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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조웅의 카세트테이프가 돌아가면
첫 솔로 정규 음반 '슬로우 모션'
입력 : 2023-11-17 오후 5:07:09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거대하게 존 케이지 '4분 33초'까지 소환하지는 않더라도, 음악 안에 침묵과 여백이 공명한다면. 생활 소리까지 잡아낸 아날로그 카세트테이프에서 자아의 일부가 삐그덕 삐그덕거리며 돌아간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세계가 온전히 나에게로 닿는 경험, 날 것 그대로의 따뜻하고 정갈한 음의 물성(物性).
 
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이하 '구남')의 리더 조웅이 낸 첫 솔로 정규 음반 '슬로우 모션'을 듣다 문득 떠오른 단상입니다. 어묵과 찐빵 냄새가 고소하게 나는 서울 서대문구 모래내시장을 가로 지르자 나타난 한 낡은 건물 2층에서 그와 만나봤습니다.
 
시장의 소란스러움도 간간히 들리긴 했으나, 대체로 아늑한 '앰멍(앰비언트음악을 들으며 '멍' 때리는 것을 말함)' 무드. 몇년 전까지만 해도 스튜디오로 기능했다는 이 공간에서 드럼(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서교동 음악서점 '라이너노트'에서 녹음)을 뺀 나머지 기타와 노래로 된 거의 모든 트랙을 녹음했다고 합니다. 아날로그 카세트테이프 레코딩으로. 
 
"노래라기보단 어떤 물질이길 바랐던 것 같거든요. 진동이나 리듬, 호흡, 온전히 제 페이스로 나온 것들이. 화면에 슬로우 모션을 건 것처럼 느리게 닿을 수 있다면, 하고요."
 
첫 솔로 정규 음반 '슬로우 모션'을 낸 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이하 '구남')의 리더 조웅. 사진=비스츠앤네이티브스(BANA)
 
2007년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한 구남은 서구적인 록과 전자 음악을 한국적인 사운드로 구축해온 팀입니다. 트로트, 개러지록, 덥, 그루브, 전자음을 혼종시켜 독자적인 소리를 완성시켜왔습니다. 대체로 빽빽했던 구남 때의 밴드 사운드와 달리, 이번 솔로작은 대체로 텅빈 느낌을 줍니다. 기차 소리, 빗소리, 숨소리, 기침 소리도 여과없이 실렸습니다. 
 
현대적인 편집 작업을 최소화하고 산울림 같은 옛 밴드들처럼 원 테이크로 투박한 테이프 녹음을 했다고. 사실상 초호화기술을 동원해 음악을 어떻게 하면 더 꾸밀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대의 역행입니다.
 
"어느 부분의 숨소리를 지우려면 (원 테이크로 녹음한) 기타 부분도 같이 지워야하니까 그냥 냅뒀거든요. 그렇다고 현장의 소리들을 의도적으로 담으려 했던 건 아니었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깨끗하게 담아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구남의 드러머 유주현 씨와 잼을 담은 트랙 '유주와 조웅' 속 빗소리도 녹음 당일 비가 창벽에 부딪히고 있는 모습을 보다 그대로 수음했다고 합니다.
 
애초 기타와 목소리로만 구성하려던 음반입니다. 그러나 "심각한 건 아니지만, 침잠하는 무엇이 있는 것 같아" 드럼 리듬을 넣다보니 짙은 무드가 다소 희석됐다고 합니다. '그냥 개인의 이야기, 개인의 삶을 한번 짚어보고 싶었다'고. "꽤 오래전부터 '(곡의 구성상) 희미한 음악'을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꽉 찬 그림이 아닌, 선만으로 그려진 크로키 같은. 그런데 너무 무겁게 표현하려다 보니 결국 질려서 유머러스함(드럼의 리듬)을 몇스푼 추가했다고 봐주심 될 것 같아요."
 
