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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의 한국철학사 6화)‘요동분토신’의 탈중심주의적 자주사상
입력 : 2023-04-10 오전 6:00:00
이번 글에서는 지난호의 사마천의 <조선열전> 검토에 이어, 《삼국사기》의 ‘요동분토신(遼東糞土臣)’이라는 표현과, 을지문덕 장군의 <여수장우중문시>의 사유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고구려의 왕들 가운데 누가 가장 뛰어나냐고 묻는다면,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을 꼽습니다. 그러나 저는 영양왕이 고구려왕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고 봅니다. 중원분열기의 왕인 광개토대왕, 장수왕에 비해 영양왕은 중원통일기의 왕입니다. 중원왕조가 강력할 때, 중원왕조의 압박에서 고구려를 지켰습니다.
 
영양왕은 즉위 9년째이던 598년 봄, 말갈족 1만여 명을 인솔해 요서 지방을 쳤습니다. 수의 침략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영양왕은 선제공격으로 수를 자극해 대군의 장거리 원정에 불리한 폭풍과 장마의 시기로 침공을 앞당긴 것이라는 북한 역사학자 리지린의 해석이 유력합니다. 수문제는 이 소식 듣고 그 해 6월 뭍길과 바닷길 두 갈래로 30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략했으나, 90일 사이에 24만~27만 명이 몰살당하고 겨우 3만~6만 명이 살아 돌아갔습니다. 영양왕은 수문제를 달래려고 국서를 보내 자신을 “요하 동쪽 똥덩어리 땅의 신하 아무개[遼東糞土臣某]”라고 썼습니다.
 
수 문제. 사진=필자 제공
영양왕은 왜 굳이 이런 표현을 썼을까요? 이건 후대인의 해석을 기다리는, 일종의 ‘화두’입니다. 영양왕은 이 표현을 통해, “여기는 똥덩어리땅이니, 당신들은 ‘중원’에서 잘 사시오, 우리는 여기 똥덩어리땅에 만족하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위대한 농담입니다. 영양왕이 국서에 쓴 의문의 표현을 이해하려면 고구려왕들이 중원왕조의 집요한 ‘위계적 호칭 강박’에 시달려온 역사를 참조해야 합니다. 또, 영양왕이 자신의 강토를 ‘똥덩어리 땅’이라고 표현한 것을 ‘위대한 농담’으로 보는 해석은, 을지문덕 장군의 강렬한 풍자시가 뒷받침해줍니다. 먼저 중원왕조의 ‘위계적 호칭 강박’이란, 중원왕조가 자신들의 군주만을 ‘천자(天子)’ 혹은 ‘황제(皇帝)’라고 호칭할 수 있고, 주변의 이른바 ‘오랑캐’ 나라들의 군주들은 이보다 한 서열 낮은 ‘왕(王)’이나 ‘공(公)’이라는 호칭을 써야한다는, 강박을 말합니다.
 
우리는 앞글에서 사마천의 본기-세가-열전이 바로 이 ‘강박’의 산물임을 보았습니다. 중원왕조 역시 바로 이런 강박에서 못 헤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이 질환의 이름은 바로 ‘중화중심주의’입니다. 만약 주변국 군주가 ‘황제’라는 칭호를 쓰면, 중원왕조는 이를 도전이라고 받아들여, 그와 혈전을 벌이고자 했습니다. 인류사에서 이렇게 어리석은 인정투쟁은 유례가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영양왕이 왜 자신의 땅을 ‘요동의 똥덩어리 땅’이라고 했는지에 대한 실마리가 드러납니다. “우리 고구려는 중원의 ‘천자 쟁탈전 리그’에 들어가지 않는 ‘똥덩어리땅’이니, 당신들은 그 ‘중원’ 땅에서 당신들대로 살고, 우리는 ‘똥덩어리땅’에서 우리대로 살겠다.” 영양왕의 이 발언은, ‘중화중심주의’의 호칭 위계질서 강박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담은 해학적 표현입니다. 이런 해석은 영양왕의 재상이던 을지문덕의 풍자시가 뒷받침해줍니다.
 
을지문덕. 사진=필자 제공
을지문덕은 우중문·우문술 등 수나라 침략군 지도부들이 승리에 도취해 기고만장하도록 만든 뒤, 다시 항복을 청하며 우중문에게 다음의 시를 보냅니다. “신묘한 계책은 하늘의 무늬를 뚫었고(神策突天文)/ 오묘한 술수는 땅의 이치를  다했구려(妙算窮地理)/싸움에서 이긴 공이 이미 드높으니(戰勝功旣高)/족함을 알고 원컨대 그만 그치겠다고 말하라(知足願云止) <여수장우중문시>라는 제목이 붙은 을지문덕의 시입니다. 우중문은 처음에 이 시를 받고, 을지문덕이 항복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는 항복문서가 아니라, 어리석은 전쟁 행위를 그만둘 줄 모름을 꾸짖은 것입니다.
 
