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부터 민생회복 소비쿠폰 신청이 시작됐습니다. 며칠 전부터 카드사와 페이 업체들이 자사 앱을 통해 신청하라는 알림을 보내왔지만, 워낙 마케팅 문자가 많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지인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 분위기는 달랐습니다. 어떻게 하면 혜택을 더 받을 수 있는지,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에 대한 정보가 오갔습니다. 요즘은 공연 예매나 쿠폰 하나 받으려 해도 접속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피켓팅(피가 튀길 정도로 치열한 티켓팅)'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경쟁은 치열합니다.
제 생년월일 기준 소비쿠폰 신청일은 24일이었습니다. 바쁜 하루를 보내다 오후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카드사 앱을 열었습니다. 이런 행사 때마다 수만 번째 대기자로 밀린 경험이 있어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앱을 켜자마자 친절한 안내 팝업이 떴고, 대상자 조회와 신청까지 몇 번의 클릭으로 매끄럽게 끝났습니다. 미성년 자녀 몫까지 자동으로 신청됐고, 대기 시간도 전혀 없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쾌적한 진행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배포된 문화체육관광부·영화진흥위원회의 '6000원 영화 할인권'은 정반대였습니다. 단톡방에는 접속 오류와 서버 마비를 호소하는 메시지가 이어졌고, 지인이 보내준 캡처 화면에는 ‘예상 대기 시간 19시간’이라는 문구가 떠 있었습니다. 전날의 쾌적한 경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불쾌감이 밀려왔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났을까요? 제 생각엔 경쟁의 유무 때문입니다. 카드사와 페이 업체들은 쿠폰 사용을 자사 앱으로 유도하려고 치열하게 경쟁했고, 그만큼 서비스 품질에도 공을 들였습니다. 반면 영화 할인권은 멀티플렉스 앱 등을 통해 이용처별 1인2매씩 선착순으로 배포됐습니다. 배분받은 수량만 소진하면 되는 구조이다 보니 사용자 편의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것 같습니다. 만약 소비쿠폰처럼 한 군데만 골라 받을 수 있었다면, 더 치열한 모시기 경쟁이 벌어졌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제 주관적인 판단입니다.
비슷한 사례는 항공업계에서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앞두고 아시아나는 1조원 규모의 마일리지를 소진하기 위해 'OZ마일샵'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접속 지연과 품절 사태가 반복됐고, 저도 수차례 시도 끝에 결국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을 급히 결제해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평소 자주 쓰던 CGV 영화권이나 이마트 상품권은 사라지고, 시중 최저가보다 비싼 상품들이 대부분이라 허탈감이 컸습니다. 이런 경험을 떠올리면, 향후 대한항공이 사실상 유일한 국적 항공사가 됐을 때 소비자 권익이 제대로 보호될 수 있을지 우려됩니다. 독점 체제 아래에서 요금 인상이나 소비자 편의 외면으로 이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결국 이런 사례들이 보여주는 건 필요할 때만 소비자 편의를 챙기는 회사들의 선택적 친절입니다. 소비자의 진짜 편의를 위해 필요한 것은 독점이 아니라 선의의 경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 한 상점에 민생회복 소비쿠폰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