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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 블러드’ 실종인가
BTS '다이너마이트' 이후 옅어져…전문가들 "위기 만은 아닐 것"
입력 : 2023-11-03 오전 12: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지금의 방탄소년단(BTS) 글로벌 신드롬이 있기까지, 기획사 하이브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현 하이브)' 산하 '방시혁-피독-방탄소년단' 트라이앵글은 차별화된 서사와 세계관으로 기존 아이돌 그룹에선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차원의 'K팝 유니버스'를 만들어냈습니다. '학교 3부작', '청춘 2부작',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 등 매 음반마다 공고히 쌓아올린 연작 형식의 스토리텔링과 공감대 형성은 곧 하이브 만의 색깔, '하이브 블러드'였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블러드가 기존 대형기획사들이 쌓아올린 K팝 유산에 수혈되며, 지금의 세계적인 K팝 신드롬의 모태가 된 겁니다.
 
그러나 K팝의 영향력이 점차 세계로 뻗어가는 오늘날 되려 '하이브 블러드'가 옅어지고 있다는 분석들이 나옵니다. 글로벌 팝 프로듀서들과의 협업과 하이브 산하 멀티레이블 체제의 분화 속에 기존 BTS 시절처럼 촘촘한 서사의 앨범 기획력이 아쉽다는 지적입니다
 
2019년 그래미 뮤지엄이 주최한 '방탄소년단과의 대화' 행사에 참석한 방탄소년단. 사진=빅히트뮤직
 
실제로 BTS는 철학 용어이던 세계관을 음악에 일찌감치 도입했는데주로 자신들의 또래에게 이야기를 거는 듯한 성장 서사를 데뷔 초부터 구축해왔습니다'금수저' '욜로', '자존감' 같은 동세대 청춘의 상징어들을 가사에 활용하고, 선배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Fly'를 동경하며 연습생 시절부터 비트를 찍고 랩 가사를 써왔습니다. 당시 프로듀서였던 방시혁과 피독은 힙합 그룹이라는 큰 기획 틀 아래 앨범 전체의 밑그림을 함께 그렸습니다. 고전문학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가 겪는 성장기 혼란을 곡에 은유하고(', , 눈물'), 융 연구자인 머리 스타인 교수의 책융의 영혼의 지도로부터 페르소나라는 개념을 차용했습니다.('맵 오브 더 소울') BTS 앨범의 함의를 찾기 위해 철학서와 문학서까지 찾아 읽는 세계적인 팬덤이 양상됐습니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하이브 블러드'라는 게 있다면 그 출발점은 빅히트 뮤직이고 그 핵심은 역시 방탄소년단"이라며 "방시혁-피독-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삼각형이야말로 저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낸 피라미드였다. 방탄소년단이 글로벌 그룹으로 발돋움하며 만들어낸 '피 땀 눈물' 'FAKE LOVE' 'MIC Drop' 'DNA'까지만 해도 그 색깔이 유지됐다고 본다"고 짚습니다.
 
서울 용산에 위치한 하이브 사옥 사진=뉴시스
 
BTS '다이너마이트' 이후 옅어진 '하이브 블러드'
 
방향성이 전환된 건, 주식시장 상장 즈음 발표한 곡 'Dynamite'가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100' 1위를 달성하면서부터였습니다. 영국 작곡가 두 명이 만들어낸 이 곡을 필두로, 'Butter'-'Permission to dance'에 이르기까지, 기존 하이브와 BTS 체제가 걸어오던 노선과는 판이하게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00'에서 7주 연속 1위에 오른 곡 'Butter'의 경우, 멜로디 이중계약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네덜란드 출신 뮤지션인 루카 드보네어가 그보다 앞선 해에 발표한 '유 갓 미 다운(You Got Me Down)'과 완벽히 똑같은 톱라인(멜로디)을 구매한 건데, 법적 문제가 없고 차트와 팬덤 중심의 세계적인 성과는 있었어도 향후 음악적인 재평가를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란 지적도 있습니다.
 