조웅 첫 솔로 음반 '슬로우 모션' 커버. 사진=비스츠앤네이티브스(BANA)
 
단출한 악곡 구성의 이 '희미한 음악'에선 그러나, 선율만큼은 더 또렷하고 선명하게 피어납니다. 애써 꾸며내지 않는 노랫말들이 기타에 얹혀 시냇물처럼 흐르다 바람결 흩날리는 낙엽처럼 떨어집니다. "새로운 '동화'를 쓰려고 시도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저 제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를 살피면 가사가 됐어요." 이를 테면, 수록곡 '김일뚜'는 강원도 양양을 갔다가 "요즘 들을 노래가 없네. 김일두(싱어송라이터) 좋지 않아?" 라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된 노래입니다. "이번 앨범은 누군가에게 들려주려고 한 음악이 아닌, 제 말이 귀에 들리도록 전달하는 과정에서 나온 산물입니다. 노래의 발성도 관객에게 전달하려고 멀리내려는 형태가 아니라, 제 머릿속을 울리려는 형태로 접근했던 것 같아요."
 
음반을 여는 첫 곡 '소프트쉘'의 어눌하게 속삭이는 대화부터 정형화된 음악 패턴을 깨고 나옵니다. '성필아 이렇게 맛있는 타코는 어디서 사온거야' 현재 소속 레이블 'BANA'의 직원과 일상의 대화체를 녹음한 것. 우울과 불면에 관한 '별로 그렇게', 소외라는 감정에 대해 다룬 '내가 뭘',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속사정', 강가의 차분한 기운을 담은 '물구경' 같이 수록곡 면면은 내면 세계로 침참하는 창(窓)과 같습니다. '피어나는 물결'에서는 시뮬레이션 세계관(다중우주론)이란 렌즈로 급기야 자아를 들여다 보기도 합니다.
 
"개인보다 더 큰 세계가 있다는 이론인데요. 바다나 강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큰 물에서 반짝이는 윤슬 같은 게 결국 사람들, 개인들, 관계들이 아닐까. 세계 안에 작은 일부가, 순간들이 있는 것처럼요."
 
'외롭고 시끄럽고 그리워'나 '우리집'에서는 집이라는 공간, 즉 삶의 터전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나아갑니다. "노후에 시골이나 해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쯤은 하잖아요. 저도 찍어둔 섬이 하나 있거든요. 지붕 없는 집 같은 곳에서 모든 현실 다 버리고 쫓는 사랑이란 어떤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제가 현재 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이것저것 나오는 것 같아요."
 
첫 솔로 정규 음반 '슬로우 모션'을 낸 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이하 '구남')의 리더 조웅. 사진=BEASTS AND NATIVES ALIKE(BANA)
 
목포의 기타장인 엄태창씨가 만든 중고 기타를 이번 음반 녹음에 활용했습니다. 본래 클래식 기타에 사용되는 이 기타를 나름의 팝 선율로 풀어갔다고. "전반적으로 네츄럴한 톤을 잡고 싶었고, 녹음과 믹스과정에서 변색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질감이나 진동이 더 드러날 수 있는 방향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놓지 않았거든요. 특히 본 녹음 때 보통 '로우컷'이라고 저음을 많이 깎는 시도들이 통상적인데, 이번에는 문제가 안되는 선에서 저음을 모두 살렸어요."
 
음반을 관통하는 공통의 정서나 느낌, 분위기, 색감을 특수한 공간으로 표현해달라니 "낡은 집 같은 곳"이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헤진 가방 같은 그런 거요. 음성의 탁함, 화학적 물리적인 느낌을 모두 다 포함해서. 그런 이미지들이 연상이 됩니다."
 
첫 솔로 정규 음반 '슬로우 모션'을 낸 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이하 '구남')의 리더 조웅. 사진=BEASTS AND NATIVES ALIKE(BANA)
 
<에필로그: 조웅, 카세트테이프가 돌아가면.>
 
Q.왜 하필 카세트테이프 녹음이었나요. 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얻게 된 효과는 무엇이었는지도.
 
