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을 앞뒀을 때 '미국인들은 전 세계가 자기네 나라 걱정한다는 걸 알까'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괴팍한 행보를 보인 사업가가 세계 최강국으로 꼽히는 미국 행정부 수장으로 취임하는 데 대한 과장 섞인 우려라고만 이해했습니다.
두 번째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주변국 영토를 탐내고, 심지어 우방국인 캐나다에게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라고 했을 때 우스갯소리가 현실감을 얻을 수 있다는 짐작을 어렴풋이 했습니다.
짐작을 확신으로 바꿔준 건 거의 모든 국가를 상대로 벌인 관세 협상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 관세 부과 청사진은 오늘 실현될 예정이었습니다. 25%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이 핵심이었죠. 한국은 하루 전인 지난달 31일 미국 쪽과 마주 앉아 상호관세를 15%로 내리기로 합의했습니다.
상호관세가 유럽연합(EU), 일본과 같은 15%로 정해진 점은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받습니다. 적어도 주요 주변국보다 높은 관세로 협상을 끝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협상을 잘 마쳤을 뿐입니다. 한미 양국이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무관세로 수입과 수출을 하기로 한 약속이 깨진 점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절대적 성공이라고 보기엔 어렵습니다.
지난 2012년 3월15일 발효된 한미 FTA에는 산동물부터 예술품·골동품 등 97개 제품군을 무관세로 수입하고 수출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한미 FTA 발표 약 한 달 전인 2012년 1월31일 '한미 FTA 이행에 따른 효과'라는 보고서를 내고 "이 세상에 어떤 제도건 100% 장점만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면서도 미국 시장 선점, 산업 경쟁력 강화 등을 FTA 체결이 가져올 긍정적 효과로 분류했습니다.
국가 간 협정인 FTA가 발효 약 13년 만에 사실상 깨진 장본인은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광인 한 사람이 FTA를 물거품으로 만든 겁니다.
양국이 기나긴 협상을 통해 체결한 FTA가 트럼프 대통령의 광인 모드로 물거품이 된 이상 다른 약속도 없던 일이 될지 걱정입니다. 관세 협상을 빌미로 방위비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가져오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입니다.
FTA 내용을 전면 부정하는 이번 관세 협상 결과가 트럼프 대통령 퇴임 뒤 정상으로 되돌아갈지는 미지수입니다. 지금이야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펼치는 관세 부과 정책이 국내외에서 비판을 받지만, 자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미국 입장에선 정책을 철회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쩌면 광인 트럼프의 여파가 생각보다 오래 이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