임희윤 평론가는 '하이브 블러드'와 관련해 "작은 회사에서 시작해 음악과 퍼포먼스, SNS 활동에 혼을 갈아넣은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물론이고 거의 그들에 자신의 거의 모든 것을 갈아넣던 방시혁 의장과 피독 프로듀서도 '청춘의 성장, 방황, 고민' 같은 서사에 자신들을 이입하고 그것을 음악으로 승화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냐"라고 설명합니다. "이미 성장해 세계인의 주목까지 받은 'mission complete'의 상황에서 질주에 익숙했던 이들은 다음 목표로 더 높은 산, 그러니까 미국 차트 1, 글로벌 플랫폼 구축 같은 다음 목표를 설정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이룬 목표, 그리고 달라진 지향 앞에서 세계관, 음악 스타일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민희진 대표의 뉴진스(어도어)를 제외하면, 멀티 레이블 체제를 표방하는 하이브는 하위 레이블들을 하나로 관통하는 고유의 음악 색깔이 다른 기획사에 비해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BTS 'Dynamite' 성공 이후 글로벌 팝 사운드를 수혈하는 데 집중하면서 '핑크블러드' SM, '블랙레이블' YG, 스트레이키즈의 '마라맛'으로 대표되는 JYP 같은 대표적인 음악적 색깔이 옅어진 게 사실입니다. 오히려 스트레이키즈는 팀 내 멤버들로 구성된 프로듀싱 그룹 '쓰리라차(3RACHA)'를 가동하면서 BTS의 초기 행보와 닮은 서사와 음악 스타일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는 모양새입니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최근 케이팝 제작 과정에서 팝의 대안, 새로운 팝보다 기성 팝 문법에 진입하기 위한 목적의 결과물이 자주 보인다. 오래된 케이팝의 제작 과정(, 해외 작곡가들의 데모를 수급하여 이를 현지화하고, 가사와 멜로디를 새로 입혀 노래를 완성하는) 형태에서는 계속 이런 결과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하이브 만의 문제가 아니라 K팝 세계 전체가 고민해야 하는 숙제"라고 진단합니다.
 
지민, 정국, 뷔 등의 BTS 솔로 앨범에서도 글로벌 팬을 겨냥해 가사 내용과 음악 스타일 모두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임희윤 평론가는 "이를테면 정국의 최근 싱글 'Seven' '3D'를 보면 악곡은 더욱 현지화됐고 가사도 영미권 차트 최상위권 곡들의 분위기에 맞춘 '29' 느낌(정말 노골적인 단어들은 피처링 아티스트들의 입으로 내뱉게 함으로써 절충안을 찾기는 했다)"이라며 "하이브가 몸집을 키우고 멀티레이블 체제로 가면서 색깔의 분화는 필연이었을지 모른다"고 봅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 사진=뉴시스
 
'하이브 블러드' 부재…전문가들 "위기 만은 아닐 것"

'하이브 블러드'의 부재가 곧 위기를 의미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위기만은 아닐 것이라 합니다. 임희윤 평론가는 "유니버설 뮤직, 소니 뮤직에 어떤 일관된 음악적 지향이나 세계관이 있는 건 아니다"라며 "멀티 레이블, 플랫폼 기업을 지향한다면 '색깔은 없고 스펙트럼은 무궁무진한' 바로 그 자체가 성공의 길인지도 모른다. 다만, 케이팝이 여전히 해외 시장에서는 '케이팝다워서, 독특해서 좋은 케이팝'으로 받아들여진다면 하이브 블러드의 존재가 아직은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인터내셔널 A&R 체제를 통해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음악을 만들어낸 것이 케이팝의 현재를 일궜고, 이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며 "다만, 전 세계 작곡가들이 수만, 수십 만 개의 곡을 앞 다퉈 보내오는 상황에서도 SM이 핑크 블러드를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살펴볼 필요는 있다. 전 세계의 색깔을 어떻게 걸러내고 조합하며 재창조하는지는 오롯이 서울의 헤드쿼터, A&R팀과 기획의 몫"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김도헌 평론가는 "TXT, 엔하이픈, 르세라핌 등 주력 케이팝 그룹의 기획이 모두 하이브 합작 네이버 슈퍼캐스팅 프로젝트의 서사를 따라가고 있는 점을 고려해보면 오히려 세계관 서사를 지켜나가는 기획사는 하이브"라며 "(뉴진스는 예외) 오히려 인위적으로 그룹을 하나로 묶는 기획이 인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며 멀티레이블 체제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겠지만, 케이팝 전체가 고민해야 하는 지나친팝 지향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케이팝의 기반과 케이팝의 현재를 모두 아울러 범대중적으로 납득이 가는 콘텐츠 개발을 위해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권익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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