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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입력 : 2025-04-10 오후 5:07:22
충청북도 영동군 양강면에는 내천마 마을이 있습니다. 천마산이 뒤에 있어 '천만이'라 불리기도 했던 내천마는 사과·복숭아 농사를 많이 짓던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영동군의 양수발전소 사업으로 2030년 수몰 예정지인 그곳을 작년 이맘때쯤,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지역신문사에 다닐 때였는데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내천마의 모습을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영동군 양강면 산막2리 내천마. 양수발전소가 들어서는 2030년 수몰될 예정이다.(사진=이명신 기자).
 
산막저수지를 지나 천마산을 향해 올라서면, 사방이 드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내천마가 나옵니다. 초록으로 물든 산자락은 절경이었고, 내천마는 그에 걸맞게 풍광을 지녔습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산과 회색빛으로 뒤덮인 양수발전소 공사 현장이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공사 현장의 소음이 울려퍼지고 있었지만, 사람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내천마에 거주하던 21가구 주민들 대부분은 마을을 뒤로한 채 집단이주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떠나고, 장소만 남았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아내를 기다리던 한 할아버지가 기억납니다. 산막리 토박이로 농사를 지으며 사남매를 키운 할아버지는 이제 농사를 짓지 못해 아쉽게 됐다는 말을 되뇌었습니다. 담배를 태우며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가시던 할아버지도 이제 마을을 떠났을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와 내천마의 역사를 취재해 기사를 냈습니다. 넣지 못한 내용이 많아 아쉬웠지만, 기억에 많이 남는, 지역신문에서 마지막으로 쓴 기사였습니다.
 
영동을 떠나 상경한 지도 거의 1년이 다 돼갑니다. 가끔 영동군의 풍경들이 떠오릅니다.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거리를 보다 내천마가 생각났습니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만이 아니라,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는 일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기자라는 일이 예상보다 더 부담이 큰 직업인 까닭입니다. 잘못된 사실을 기록하면 안 되니까요. 지금 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도 현장을 누비는 기록자들을 응원합니다.
 
이명신 기자 sin@etomato.com
이명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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