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파올로 소렌티노, 웨스 앤더슨, 우디 앨런….' 좋아하던 감독 이름을 줄줄 외곤 했었는데,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이가 없습니다. 그래도 크로넨버그 정도면 좋아해도 되지 않을까, 고민해 봤는데 이것마저 확신이 없어요. 확신이 없으면 별로인 거죠.
(사진=뉴스토마토)
대학 때 "가슴 뛰는 게 있는가"라는 교수님 말씀에 '영화'를 떠올리며 즐거워했습니다. 전미비평가협회상 수상작을 챙겨 볼 정도였는데, 이제는 영화 자체가 별로예요.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점령해 버린 산업에 더 이상 낭만은 없습니다.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희미해지고, 싫어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만 점점 분명해집니다. 싫어한다는 감정은 극명해요. 예를 들어 '윤석열 같은 인간'을 떠올릴 때처럼 말이죠.
'윤석열'이란 카테고리는 심지어 무한합니다. 진보·보수 남녀노소를 떠나서 매일 윤석열을 보죠.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는.
자기 모습과 어떻게 사랑에 빠질 수 있는지, 인간 혐오자인 저로선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이해하고 싶지 않은데 심지어 싸움을 걸어와요. 제게로 와서 꽃이 되고 싶은 건지 원…. 서로 배려하면서 조용히 살면 될 텐 말입니다.
'싫다'는 감정으로 살다 보니 껍데기만 남은 기분입니다. 공간을 타르·니코틴·일산화탄소로 채워요. 그것 말곤 버틸 방법이 없는데, 약해 빠진 심장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칩니다. 살기 위해 죽어가는 심정입니다.
우울해서 클래식 틀어놓고 설거지와 면도를 하고, 사는 게 너무 재미없어서 주식도 시작했습니다.
주식으로 부자가 되는 망상을 합니다. 남들은 다 실패하는데, 혼자서만 성공하는 거죠. 그러고 기자를 그만둡니다. 그런데 기자를 그만두면 무엇을 할까요? 늘 그게 문제입니다.
KTX로 300km를 달려 울산에 도착했습니다. 울산역에 내리면 또 택시로 30여분을 달려 시골 안으로 들어가야 해요. 그곳에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강아지가 있고요. 택시에서 내려서 그 집에 들어서는 때가 이제 제겐 유일하게 설레는 순간입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