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페이스북 트윗터
(이상수의 한국철학사 7화)산신각의 유래와 불교와 토속 샤머니즘의 결합
입력 : 2023-04-17 오전 6:00:00
중화중심주의가 화해와 공존과 융합과 관용을 모르는 일방적이고 폭력숭배적인 힘의 논리라면, 다음 번 연재 글부터 중점적으로 살펴볼 원효의 화쟁(和諍) 사상은 본격적으로 화해와 공존과 융합과 관용을 위해 전개한 사상입니다. 화해와 공존과 융합과 관용의 가치가 절실한 오늘날의 지향점과 반대 반향으로 달려가는 모든 중심주의의 사유는 폐기해야 마땅한 낡은 사상이죠. 앞 글에서 긴 지면을 돌려 중화중심주의의 부정적인 면을 말한 것은, 부정적인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유가 어떤 것인지 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효의 화쟁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며,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할 매우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사상이죠. 치우쳐 있고, 공평하지 않으며, 차등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분열적이고, 폭력 숭배적인 사상은 수명이 길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상은 그런 사상을 필요로 하는 집단의 소멸과 함께 사라지죠. 그러나 타자의 가치를 잘 발견해내고, 그 가치를 존중하며, 연대와 유대를 통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화시켜 공존과 융합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상은 지속 가능한 인류 공동체를 위해 매우 소중하고 불가결하며, 인류가 존재하는 한 그런 사상은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지닐 것입니다.
 
이번 회에서는 불교라는 논리적으로도 완벽하고, 깊이 면에서도 성숙한 사상이 전래 되었을 때 한국 공동체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말씀을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불교는 한국의 토착 신앙이나 민간신앙과는 달리 논리적으로도 완정하고, 사상적으로도 깊이가 있는 사상 체계입니다이런 깊이 있는 사상 체계가 전래 되었을 때, 한국 공동체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화가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남아 있습니다그것은 <선도성모 수희불사(仙桃聖母隨喜佛事)>라는 설화입니다. “선도성모가 기쁘게 불전 짓는 일을 도와준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전남 강진 달마산 미황사의 산신각. 사진=필자 제공
 
한국의 불교 가람에는, 세계 어떤 불교 국가에도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공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산신각(山神閣), 산령각(山靈閣), 삼성각(三聖閣), 독성각(獨聖閣)이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공간입니다. 이 공간에는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산신령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산신령은 우리나라의 우리 공동체의 민간신앙의 숭배 대상입니다.
 
일연 스님이 기록한 단군신화를 보면, 단군 또한 죽어서, 아사달에 들어가서 산신령이 되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의 석탈해라는 왕이 태종무열왕의 꿈에 나타납니다. 신라의나를 경주의 동악(東岳)인 토함산에 묻어달라라는 얘기를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렇게 해서 석탈해는 동악(토함산)의 산신령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처럼 산신령을 숭배하는 것은 우리 공동체의 민간신앙이었습니다.
 
민간신앙의 숭배 대상인 산신령을 숭배하는 공간이 불교의 가람에 어떻게 살아남게 되었을까요? 우리나라의 모든 불교 사찰에 산신각이 없는 사찰은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불교 사찰에 가면, 반드시 들려보는 공간이, 찾아보는 공간이 산신각, 산령각, 삼성각, 독성각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공간입니다.
여기에는 부처님이 없고 부처님 대신에 산신령을 그린산신도(山神圖)’가 모셔져있습니다. 이런 공간은 불교가 전래된 국가들인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 어느 국가에도 없는 공간입니다. 한국불교에만 독특하게 이런 공간이 존재합니다.
 
전남 강진 달마산 미황사의 산신각 안에 모셔져 있는 산신령을 그린 <산신도(山神圖)> 산신령은 언제나, 호랑이를 애완동물처럼 대동하고 있다. 사진=필자 제공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에는, 어떻게 해서 불교 사찰에 이런 공간이 생기게 되었는지 유래를 짐작하게 해주는 설화가 전해져옵니다그 내용은, 진평왕 때의 비구니인 안흥사의 비구니이던 지혜라는 스님께서 불사(佛事, 절을 중건하는 일)를 일으키고 싶었으나, 돈이 부족했습니다. 돈이 부족하니 어떻게 해야 될까요, 밤낮없이 기도했는데, 꿈에 선도성모(仙桃聖母, 토착신앙의 여성 신선)라는 분이 나타나,
선도성모(仙桃聖母)라는 분은 우리나라의 민간신앙에 등장하는 선녀(仙女)입니다. 여성 신선이죠. 이 분이 꿈에 나타나서, 지혜 비구니한테 말합니다“네가 원하는 불사(佛事)를 일으킬 수 있는, 비용을 마련해 줄 터이니, 대신에 불사를 함께하면서, 오악(五嶽)의 신선을 모실 수 있는 공간을 함께 마련하라는 조건을 내겁니다.
 
