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투자 시장을 분석할 때 우리는 주로 수치에 의존합니다. 그런데 그 수치가 시장의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면 어떨까요. 최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의 벤처 투자 통계에서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바로 '사내부서 CVC(기업형 벤처캐피털)'입니다.
사내부서 CVC는 기업 내 투자 전담 부서가 직접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방식입니다. 네이버의 D2SF나 현대차의 제로원벤처스가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공식 투자 라이선스를 보유한 벤처캐피털이 아니기에 정부 통계에 포함되지 않지만, 시장에서의 영향력은 상당합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벤처 투자에서 CVC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약 30%에 달합니다. 그중에서도 사내부서 CVC가 차지하는 비중은 독립법인 CVC에 견줄 만큼 상당한데요. 실제로 2021년 사내부서 CVC의 투자액은 약 2조5600억원으로, 독립법인 CVC의 2조2107억원을 앞질렀습니다.
문제는 이처럼 사내부서 CVC가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중소벤처기업부의 공식 통계에는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정부의 CVC 통계는 벤처투자회사와 신기술사업금융회사 라이선스를 보유한 기관만을 대상으로 합니다.
실제로 2023년 10월 중기부는 '2022년 CVC 투자 실적은 2조7000억원'이라고 발표했지만, 한 달 앞서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4조5000억원으로 추산했습니다. 민간과 정부 통계 사이에 약 1조8000억원의 차이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 차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바로 사내부서 CVC의 통계 누락입니다.
빠진 조각이 있으면 전체 그림도 왜곡됩니다. 불완전한 통계에 기반한 정책은 시장의 많은 부분을 놓칠 수 있습니다. CVC 정책이 정확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내부서 CVC처럼 '숨은 투자자'들까지 포함하는 정교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통계 이면에 숨은 현실을 정확히 파악할 때 비로소 효과적인 스타트업 생태계 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글로벌 스타트업 페스티벌 '컴업(COMEUP) 2024'에서 한 국내 스타트업 부스에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