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신약 심사 결과 거절된 이유가 담긴 문서인 보안요구서안(CRL) 수백건을 전격 공개해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의약품 인허가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명분으로 FDA가 전 세계 의약품 규제기관 중 처음으로 CRL 공개 조치를 시도한 것인데요. 일각에선 신약 개발 및 승인 과정의 오답 노트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과 FDA가 제공하는 정책적 정당성이 의뢰 기업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반응도 나오고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FDA는 보도자료를 통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제출된 의약품 및 생물의약품 허가 신청에 대한 완전응답서 202건을 공개했습니다. 승인된 제품에 대한 과거 문서로 기밀 정보와 영업 비밀은 삭제했지만 FDA는 현대화와 급진적 투명성의 수용을 추진하려는 미국 보건복지부의 입장을 전하며 앞으로 아카이브에 보관된 다른 CRL도 순차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CRL은 FDA가 신약 시판 승인을 위해 의약품 허가 신청서를 검토해 수정 사항과 보안이 필요할 경우 승인 의뢰 기업에 발행하는 서한으로 기업은 FDA가 지적한 문제를 보완하고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보완서류를 제출해야 합니다. 보완된 내용을 FDA는 다시 심사해 6개월 이내에 승인 여부를 결정하죠.
2015년 FDA의 연구진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의뢰 기업은 승인되지 않은 내용인 안전성 및 효능에 대한 FDA의 우려 사항에 대해 85%의 기업이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심사를 의뢰하는 기업은 FDA가 지적한 사항이나 새로운 치료법을 지연시키거나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문서를 모두 공개하거나 전혀 공개하지 않을 수 있는 완전한 재량권을 갖고 있었죠.
이 때문에 지적 사항을 보완하고 수정한 내용에 대해 업계 내에서 공유되지 않아 기업들은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게 되고 심사 기간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는데요. 기업 투자자들에게 FDA의 CRL의 내용이 정확하게 표현되지 않아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수 없었고 FDA의 결정 근거가 잘못 전달되는 사례도 잦았습니다.
CRL을 공개하면 향후 개발자들의 실수를 줄이거나 피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에 공감한 FDA의 태스크포스는 약물 신청이 보류되거나 종료 또는 철회될 때마다 공개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죠. 이는 FDA의 오랜 논쟁거리였지만 총 202건의 CRL이 공개되면서 일단락됐습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FDA에 의약품 또는 생물학적제제 승인을 위해 제출된 신청서에 대한 답변서로 발행된 내용이 우선적으로 공개됐고 후속 조치로 중앙 집중화식 관리도 하겠다는 입장도 밝혔습니다. FDA가 전 세계 규제기관 중 처음으로 CRL을 공개하면서 다른 국가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각 국의 규제환경이 다른 만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을 취하고 있습니다. 기존 법률과 이해상충의 문제가 없는지 제도 시행과정에서 혼선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식약처의 입장이 이해는 됩니다. 이에 반해 업계는 CRL 공개 조치에 찬성한다는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내고 있죠.
CRL 공개로 미국 진출을 노리는 국내 기업들에게도 FDA의 의사 결정과 신청서가 승인되기 전에 해결해야 하는 가장 일반적인 결함에 대해 파악하고 대비하는데 수월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FDA가 CRL 공개를 통해 제약사와 자본 시장 모두에게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고 의미 있는 치료법을 환자에게 더 빠르게 제공하겠다는 궁극적인 목표를 공식적으로 밝힌 만큼 국내 기업도 신약 개발에 유리한 인사이트를 획득해 신약개발 촉매제로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