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1호선 아침 출근길, 문 앞에 선 한 여성이 가슴에 임산부 배지를 달고 있었습니다. 그녀 앞에는 '임산부 배려석'이라는 표시가 선명하게 붙어 있었지만, 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 여성은 눈을 감은 채 자리를 비켜줄 기미가 없었습니다. 잠시 후, 또 다른 임산부 두 명이 배지를 달고 합류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세 명의 임산부가 나란히 서 있는 동안에도 자리는 끝내 비워지지 않았습니다. '비워주세요'라는 안내 문구와 핑크색 스티커는 시민들의 양심을 일깨우기에는 역부족이었을까요. 이러한 장면은 더 이상 이례적인 일이 아닙니다. 제 주변 임산부들에게 종종 듣는 얘기입니다.
임산부석에 앉아있는 중장년층으로 보이는 여성. 서울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사진=갈무리)
일각에선 "똑같이 돈 내고 타는데 왜 이렇게까지?", "피곤한 건 모두가 마찬가지다"라는 식의 반응도 종종 들립니다. 그러나 이런 무심함은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임산부에게 대중교통은 단 몇 정거장조차도 긴장과 불편의 연속입니다. 특히 임신 초기에는 외관상 티가 나지 않아 다른 승객들이 임산부임을 인지하기 어렵지만, 정작 이 시기는 유산 위험이 가장 높은 시기입니다. 임신 12주차가 지나야 안정기에 접어 들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임산부 배지를 보급하고 있지만, 시민 인식이 따라오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배지를 일부러 눈에 띄게 하고 서 있어도, 고개를 돌리거나 휴대폰만 보는 사람들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시민의식 개선이 무엇보다 절실합니다. 단순한 포스터나 안내 방송 수준을 넘어, 실제 사례 중심의 공감형 콘텐츠와 영상, 그리고 생활 속 캠페인이 병행돼야 합니다. 각지자체에서 임산부 배려 홍보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여전히 체감도는 낮은 실정입니다. 초등학교·중학교 교육과정에서부터 약자 배려에 대한 시민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임산부에 대한 배려는 특정 대상만을 위한 특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공동 책임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맺으며 되묻고 싶습니다.
지하철 한 칸, 작은 좌석 하나에서도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납니다. 임산부 앞에서 눈을 감는 어른들, 배려석을 고집하지 맙시다. 자리를 비켜주는 작은 실천이, 어쩌면 이 나라의 미래에 대한 투자일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당신은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이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