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티브 잡스 시어터에서 울려 퍼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달리, 애플을 향한 시선은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9일(현지시간) 열린 아이폰17 발표회는 한때 '혁신의 대명사'라 불리던 애플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드러난 무대였습니다.
5.6㎜라는 얇은 두께, 개선된 카메라 성능. 기술적 완성도는 분명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75분 동안 이어진 발표에서 소비자들이 기대했던 건 이런 점진적 업그레이드가 아니었을 텐데요. 인공지능(AI) 시대 속에서 애플이 어떤 비전을 제시할지, 또 어떤 독창적 접근을 내놓을지가 궁금했던 것이죠.
하지만 정작 자사 AI 기능인 '애플 인텔리전스'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애플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를 반영합니다. 최근 애플의 AI 핵심 인재들이 잇따라 오픈AI, 구글, 메타로 이탈하고 있다는 사실은 업계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과거 애플은 단순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필요를 발견하고 새로운 경험을 창조하는 기업이었습니다. 아이폰이 그랬고, 아이패드가 그랬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외치던 "한 가지 더(One more thing)"라는 마법 같은 순간들이 애플을 특별하게 만들었죠.
그러나 지금의 애플은 더 이상 시장을 선도하기보다 따라가는 모습에 가깝습니다. AI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앞에서 애플은 게임 체인저가 아니라 뒤늦게 참여하는 플레이어로 비춰집니다.
물론 애플의 저력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막강한 생태계와 브랜드 파워를 갖추고 있으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통합 능력은 독보적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기존 강점만으로 AI 시대의 주도권을 지켜낼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애플이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 파크 내 스티브 잡스 시어터에서 공개한 '아이폰 에어'.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