을지문덕의 꾸짖음은 “만족을 알거라[지족(知足)]!”라는 한 마디로 집약됩니다. “만족을 알고!”, 전쟁은 이제 그치라는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을지문덕의 시에 담긴 생각은, 영양왕이 고구려를 “요동의 똥덩어리 땅”이라고 표현한 생각과 통합니다. 수양제의 대군은 “만족할 줄 알라!”는 을지문덕의 가르침을 받고도 살수까지 왔다가, 고구려군에 의해 깨끗하게 섬멸 당합니다. 《삼국사기》와 《자치통감》은, 우중문의 군사가 요하를 건너 고구려 땅을 밟았을 때는 30만5000명이었는데, 살아 돌아간 이는 겨우 2700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줄잡아 30만2300명이 몰살당한 것입니다. 만여 종에 이르던 각종 공성(攻城) 기구 등도 모두 그대로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참패에 꼭지가 돈 깡패왕 수양제는 자기 장군인 우문술을 쇠사슬로 묶어끌며, 끝판까지 반인류적 비교육적 조폭적 패악질을 보여주며 도망갔습니다.
 
수문제의 조서는 500여자나 전해오지만, 고구려인의 사유를 짐작할 수 있는 기록은 고작 영양왕의 국서에서 살아남은 6~7자, 을지문덕의 시 20자 등 도합 30자도 안 됩니다. 고구려의 반패권주의 반중심주의의 사유는 이후 고려와 조선의 사유에 기나긴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중국은 아직도 중화중심주의에 대한 반성도 성찰도 없습니다. 국가주도 어용술책인 ‘동북공정(東北工程)’ 연구비를 받는 어용연구들을 보면, 고구려가 중원왕조의 ‘지방정권’이라고 생떼를 씁니다. 마다정(馬大正)이 동북공정의 대표적 어용학자인데, 그는 고구려가 신하국으로 행동하지 않아서 수나라가 침략했다며, 고구려가 사신을 보낸 것 등을 근거로 “수나라가 고구려를 관리했다”고 앞뒤가 맞지 않는 억지를 부립니다. 이런 것들은 ‘연구’라고 불릴 수도 없는 억지들입니다. 중국공산당이 중화중심주의의 황실사관을 답습하면서 역사 왜곡에 앞장서는 행태는 꼴사납습다. 공산당이 아니라 ‘황당파’로 불릴 정도입니다. 중국공산당의 ‘동북공정’은 동아시아의 미래에 백해무익합니다. 이런 억지를 접한 한국 젊은이들은 ‘고토 회복’을 주장합니다.
 
 
《수서》에서 수의 고구려 침략에 대한 평가를 담은 사론은 말합니다. “《병지(兵志)》라는 책에서, ‘덕을 넓히려고 힘쓰는 이는 창성하고, 땅을 넓히려고 힘쓰는 이는 망한다.’고 했습니다. 수양제가 요동(고구려)을 문치로 품지 못하고, 조급하게 무력을 동원했다.” 엉터리 사론입니다. 수의 침략을 비판은 했지만, 침략의 근본원인인 중화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이 없습니다. 이것은 적어도 이천년 이상 지속되어온 중원왕조 식자들의 병폐입니다. 수나라의 군사행동은 비판했지만, 결국은 덕으로 오랑캐를 품어서 신하국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더 한심한 건, 《삼국사기》에는 《수서》 정도의 비판도 없다 우리의 관심은 전쟁이 아니라 철학이므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영양왕과 을지문덕의 철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입니다. 이들은 중원국가와의 항쟁과정에서 반중심주의 사유를 강력히 형성했습니다. “요동 똥덩어리땅”이라든가, “만족할 줄을 알라”는 단편만 남아 있지만, 우리는 여기서 풍자와 역설을 동원한 중심주의 비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수양제째 고구려침략전쟁 시기에 산둥성 장백산에 근거지를 두고 봉기한 왕박(王薄, ?~622)이라는 이는 고구려 침략 전쟁에 끌려가서 개죽음 당하지 말자는 내용의 <요동으로 몰살당하러 가지 말라는 노래[무향요동낭사가(無向遼東浪死歌)]>를 지어 부르며 고구려 침략전쟁의 군역과 요역에 동원된 이들의 도망을 선동해, 이들을 바탕으로 큰 세력을 이루었다. 중국 대륙에서 그린 반군 지도자 왕박에 대한 상상도. 사진=필자
 
■ 필자 소개 / 이상수 / 철학자·자유기고가
2003년 연세대학교 철학 박사(중국철학 전공),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 2003~2006년 베이징 주재 중국특파원 역임, 2014~2018년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역임, 2018~2019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 역임. 지금은 중국과 한국 고전을 강독하고 강의하고 이 내용들을 글로 옮겨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권익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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