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우연수 기자] 정부와 유관기관, 금융지주 등이 약 150조 규모의 유동성 지원·공급 대책을 내놓으면서 경색된 회사채 시장에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쏠린다. 시장은 일단 잇단 대책 발표가 레고랜드 사태로 손상된 투심을 진정시키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으나 계절적 영향, 지속되는 긴축 기조, 시장 신뢰 붕괴 등의 이유로 빠른 정상화를 기대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1일 금융업계와 당국에 따르면 레고랜드 사태 이후 나온 정부와 국책은행, 업계 발 유동성·자금 지원 대책의 규모는 약 150조원에 달한다.
지난 23일 정부가 '50조원+α' 유동성 지원 조치를 발표한 데 이어 한국은행과 산업은행, 민간 금융지주 등을 통한 유동성 지원 대책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27일 자금난이 심각한 증권사와 증권금융 등에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통해 약 6조원의 유동성을 직접 공급하기로 했다. 증권업계 역시 자구책을 마련해 중소 증권사 지원에 나선다.
또한 금융당국의 요청에 따라 5대 금융지주는 95조원 규모(잠정)의 유동성 지원을 하기로 했다. 유동성 공급에 73조,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와 증권시장안정펀드(증안펀드)에 12조원, 계열사 자금 공급에 10조원을 투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자료=NH투자증권
일단 전문가들은 진작에 나왔어야 할 정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의 개입이 단기채 차환과 일부 기업의 시급한 유동성 부족을 해소해주면서 채권 시장 정상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광열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초 이후 크레딧 시장이 약세를 보임에 따라 채안펀드 가동의 필요성이 상반기부터 제기됐다"며 "정책의 내용과 규모를 감안할 때 10월 들어 급격히 경색된 단기자금 시장의 안정화에 긍정적이고, 단기자금 차환과 시급한 유동성 부족이 해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은행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이 시장 수급 개선과 자금 경색 해소에 효과적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유승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지금 정책 방향은 은행이 핵심고리가 되도록 가고 있다"며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을 완화해 은행채 발행을 줄이도록 해 채권 시장 수급 부담을 줄여주고, 고금리 효과로 은행으로 몰린 자금을 민간에 풀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은행 발 자금 공급이 본격화돼야 자금경색이 풀어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광열 연구원 역시 "LCR과 예대율 등 은행 규제 완화와 한국은행의 유동성 지원 등으로 금융 기관의 채권 발행액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짚었다.
다만 자금 경색이 가장 심각한 단기자금시장까지 온기가 퍼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고채 3년물은 전주 대비 0.31%p, 5년물은 0.375%p 하락한 데 반해 CD91일물과 CP91일물은 지난주에도 꾸준히 올라 연중 최고점을 경신했다. 정부는 △채안펀드 기업어음(CP) 중심 매입 시작(24일) △산업은행 CP 매입 프로그램 가동(27일) △한국은행 RP 매입 대상 증권 확대 등 단기시장 안정책을 투입하고 있다.
유승우 연구원은 "레고랜드 초기에 비해 은행권이나 공기업 쪽은 안정을 찾고 있지만 회사채, 특히 단기자금 쪽과 증권사·여신전문사·일반기업 등은 여전히 이전과 비교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유동성 공급의 1차적 효과는 국채시장에서 나타날 것이고, 국채 금리가 안정화되면 회사채 시장, 마지막으로 단기자금시장인 CP·전자단기사채(전단채)로 넘어갈 것"이라며 "실질적으로 자금 투입이 이뤄지고 나서 짧아도 2주 이상, 길면 한달 정도까지도 걸릴 수 있다고 본다"고 관측했다.
외부 상황이 녹록지 않은 점도 있다. 우선 한국은행이나 연준 등 고강도 긴축이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정부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리가 계속 오르는 국면에서는 투심 회복 속도도 느릴 수밖에 없다. 또한 국내외 경기 둔화세가 심화될 경우 기업들의 펀더멘털이 약화되며 투심 회복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도 있다.
4분기 계절적 특성도 무시하기 어렵다. 연말에는 자금을 빌리려는 기업은 많아지는 반면 공급은 감소한다. 채권 투자자들은 11월 말 경부터 북클로징(회계장부 마감)에 들어가면서 신규 투자를 집행하지 않으려 한다.
유승우 연구원은 "주식시장은 정부가 개입하면 회복 속도가 빠른 데 반해 채권시장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데다 레고랜드 사태로 시장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인 신뢰가 깨져버렸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며 "환경이 비우호적이다보니 정부 돈으로 완벽히 해결하긴 어렵겠지만 마중물 역할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우연수 기자 coinciden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