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뉴욕 쌍둥이 빌딩에 비행기와 충돌하는 장면. 사진=필자 제공
첫번째 사진은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이른바 ‘쌍둥이 빌딩’)과 미국 국방부를 납치한 여객기를 충돌 시키는 방식으로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한 자살 테러 공격 화면입니다. 이 장면은 당시 뉴스에서 거듭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줬죠. 이 테러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3000여명이 희생됐습니다.
당시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군사적으로 침공하여 테러의 배후로 알려진 알카에다 지도부 인사가 있는 곳으로 지목된 장소에 대한 무차별 드론 폭격을 진행했습니다.
사람이 타고 있지 않은 무인기인 드론을 통해서 알카에다의 지도부 요인이 있다는 정보가 있으면 그곳이 마을이든 산간 지역이든, 결혼식 피로연이 열리고 있는 곳이든, 장례식을 진행중인 곳이든 가리지 않고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이슬람 시민들이 수없이 많이 희생당한 것도 사실입니다.
미국은 알카에다 지도부 인사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미군이 아프간 전역에서 납치·고문·암살 등을 자행했으며, 알카에다 지도부 인사가 있을 수 있다는 불확실한 첩보만 있으면 해당지역에 대한 무자비한 폭격을 감행했던 사정은 미국에서 제작된 드라마인 '홈랜드'에 상세하게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드론 폭격에 항의하는 이슬람 시민의 시위 모습. 사진=필자 제공
9·11 테러와 그 이후 이에 대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종보복의 “피로 피를 씻는” 악순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9·11 테러와 드론 공습의 악순환 배후에는 ‘문명 충돌론’이라는 맹목적인 대립을 부추기는 사상이 배후에 놓여 있습니다. 새뮤얼 헌팅턴의 이른바 ‘문명 충돌론’은 서구를 중심에 두고, 1991년의 소연방의 해체로 공산주의라는 위협이 사라진 이후 서구를 위협할 새로운 위협을 찾는 과정에서, 서구의 기독교 문명에 대항해서 서구를 위협할 수 있는 요인으로서 다른 문명권을 내세운 이론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유가 없는 이론입니다. 이것은 이질적 문명들 사이의 맹목적인 충돌을 당연시하는, 사유의 죽음입니다.
이질적인 문명이 공존하기보다 대립하며 투쟁할 수밖에 없다라는 사고는 가장 즉자적이고 수준이 낮은 사고로서, 현상에 굴복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류는 더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에 도전하는 사유를 해야 하고 그렇게 할 때 우리 앞에 놓인 걸림돌을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열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질적인 문명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서로 충돌하고 대립한다면, 이런 발상에서는 우리는 이질적인 문명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사유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문명 충돌론’과 미국 중심주의자들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충돌은 원인과 결과가 서로 맞물려 있는 관계에 있습니다. ‘문명 충돌론’이라는 제한적인 시야와 사유밖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피로 피를 씻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인류 문명을 짐승의 시대, 석기 시대로 되돌릴 수 있는 위험한 충돌입니다. 서로 다른 문명권이 공존할 수 있고 어떻게 충돌을 피할 수 있는가, 어떻게 서로 융합하여서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내면서 공존할 것인가를 사유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인류의 사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9·11 테러 장면과 드론 공습과 전혀 다른 풍경 사진 두 장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조계사 앞에 만들어진 성탄 축하 트리. 사진=필자 제공
하나는 매년 기독교의 성탄절이 다가오면 한국불교의 총본산인 조계사에서 경내 또는 일주문 앞에 세우고 있는 성탄 축하 트리 사진입니다. 또 한 장은 그와 더불어 매년 석가탄신일마다 축하 현수막을 내거는 작은 교회들의 사진입니다.
조계종은 매년 성탄절마다 자기 종교의 성인이 아니라 이웃 종교인 기독교의 성인이 탄생한 날을 기념하는 성탄 트리를 스님들과 보살님들이 함께 꾸미고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조계사 성탄트리는 1999년에 만들기 시작해서 한번도 거르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해에는 명동성당에서 마련한 성탄 트리보다 조계사의 송탄 트리가 더 화려하고 멋져서 명동성당 신부님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기독교의 몇몇 작은 교회들이 매년 석가탄신일이면 교회 담장에 내거는 ‘석가 탄신 축하 현수막’입니다.
전남 강진 소재 ‘남녘 교회’라는 작은 교회 담장에 내걸린 석탄일 축하 현수막. 사진=필자 제공
문명 충돌론자들은 이런 장면에 대해 지극히 의심하며, 한국에서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답을 포용적이고 통섭적이고 융합적인 한국 철학사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서로 다투는 이질적인 논리를 모두 융합할 수 있다고 주장한 원효의 화쟁(和諍) 사상에서부터, 동아시아이 유불도 삼교와 서방의 기독교를 종합해서 동학(東學)을 창건한 수운 최제우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에 이르기까지, 한국 철학사에서는 문명 충돌론과는 달리 어떻게 하면 이질적이고 대립적이고 모순적인 사상, 철학, 문명을 함께 융합하고 포용하고 통섭하려고 한 융합의 대가들이 꼬리를 물고 등장해서 그들을 통해서 우리는 문명 융합과 통섭의 철학과 사상을 읽고 배울 수 있습니다.
한국 철학사에서는 종파 간의 모든 대립과 논리 차이를 넘어서려는 화쟁(和諍) 이론을 만들어낸 원효에서부터 동양의 유볼도와 서양의 기독교까지를 융합해해서 동학(東學)을 창안해낸 수운 최재우 선생의 이르기까지 포용적이고 통섭적이고 융합적인 철학의 거장들이 잇따라 등장했습니다.
이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한국에서는 왜 서양에서의 ‘문명충돌론’과 같은 막힌 패러다임이 아니라 ‘문명융합론’과 ‘문명공존론’이 한국에서 가능했던 지를 우리는 탐구할 수 있습니다.
문명 충돌론의 전망으로는 인류는 함께 멸망하는 공멸의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런 지옥도(地獄道)에서 벗어나는 길은 문명 융합과 공존의 논리를 배우는 길 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해 지금 우리는 세계 시민들과 한국 철학사를 함께 읽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상수(철학자·자유기고가)
2003년 연세대학교 철학 박사(중국철학 전공),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 2003~2006년 베이징 주재 중국특파원 역임, 2014~2018년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역임, 2018~2019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 역임. 지금은 중국과 한국 고전을 강독하고 강의하고 이 내용들을 글로 옮겨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