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싸움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습니다. 중동은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어쩌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번엔 레바논 옆 시리아가 뉴스의 중심에 등장했는데요. ‘시리아 내전’, 십수 년 넘게 이어진 재앙이 하루아침에 종식됐습니다. 토마토Pick이 유럽 전체를 패닉에 빠뜨렸던 시리아 내전을 다시금 짚어봤습니다.
‘시리아 내전’ 뭐길래
시리아 내전은 2011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싸움입니다. 철권독재 아사드 정권과 이에 반기를 든 반군과의 갈등이 원인인데요. 기나긴 내전은 수십만명의 사상자와 수백만명의 난민을 낳았습니다. 201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유럽 난민 사태의 진원지가 바로 이 내전입니다.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는 1970년 정권을 잡은 하페즈 알 아사드의 아들로, 사실상 부자가 반세기 동안 정권을 잡았습니다.
-'아랍의 봄' 발포로 대응 : 시리아의 인권문제는 국제기구에서도 큰 비판의 대상이었습니다. 시리아 정부는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고 반대세력을 강력하게 탄압했는데요. 민주화를 요구하며 2010년 말 시작된 ‘아랍의 봄’ 당시 시리아에서도 정권 퇴진 요구가 커졌습니다. 그러나 정부군은 발포로 대응했고 이 사태가 내전의 시발점이 됐습니다.
-미국의 경제제재도 영향 : 2000년대 시리아는 9.11 테러 직후 미국 편에 들지 않았고, 그 결과 강력한 경제제재를 받았습니다. 여기에 100만명의 이라크 난민들이 시리아에 유입됐으며, 일자리 문제가 커졌습니다. 게다가 기후변화 위기로 인해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고 흉작이 계속되면서 민중의 불만이 폭발했습니다.
주변국 얽혀 내전 장기화
초기 내전은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켰습니다. 주변국이 경제·종교적 이유로 시리아의 정부군과 반군, 그 외 세력들을 지원하면서 내전이 장기화된 것이죠. '독재 저항'이라는 애초 취지도 복잡한 이해득실에 퇴색됐고, 수백만의 난민이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시아파-수니파' 분쟁 : 알 아사드 정부는 이슬람에서 시아파 계통인 알라위파입니다. 반면 시리아 인구는 72% 상당이 수니파인데요. 시아파 국가인 이란이 정부군을 지원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반군은 수니파에서도 온건 반군과 이슬람 극단주의 반군으로 또 갈라졌는데요. 이슬람국가(IS) 같은 테러단체도 난립하면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내전 장기화를 촉발했습니다.
-주변국 이해관계 : 시아파 맹주를 자처하는 이란은 종교적 이유로 시리아를 지원한 반면 러시아는 경제적 이득을 이유로 시리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시리아 서북부 반군 ‘자유시리아군’은 튀르키예의 지원을 받았는데, 이는 자국이 테러집단으로 규정한 쿠르드족 분리주의 세력을 견제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미국은 IS 격퇴에 협력한 ‘시리아민주군’을 지원했습니다. 수니파의 맹주 격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종교를 이유로 극단주의 반군을 지원했죠. 이처럼 시리아 내전은 종교와 주변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각국 대리전의 장이 되었습니다.
내전, 왜 갑자기 끝났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소강상태였던 내전은 최근 불과 며칠 사이에 끝이 났습니다. 반군의 기습 공세에 정부군이 버티지 못했고, 지난달 30일에 제2도시 알레포, 8일에는 수도 다마스쿠스를 내줬습니다. 대통령은 러시아로 망명했습니다. 시민들은 반군을 환영했고, 독재정부의 대통령궁은 불탔습니다. 반군의 주축인 이슬람 무장세력 하야트타흐리트알샴(HTS)도 다마스쿠스 해방을 선언했습니다. 그렇다면 10년이 넘은 내전은 왜 이렇게 싱겁게 끝났을까요?
-주변국, 지원 여력 잃어 : 내전 장기화의 원인이 주변국이었던 것처럼, 종식의 계기도 주변국에 있었습니다. 정부군의 주요 지원국이었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지원이 어려운 실정이었죠. 가자전쟁도 정부군 지원을 메마르게 만들었습니다. 주요 지원 세력이던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르면서 지휘부가 몰살당하는 등 사실상 참패했습니다. 이란 역시 경제제재와 헤즈볼라 지원, 이스라엘 견제 등으로 시리아 정부군을 도울 여력이 없었던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반군 승리…향후 전망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8일(현지시각) “우리는 모든 시리아 단체와 협력해 아사드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주권적인 시리아로의 전환을 확립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럽연합(EU)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도 “모든 소수자를 보호하는 시리아 국가”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앞날은 여전히 험난해 보입니다.
-저항의 축 : 친이란 정부가 없어지면서 이란은 헤즈볼라나 하마스에 대한 지원 루트를 일부 상실하게 됐습니다. 가자전쟁이 완전 종식된 상황은 아닌 만큼 '저항의 축'에 악재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시리아 정권의 공백을 적극 이용하고 있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시리아 내 숙적들의 기반을 적극적으로 타격하고 있죠. 이전부터 시리아 내 헤즈볼라 시설을 타격해온 이스라엘의 공격 수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난민 문제 : 난민의 지속적 유입으로 혼돈을 겪은 유럽권 국가들은 내전 종식에 따라 난민을 돌려보낼 명분을 얻었습니다. 실제로 유럽 각국이 난민 심사를 중단하기 시작했으며, 일각에선 벌써부터 ‘돈 조금씩 쥐어주고 돌려보내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갈등 불씨' 남아 : 반군의 승리가 완전한 내전 종식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습니다. HTS는 근본주의적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쿠르드족 주축의 시리아 민주군(SDF)은 민족주의, 세속주의, 양성평등 성향이 강해 세부적으로 이견이 있죠. 이처럼 여러 반군 세력들의 종전 후 청사진은 판이한 편입니다. 반군이 과연 이런 이견을 극복하고 상황을 잘 수습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제2의 내전으로 번질까요? 시리아의 향후 행보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