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어느 분야에서든 유행이란 건 있겠죠. 적게는 수십에서 수백, 많게는 수천에서 수십만까지 같은 경향성을 추구한다는 게 가능한가 싶다가도 대중 매체에서 같은 스타일, 비슷한 내용이나 흐름이 자주 관찰되면 유행의 실재를 몸소 체감하게 됩니다.
신약개발에서도 유행은 있습니다. 국산신약이라는 이름으로 허가받는 후보물질이 늘어날수록 제약바이오 강국으로 향하는 길은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연내 국산신약 40호 허가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죠.
39개나 되는 국산신약 중에는 글로벌 제약사가 만든 신약 대비 효능이 우월한 약도, 앞으로 시장점유율이 기대되는 약도 있습니다.
한 해에도 기술수출이 몇 건씩 발표되는 현재 신약개발 성과는 외견상 탄탄대로를 걷는 듯 보입니다. 외견상 그렇다는 것은 사실 속을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뜻입니다.
한국의 신약개발, 정확히는 한국 기업들의 신약개발 내실이 탄탄하지 못한 원인은 여럿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유행 좇기라고 생각합니다.
옷부터 화장품, 헤어스타일까지 유행이 있으니 신약개발 구도에서도 유행이 없을 순 없죠. 신약개발 과정에서 생긴 유행이란 그만큼 미충족 수요가 높다는 뜻일 테니 유행 자체를 탓할 일도 아닙니다. 후보물질 탐색부터 전임상 연구 단계까지 어느 정도 데이터가 쌓였고, 시장성도 충분하다는 판단하에 여러 기업이 달려들면서 유행처럼 보이는 일일 겁니다.
문제는 무작정 유행에 편승하는 기조입니다.
우리 산업계에선 한동안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약개발이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그에 맞는 적응증을 탐색하는 과정에 AI를 접목해 신약개발 기간을 줄이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지금처럼 AI가 활성화하지 않았던 201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신약개발을 위한 AI 활용이 늘어났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AI로 신약을 개발했다는 국내 기업 사례를 찾기 힘듭니다. 어느 기업이 어느 정도 수준의 AI 기술력을 보유해 물질 발굴과 적응증 탐색을 얼마나 잘 마쳤는지 알기도 어렵습니다.
또 다른 신약개발 유행은 적응증을 중심으로 생겨납니다. 일례로 비알콜성지방간염(NASH)이 있습니다. 길리어드, 노보노디스크처럼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해외 기업들이 NASH 치료제 개발에 착수하자 국내 기업들도 각자 가진 후보물질을 앞세워 연구에 착수했고, 개발 성공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해외 기업들이 시작한 신약개발 여정에 뒤늦게 동참하는 일이 지탄받을 일은 아닙니다. 후발주자로 참전해도 좋은 후보물질로 임상 연구를 잘 진행해 허가까지 받는다면 오히려 쌍수를 들고 반길 일입니다. 신약개발 확률은 높게 봐줘야 10%쯤 되니까요.
대신 특정 작용기전이나 적응증 연구가 활발하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데이터 없이 도전장을 내미는 건 지양해야 합니다. 뚜렷한 목적 의식 없는 유행 좇기는 변죽만 울릴 여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에 기반을 둔 글로벌 기업 사노피가 세계 어디서든 인정받는 백신 강자가 된 건 그만큼 백신에 집중했다는 반증입니다. 사노피가 백신에 바친 시간만 무려 100년에 달하죠. 우리 산업계에도 설립된 지 100년이 넘는 기업이 있긴 합니다. 다만 치료제든 백신이든 한 우물만 100년을 판 곳은커녕 50년간 집중한 곳도 찾기 어렵습니다.
돌고 도는 유행이라지만 휩쓸리듯 동참한 유행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돌아오길 바라기보다 언젠가 성공할지도 모르는 뚝심 신약개발이 낫지 않을까요.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