아주 단순하게는 테이프라는 질감이 시도해보고 싶은 음악 방향과 맞았기 때문이에요. 기본적으로 단순한 음악이라 어떻게 하면 바깥으로 나갔을 때 어떤 재미를 가질까 생각이 들었는데 그 맥락에서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믹스 같은 후반 작업 때 목소리를 상당히 앞에 배치시키는 식으로 진행했는데요. 그래서 음성이라든지 악기의 진동이 물리적으로 전달되면 좋겠다, 그 잔잔하거나 나른한 포크 음악이 '질감으로써 녹음되는 매카니즘'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수년간 컴퓨터 녹음을 해왔지만 카세트테이프로진행하는 건 꽤 불편했어요. 테이프 레코드로 투 채널을 받고, 그걸 각각 컴퓨터와 테이프머신으로 가게끔 녹음을 진행했어요. 불가피하게 컴퓨터를 써야할 수도 있으니까. 그 과정에 믹서가 있었고, 기타에 마이크 컨덴서, 보컬에 마이크 두개 정도를 썼던 것 같고요. 드럼도 컴퓨터로 녹음은 했는데, 다시 테이프로 변화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결과적으로 소리의 밀도에 있어서 듣기에 따뜻하다는 느낌은 있었던 것 같아요. 해외에서도 이런 시도들은 종종 있어요. 다프트펑크는 테이프로 녹음해서 컴퓨터로 믹스하든지, 아님 반대로 한다든지 하거든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섞는 과정에서 좋은 걸 결정하더라고요. '음악 질감'을 위해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는 것이죠.
 
Q. 이번 음반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흐른다는 것'에 포커스를 좀 두고 싶은데요, 테잎으로 작업했다는 것도 그렇고 물성이 가진 흐름이 음악이 말하는 삶과 연결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번 음반을 작업 하면서 조웅씨의 삶은 어떻게 흘러온 것 같던지요.
특별한 콘셉트를 기획하고 작업하진 않았고요. 제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나 살펴가며 곡을 썼어요. 발성을 할 때도 누군가에게 말을 전달하기 보다는, 제 자신의 머리를 울리듯. 그래서 녹음 때도 헤드셋 없이 악기 볼륨과 제 목소리 볼륨의 자연스러운 밸런스를 맞추는 데 집중했어요. 굳이 소리를 물리적으로 멀리까지 전달할 필요가 없으니, 소리를 전달하는 호흡이 길고 세게 낼 필요도 없었어요.
 
Q. 이번 음반을 들으면서 브라질 보사노바 풍이 연상되기도 했는데요. 스탄게츠-주앙지우베루투 음반만 들어봐도 포트루칼어 특유의 리듬감과 조곤조곤함이 실바람처럼 살랑대잖아요. 실제로 20대 초반에 영향을 받으셨다고 들었어요.
브라질, 우루과이, 마케도니아 같은 남미의 여러 음악들, 혹은 집시들 민요들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 유연함이나 화려함, 파워풀함은 어떨 땐 건즈앤로지스보다도 강하다고 생각해요. 구남의 '뽀뽀'나 '언더스탠드 케어레슬리' 같은 경우 스케일이나 코드, 보이싱은 브라질음악과 닿아있어요. 그게 전자음악으로 변주가 된 거였죠. 주앙 지우베루투, 스탄게츠는 무조건 들었고 벨로주, 에드 링컬린, 호사포사스…. 들으면서 리듬을 다루는 방식들이 영미권 팝보다 원초적이지만 훨씬 세련되게 들린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Q.'슬로우모션'의 마스터링을 페이퍼와 작업한 미국 유명 사운드 엔지니어 제이크 비에이터(Jake Viator)가 참여했다고 들었습니다.
후반작업(믹싱, 마스터링)은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사람 얼굴에 그림자가 어떻게 비춰지냐에 따라 윤곽이 달라보일 수 있잖아요. 어떻게 명암을 줄 수 있는지를 음악으로 보면 돼요. 밸런스를 조정할 수 있고, 리듬이 부각될 수 있고, 음향 주파수 상의 어디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특정 부분이 강조될 수 있거나 묻힐 수 있거든요. 일단 그 부분들은 믹스에서 충분히 의도를 드러내요. 그리고 마스터는 믹스를 훼손하지 않는 수준의 볼륨을 맞춰주는 작업이에요. 그런데 이번 마스터링 결과물을 받고는 좀 놀랐어요. 제가 믹스 단계에서 느낀 재미 포인트를 살린 게 느껴졌거든요. 제 의도를 명확하게 캐치한 거 같고, 그 의도의 재미를 표현하려고 노력한 거 같아요.
 
Q. 음악을 하지 않을 때는 어떤 삶을 사나요.
지난 10년 간 거의 육아의 세계였죠. 가사 분담하느라 애 많이 썼습니다. 다른 종류의 힘든 세계. 이제 술 좀 마셔야죠. 이 만큼만 더 키우면 성인이라니 다 왔지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권익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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