일하는데, 일하다 보면 죽을 수도 있다는 현실.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쓰러진 승객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고 흔들어 깨우던 시민들과 당사자 대신 목소리를 내준 남성 승객을 생각하며 다시 희망을 가져봅니다. 오늘도 모든 직장인, 노동자분들의 안녕을 바라겠습니다.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추석 휴일 없는 쿠팡을 규탄한다며 '최소 3일 휴무 보장' 요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