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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의 한국철학사 18화)‘이사금’과 ‘마립간’의 정치 철학은 무엇인가
이사금과 마립간 선출은 적장자 상속이 아닌 신라식 ‘선양’
입력 : 2023-07-17 오전 6:00:00
제가 고등학교 때 수능을 준비할 때 저희 때는 ‘예비고사’라고 했는데요, 예비고사의 단골문제 중에 하나가 “신라의 최고 정치 지도자에 대한 호칭의 변화를 순서대로 돼 있는 것을 고르시오“라는 문제가 단골문제였습니다. 거사간-차차웅-이사금-마립간-왕인데요. 이거를 어떻게 외우느냐 “걷어차인 이마에 왕혹이 났다” “거차이마왕” 이렇게 외우면 여러분들이 이 말을 들으면 평생 잊어버릴 수가 없을 겁니다. 이 문제를 틀릴 수가 없어요.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왕 근데 신라의 최고 정치 지도자를 나타내는 호칭이 이렇게 변해갔는 데 결국은 한자어인 ‘왕(王)’으로 귀결됩니다. 왕이라는 한자어로 최고 정치 지도자를 호칭하면서, 왕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하면서 중국에서 사용했던 적장자 중심의 적통주의와 가부장제 그리고 군주중심의 남성중심주의 중화중심주의도 이 “왕”이라는 한자에 묻어서 전래되었다 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신라 최고지도자가 쓰던 금관. 전 세계에서 출토된 금관 총 14개 중 10개가 한국에서 나왔다. 국보 제191호인 황남대총 금관. 신라의 최고지도자 호칭인 이사금, 마립간에는 지혜와 리더십을 갖춘 이를 뽑아야 한다는 신라만의 최고지도자 선정에 대한 신라인들의 사유가 담겨 있었다. 사진=뉴시스
 
우리의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지배했던 사상은 불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개인이 얼마나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가르침은 줄 수 있지만 사회를 어떻게 조직하고 사회를 어떻게 운영해야 되느냐에 대한 가르침은 주질 못했습니다. 그 점이 불교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점은 도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불교와 도교 이외에 유학을 도입해야 된다는 논의가 있어왔습니다. 저는 외래사상의 도입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먼저 자기 자신이 가진 우리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사상 속에서 어떻게 사회를 조직하고 사회를 운영할 것인가 논의를 진행을 더했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신라시대에서 공동체의 최고 정치 지도자를 나타내는 호칭의 변화 속에서 이들의 호칭 배후에 숨어있는 최고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기대를 통해서 우리가 어떤 사회사상과 정치사상을 가졌는지를 추출해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거서간’이라는 말은 ‘귀족’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차차웅’이라는 말은 ‘무당’이라는 뜻입니다. 두 단어에서는 배후의 어떤 정치 지도자에 대해서 거는 기대를 추출해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최고 지도자의 호칭은 “이사금”입니다. ‘이사금’은 ‘잇금[齒理]’이라는 뜻입니다. 《상국사기》에 따르면 ‘잇금’이라는 뜻이고 유리왕 때부터 이사금이라고 불리기 시작하는데, ‘이사금’이란 왕권을 어떤 사람에게 넘겨줄 것인가를 어떻게 결정하느냐, 떡을 깨물어 보라고 해서 떡을 깨물어서  이빨 자국이 많은 사람을 선택해야 된다 라는 원칙이 이사금의 원칙입니다.
 
이빨자국이 많다는 얘기는 나이가 많다는 뜻이고, 나이가 많은 사람은 경험이 많고 경험이 많은 사람은 지혜가 많기 때문에 지혜가 많은 사람이 나라를 다스려야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다는 생각이 ‘이사금’이라는 말의 배후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사금이라는 호칭 다음에 등장하는 호칭은 “마립간”이라는 호칭입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마립”이라는 토박이말로서 “말뚝”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함조(?操)해야된다.” “말뚝이 함조해야 된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얘기하는데. 임금의 말뚝이 주인이 되고 그 밑에 신하의 말뚝들이 있는데, “임금의 말뚝은 신하의 말뚝들을 함조(?操)할 수 있어야 된다.” 다스릴 수 있어야 된다. 리더십이 있어야 된다 이런 뜻이죠.
 
