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자본시장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장폐지 요건을 대폭 강화하자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긴장하고 있습니다. 중소 바이오텍 기업은 높은 성장 가능성을 앞세워 증시에 입성했지만,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신약 개발 리스크로 시총이 시시각각 급변하고 재무구조 또한 취약하기 때문이죠.
상장폐지 개정안은 시가총액, 매출액 등 재무 요건을 3단계에 걸쳐 단계별로 강화하는 것이 주요 골자죠. 우선 상장을 유지하기 위해 갖춰야 할 최소한의 매출과 시가총액 기준이 높아집니다. 현행 유가증권 시장은 매출 50억원, 시총 50억원인 것을 2029년까지 단계적으로 각각 300억원과 500억원으로 상향합니다. 코스닥 시장도 현재 매출 30억원, 시총 30억원 기준이 매출 100억원, 시총 300억원으로 높아집니다.
한국 증시에 한번 입성한 기업은 웬만해선 퇴출되지 않아 '철밥통'이란 수식어가 붙습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99곳이 한국 증시에 신규 상장했지만, 상장폐지 된 기업은 25곳밖에 없었습니다. 최근 5년간 상장기업이 2105개에서 2478개로 17.7% 증가했지만 우리 증시는 부실기업들이 혼재해 옥석 가리기가 쉽지 않은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죠. 시장의 투명성을 위해 부실기업 퇴출 요건을 대폭 강화해 증시의 질적 개선을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옥석 가리기를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죠. 제약 바이오 기업 특성상 단기간 안정적인 수익원을 찾기 힘들고 기업 본연의 사업인 신약 개발은 최소 10년 이상 걸립니다. 신약 개발을 하면서 시장에서 필요한 자금을 계속 조달해야 하는데, 성장잠재력이 충분한 기업이 부실기업으로 도매급으로 몰려 퇴출당하는 사례는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요. 신약 개발에 10년 넘게 걸리는 바이오 시장의 특성을 감안하지 못하고 잠재력이 있는 기업이 퇴출당하면 제약바이오 산업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단기간 경영성과를 내기 힘든 제약 바이오 특성을 반영해 신중한 상장폐지 요건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은 타당해 보입니다.
기술특례로 상장한 기업은 일정 기간 관리종목 지정 유예가 적용되고 있는데요. 매출 요건은 상장 연도 포함 5개 사업연도까지, 법차손 요건은 상장 연도 포함 3개 사업연도까지 관리종목 지정을 적용하지 않죠. 기술특례로 상장한 바이오 기업 중 복지부 혁신형 제약 기업으로 선정된 기업 또는 일평균 시가총액 4000억원 이상인 시장평가 우수기업은 매출 관련 관리종목 지정 요건을 면제받습니다. 개정안에는 미래 성장 가능성은 높으나 매출이 낮은 기업을 고려해 연구개발(R&D)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바이오텍 경우 시총이 코스피는 1000억원, 코스닥은 600억원을 넘을 경우 매출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되는 완충장치를 뒀습니다.
문제는 성장잠재력이나 투자가치가 없는 자격 미달 기업이 특례 상장을 악용해 시장을 오염시키고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끼치는 문제는 계속 발생할 것입니다. 신중하게 부실기업을 증시에서 퇴출하되 경쟁력이 낮은 기업들이 상장을 이용해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히는 행위를 쉽게 하지 못하게 솜방망이 제도 개선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