오악(五嶽)의 신선이라는 것은 산신령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오악이라는 것은 다섯 산을 얘기하는데, 경주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방위와 중앙에 있는 산을오악(五嶽)’이라고 얘기했는데, 이 오악에 있는 산신령들을 모시는 공간을 마련하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 조건을 지혜 비구니가 수락해서, 선도성모가 얘기해주는 곳을 파봤더니 황금 160량이 나옵니다. 이 황금으로 안흥사에 불사를 일으키고, 선도성모의 지시대로 오악 신앙을 지혜라는 비구니가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모든 불교 사찰에 산신령을 모시는 공간이 존재하게 된 기원설화라고 연구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이 설화가 얘기해주는 것처럼 불교라는 가장 논리적이고 수준 높고 지혜가 깊은 외래 종교가 전래되어 왔을 때, 한국의 공용체는 이 불교신앙을 그냥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한 게 아니라 토착신앙과 결합시켜서 융합시켜서, 산신령을 모시는 공간을 따로 보전함으로써, 불교를 토착신앙과 융합시켜서 받아들였음을 이 설화는 얘기해준다 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오늘날 천주교의 성당이나 기독교의 교회에 산신령을 모시는 공간을 마련해 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요. 불교가 비록 융합적이고 유연한 종교라서 이것을 받아들인 면도 있지만, 한국 공동체는 불교라는 매우 완정한 논리체계를 받아들일 때도, 수동적으로 수용만 한 것이 아니라, 토착 신앙과 결합을 시도했다이것이 이 설화가 알려주는 중요한 포인트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주도에존자암지(尊者庵址)’라는 절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존자암지는 불교 사찰인데요, 그곳에도 산신각(山神閣)이 있습니다.
 
제주도 존자임지 산신각의 산신령과 흰색 사슴 조각. 제주도 민간 신앙의 숭배 대상은 흰색 사슴이기 때문에 호랑이 대신에 흰색 사슴이 조각되어 있다. 사진=필자 제공
 
그 산신각에 갔을 때, 그곳의 산신각에는 산신도 대신 산신령 조각이 모셔져 있었는데요, 다른 사찰의 산신도와 차이가 뭐냐면, 산신령을 그린 그림에는, 산신령님이 반드시 대동하고 있는, 데리고 다니는 동물이 있습니다. 애완동물처럼, 애완동물을,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게 아니라, 산신령님은 강아지 대신에 호랑이를 데리고 다닙니다. 호랑이가 산신도에는 반드시 등장하는데, 제주도의 존자암지 산신각에 있는 산신령 조각에는 호랑이 대신에 흰색 사슴이 등장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한라산 제일 정상에는 뭐가 있죠? 백록담(白鹿潭)이 있습니다. 이 백록담의백록(白鹿)’이 바로흰색 사슴입니다. 제주도에 있는 존자암지라는 사찰의 산신각에 모셔져 있는 산신각에 호랑이 대신 흰색 사슴이 등장한다는 얘기는, 산신각을 만들 때 얼마나 그 지역의 토착신앙과 결합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흰색 사슴은 제주도 민간신앙의 숭배 대상입니다. 제주도 사람들이 신령하게 생각하는 동물이 호랑이 대신 흰색사슴이기 때문에 산신각에 호랑이 대신 흰색 사슴이 등장하게 된 것이지요. 이만큼 우리나라는 불교를 받아들일 때도 토착신앙과 융합시켜서 받아들였다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토착신앙과 융합을 시도한 것이 우리 공동체의 첫번째 태도라면, 두 번째는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그 논리에 철저하게 충실하려고 했던 것이 이 땅의 공동체들이 불교를 받아들이는 방식이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다음 회의 글에서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 태도로 불교를 수용했기 때문에 원효라는 위대한 거인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공동체가 불교를 받아들이는 또다른 자세와 원효스님의 등장에 대해서는 다음 회의 글에서 이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필자 소개 / 이상수 / 철학자·자유기고가
2003년 연세대학교 철학 박사(중국철학 전공),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 2003~2006년 베이징 주재 중국특파원 역임, 2014~2018년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역임, 2018~2019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 역임. 지금은 중국과 한국 고전을 강독하고 강의하고 이 내용들을 글로 옮겨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권익도 기자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