신라 금관 모양의 장식품을 쓴 아이들. 사진=뉴시스
 
마립간이라는 칭호의 뒤에 담겨져 있는 사상은, 우리 공동체의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밑에 신하들을 통솔을 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어야 된다 라는 생각이 배후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사금”과 “마립간”은 적장자(嫡長子) 상속이 아니라, “선양(禪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장자 상족은 자기 피붙이한테, 그냥 왕위를 넘겨주는 겁니다. 그런데 선양은 그것보다는, 진일보한 지도자의 선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양은 중국 고대에도 나오는데, 요임금이 제왕 자리를 자신의 피붙이에게 넘겨준 게 아니라, 자기가 볼 때 제왕자리에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했던 순임금에게 넘겨줬습니다. 그것을 중국사람들은 “선양”이라고 불렀습니다.
 
신라에서도 “이사금”과 “마립간”을 통해서 다음 왕에 오를 사람을 뽑았다면, 그것은 적장자 상속이 아니라 선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사금”에 대해서 생각해보죠, 이빨자국이 많다고 해서 지혜롭다고 판단할 수는 없겠죠. 덧니가 많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지혜롭다고 할 수는 없겠죠. 그렇다면 이런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더 좋은 지혜로운 사람을 가려내는 방법이 떡을 깨물어 보는 거 말고 어떤 방법이 있을까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발전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신라시대에 우리 공동체가 좋은 정치적 수장을 뽑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될지에 대한 논의가 풍부해질 수 있고 더 좋은 방법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국무회의장 입구에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가 전시돼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그런데 그 사정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민주화 이후에 수많은 민주적 정치 지도자들을 만들어 왔고 만들어 냈습니다. 그런데 우리 공동체가 지금 어떻게 좋은 정치 지도자를 선택하고 뽑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좀 더 심화시키고, 집중시킨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러이러한 사람을 정치 지도자로 뽑아야된다 라는 그런 공통된 인식이 증가할 수 있고 사회적인 공동분모로서 작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논의를 안 한다면 우리 시대에 우리의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천 년 전의 신라를 볼 때 신라사회가 이사금과 마립간에 대해서는 더 논의를 했어야지 신라사회를 더 좋은 사회로 만들 수 있는 정치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는 원칙을 우리 공동체만의 사회사상과 정치사상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표명하는 것처럼 천 년 뒤에 후손들이 우리 시대의 우리를 볼 때 똑같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도 우리 시대의 정치적 지도자를 어떤 사람을 정치 지도자로 뽑아야 될지에 대한 논의를 지금부터라도 충분히 더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이 “이사금”과 “마립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교훈이다 라는 주장을 저는 하고 싶습니다.
 
신라시대의 최고 정치 지도자를 나타내는 호칭은 거사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왕이었습니다. 이것을 “걷어차인 이마에 왕혹이 났다” 이렇게 외운다면 평생 이것을 잊어먹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게 문제로 나오면 만세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이사금”과 “마립간” 이 두 호칭의 배후에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나라를 다스려야 된다라는 생각이 숨어 있었고 가장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 신하들을 통솔해야 된다 라는 생각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공동체의 가장 오래된 정치 사상이다 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 소개 / 이상수 / 철학자·자유기고가
2003년 연세대학교 철학 박사(중국철학 전공),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 2003~2006년 베이징 주재 중국특파원 역임, 2014~2018년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역임, 2018~2019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 역임. 지금은 중국과 한국 고전을 강독하고 강의하고 이 내용들을 글로 옮겨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권익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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