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이종 사업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과정에서 은행권에만 유독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형평성 논란이 업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동일한 제도임에도 은행은 다양한 신사업을 직접 시험할 기회를 얻는 반면, 카드사·보험사·핀테크 기업 등은 협력사 연결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혁신금융서비스는 법령 개정이나 별도의 인허가 절차 없이 신사업 모델을 일정 기간 시험할 수 있도록 하는 시범사업 성격의 제도입니다. 지정에 성공하면 사업자는 해당 기간 동안 수익성·실효성을 가늠해보고 정식 부수업무로 승격할 기회까지 얻게 됩니다. 사실상 규제 샌드박스의 대표적 제도로 꼽히며, 금융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먹거리를 시험해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제도가 은행권에만 지나치게 열려 있다는 점입니다. 대표적 사례가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서비스 '리브엠' 입니다. 2019년 말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 리브엠은 은행업과 직접적 관련성이 떨어지지만, 통신과 금융의 융합이라는 명분 아래 인가를 받아 예비 사업을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KB금융 계열사인 KB캐피탈이 운영하는 중고차 거래 플랫폼 'KB차차차'도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통해 중고차 판매업에 진출했습니다. 신한은행도 자체 공공배달앱 '땡겨요'를 서비스하며 생활 밀착형 플랫폼 사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반면 카드·보험업권의 사정은 다르게 흘러갑니다. 카드사는 데이터 기반 마케팅·생활 편의 플랫폼과 연계하려 해도 직접 사업으로 지정받기보다는 제휴사 연결이나 아웃링크 방식으로만 가능했습니다.
보험사 역시 헬스케어·통신·모빌리티 등과 협력 사례는 늘고 있으나, 직접적인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핀테크 기업도 기술과 아이디어는 풍부하지만 제도적 문턱을 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 큽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은 금융당국의 제도 실험에서 항상 중심에 서 있다 보니 규제 샌드박스 혜택을 사실상 독점하는 상황"이라며 "동일 제도 아래 업권별로 잣대가 다르게 적용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카드·보험·핀테크 업권도 충분히 금융과 비금융의 융합을 시도할 역량이 있는데, 은행만 직접 사업화를 허용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꼬집었습니다.
결국 문제는 본업과의 '관련성' 기준에 대한 해석 차이로 보입니다. 은행의 알뜰폰, 중고차, 배달앱은 은행 본업과 직접 연결되기 어렵지만 혁신금융서비스라는 명목으로 허용됐습니다. 반면 카드사나 보험사가 유사한 시도를 하면 '본업과 무관하다'는 이유로 제동이 걸렸습니다. 당국이 융복합 기반의 혁신 금융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업권별 문턱을 달리 세우는 모순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향후 과제는 제도의 공정한 적용입니다. 당국은 금융과 비금융 융합을 장려하겠다고 수차례 밝혀왔지만, 실제 사례는 은행 위주로 쏠려 있습니다.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과정에서 업권별 특성을 고려하되, 최소한 동일한 기준과 절차를 보장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이러한 불균형이 해소돼야 카드·보험·핀테크사도 새로운 시도를 통해 금융권 전반의 혁신에 한층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뉴시스)
신수정 기자 newcrysta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