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이재명정부는 올해 6월과 9월, 연이어 다주택자를 겨냥한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갭투자를 차단하고 가계대출 총량을 줄이는 것이 핵심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투기 수요 억제와 주택 가격 안정이라는 순기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시장 안팎에서는 오히려 실수요자를 옥죄고 주택 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다주택자가 사라진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표면적으로는 집값 거품이 빠지고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 기회가 확대되는 긍정적 효과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투기 목적의 매입 수요가 줄면서 가격 안정이 가능해지고, 자산 불평등 완화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주택이 '투자'가 아닌 '거주'라는 본연의 의미를 되찾는 셈입니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역설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다주택자가 빠져나가면 임대 시장의 공급 기반이 크게 흔들립니다. 전세·월세 물량이 줄고 가격은 급등할 수 있습니다. 공급 부족은 세입자의 주거 불안을 키우고, 결국 무주택자들이 매매 시장으로 몰리면서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습니다. 이는 정부가 의도한 정책 목표와 정반대의 결과입니다.
이미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되고 월세 가격도 전세 수준으로 오른다는 불안감이 시장에 만연해지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임대차 거래 중 신규 계약 기준 전세 비중은 7월 52%로 지난해 같은 기간(59%)보다 7%p 낮아졌습니다. 같은 기간 월세 비중은 41%에서 48%로 7%p 상승했습니다.
정부 부동산 대책에 따라 은행들이 전방위적으로 금리 인상 압박을 받으면서 주담대 금리를 내리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미 대출을 받은 차주들은 매달 내는 이자가 많아지고 새롭게 집을 구하는 신혼부부 등 실소유자들도 4% 초반대에 대출을 받으면서 이자 부담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역 불균형 문제도 심각합니다. 다주택자들은 지방 주택에 투자해 임대 물량을 늘리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탈은 지방 부동산 시장을 위축시키고, 수도권 집중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건설 시장도 타격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투자 수요가 빠지면 신규 공급은 둔화되고, 장기적으로는 노후 주택 문제까지 겹칠 수 있습니다.
다주택자 규제는 분명 필요합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규제 일변도는 시장의 순기능마저 갉아먹을 수 있습니다. 투기를 억제하는 동시에 임대 공급과 신규 주택 공급이 함께 유지될 수 있도록 균형 잡힌 접근이 요구됩니다. '다주택자의 역설'은 결국 공급과 규제가 동시에 맞물려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규제를 위한 규제'가 되지 않길 바라봅니다.
서울 중구 남산에서 서울 시내 아파트가 바라다보인다. (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