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오는 신용카드들을 보면 혜택이 고소득자 위주로 쏠렸습니다. 예전에 비해 편의점이나 대중교통 등 일상생활에서 혜택을 볼 수 있는 카드가 많이 줄어든 것 같아 아쉬워요."
한 카드사 관계자가 기자에게 전한 말입니다. 그는 카드사에서 일하지만, 소비자로서 느끼는 불편을 토로했습니다. 카드사들이 최근 알짜 카드는 단종하고, 연회비 높은 프리미엄 카드에 집중하는 세태에 관해 직언한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카드사들은 프리미엄 카드를 내세워 고객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따로 기준이 있진 않지만, 업권에선 통상 10만원이 넘는 고 연회비 상품을 프리미엄 카드로 분류합니다. 항공이나 호텔, 골프 등에 혜택이 집중된 경향을 나타냅니다.
신한카드는 최근 연회비 30만원대의 프리미엄 카드 'The BEST-X'를 출시했습니다. 지난 2019년 이후 6년 만에 꺼낸 프리미엄 카드입니다. 이용금액의 최대 2% 포인트 또는 대한항공 마일리지 적립과 리워드(보상) 혜택, 백화점 상품권·호텔외식 이용권·항공 및 여행 이용권 등 다양한 기프트 옵션(선물 선택권)을 제공합니다. 롯데카드도 올해 초 연회비가 최대 50만원인 '힐튼 아너스 아멕스'를 내놨습니다. 글로벌 호텔 체인 힐튼과 미국 신용 카드사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와 손잡고 만든 프리미엄 카드입니다. KB국민카드 역시 작년 말 연회비가 최대 15만7000원인 프리미엄 카드 '헤리티지 클래식'을 선뵀습니다.
카드사들이 프리미엄 카드에 주력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 배경엔 '높은 연회비 수익'이 꼽힙니다. 카드 업권 한 관계자는 "최근 카드 가맹점 수수료가 계속 낮아지면서 결제액 단위가 큰 우량 고객을 확보해 수익성을 높이려는 포석"이라며 "프리미엄 카드 이용 고객은 높은 연회비를 내는 만큼 일시적으로 혜택만 이용하는 '체리피커(실속만 챙기는 소비자)' 비중도 낮은 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카드사 입장에선 새로 탈출구 모색해야 하기에 결정하는 길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아쉬움이 남습니다. 상대적으로 편의점이나 대중교통 등 일상생활 속 카드 혜택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회 초년생에겐 높아지는 연회비가 부담스럽습니다. 본인 신용 정보관리업(마이 데이터) 전문 기업인 뱅크샐러드 집계에 의하면 지난해 하반기 출시된 신용카드 74종의 연회비 평균은 17만4581원으로, 2023년 7만원대에서 지속 상승세입니다.
반면 단종되는 알짜 카드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최근 3년간 단종된 카드 수는 1154만종에 달합니다. 지난 2022년 101종에서 작년 595종으로 6배가량 확대됐습니다. 그동안 고객 유치를 위해 유지하던 6개월 이상 무이자 할부 혜택을 제공하는 곳도 자취를 감췄습니다.
프리미엄 카드에 집중한 결과 카드사 수익은 늘었습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전업카드사 8곳(신한·삼성·현대·KB국민·롯데·하나·우리·BC)의 연회비 수익은 1조756억원으로, 전년 동기(9852억원) 대비 9.2%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하나카드의 경우 프리미엄 브랜드 '제이드 카드'가 고객 확보에 성공하면서 약 30% 당기순이익 성장을 이뤘습니다.
현 사태를 두고 카드사에게만 손가락질할 수는 없습니다. 책임은 정치권에 있습니다. 선거철만 되면 표심을 위해 가맹점 수수료를 낮추다 최근엔 카드론 같은 대출 사업도 규제로 묶은 여파가 카드사들을 '생존의 갈림길'에 서게 했습니다. 게다가 간편결제 사업자까지 늘며 카드사들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붙은 상황입니다. 서민을 위한다는 정책이 오히려 서민을 옥죄는 결과만 초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치권에서부터 반성의 목소리가 나와야 할 때입니다.
롯데카드의 힐튼 상업자 표시 신용카드(PLCC) 2종 홍보 이미지. (사진=롯데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