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유근윤 기자] 국민의힘은 7일 새 비상대책위원장에 5선의 정진석 국회부의장을 선출했다. 주호영 의원의 재추대가 거절되자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 등에게도 수락 의사를 타진했지만 모두 손사래를 쳤다. 이준석 대표가 새 비대위에도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예고한 가운데 앞서 법원 판결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인용' 가능성이 높은 데 따른 부담감 때문이었다. 집권여당이 당대표에 해당하는 비대위원장을 찾지 못하는 '구인난'에 직면하자, 권성동 원내대표는 세 번이나 방을 찾아가는 삼고초려 끝에 정 부의장의 수락을 이끌어냈다.
정 부의장은 충청에 정치적 기반을 둔 인물로 당내에서는 친윤석열계로 분류된다. 차기 전당대회 출마도 염두에 뒀으나 이번 비대위원장 수락으로 당권 도전은 포기하게 됐다. 정 부의장은 이 대표와도 감정이 섞인 설전을 주고받는 등 악연이 있다. 앞서 지난 6월 지방선거 직후에는 혁신위 출범을 둘러싸고 공개적으로 충돌했다. "자기정치", "육모 방망이", "개소리" 등의 험한 말들이 오갔으며, 이 대표는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정 부의장을 '윤핵관 호소인'으로 지칭, 자존심에 또 한 번 상처를 입혔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정 부의장에게 2차 비상대책위원장 직책을 제안했고, 정 부의장이 이를 수락했다"면서 "의총에서도 의원들이 박수로 추인했다"고 밝혔다. 정 부의장은 오는 8일 전국위원회에서 자동응답시스템(ARS) 방식으로 임명안 찬반 투표를 한 뒤 가결되면 비대위원장에 정식으로 선출된다. 앞서 당헌 96조 개정안이 일사천리로 상임전국위와 전국위를 통과했다는 점에서 정 부의장의 선출은 확정적이다. 당 안팎의 사정에 훤한 데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의사소통에도 원활할 것으로 평가 받는다. 정 부의장은 지난 대선에서 "충청의 아들 윤석열을 지켜내자"고 주장하는 등 충청 대망론을 이끌었다.
7일 권성동 원내대표는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정진석 국회부의장에게 2차 비상대책위원장 직책을 제안했고, 정 부의장이 이를 수락했다"면서 "의총에서도 의원들이 박수로 추인했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주호영·박주선 등 모두 손사래…삼고초려 끝에 정진석 수락
어렵사리 비대위원장을 구했지만 이 과정에서 이준석 대표에 맞대응할 카드가 없음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애초 새 비대위원장 0순위는 앞서 1차 비대위원장에 선출됐던 주호영 의원이었다. 주 의원을 재선임해 명예회복의 길을 열어주자는 목소리도 일었다. 하지만 주 의원은 6일 예정에 없던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2차 비대위에선 위원장을 맡지 않겠다"면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게 좋다는 취지에서 더 좋은 분을 모시도록 당에 건의했다"고 거절 의사를 밝혔다.
주 의원의 고사로 박주선 전 부의장이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민주당 출신으로 4선을 지낸 박 전 부의장은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한 뒤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 대통령취임식준비위원장 등을 맡았다. 당정 가교 역할을 할 수 있고, 호남 출신으로 통합의 메시지도 낼 수 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이용호 의원은 이날 오전 한 라디오에 출연해 "현역 의원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타진했는데, 본인이 고사하거나 다선 의원 일부가 비대위로 가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냈다"며 "외부, 당 밖 인사가 하는 것으로 기류가 정리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전 부의장 역시 비대위원장 제안을 고사했다. 당내에서는 "이 대표의 가처분이 또 다시 인용되면 즉각 직무가 정지될 상황인데, 누가 선뜻 그 자리를 맡겠느냐"며 "플랜B도 없이 무작정 기각만 바라는 극단적 상황으로 스스로를 내몰았다"고 했다.
그렇게 비대위원장 인선까지 험난했던 과정이 이어졌다. 권 원내대표는 "새 비대위원장 후보를 물색할 당시 제일 처음 떠오른 인물이 정 부의장이었다. 그런데 정 부의장이 여러 이유를 대면서 고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외부로 방향을 돌렸는데 외부 인사께서 우리 당에 대해 잘 모르고 비대위원장을 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이유로 완강하게 고사했다"며 "오늘 다시 정 부의장과 통화하고 세 번이나 방에 찾아가서 설득했다. '원내대표 역임했고, 의원들 신임 받아 부의장하는데 당이 어려울 때 좀 도와주셔야 한다'고 계속 설득했다. 정 부의장이 4년 동안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우며 완강하게 거절하다가 마지막에 승낙해줬다"고 말했다.
7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수락한 정진석 국회부의장이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난관은 또 다시 '이준석'…정진석, 유화적 제스처 보냈지만
정 부의장은 의총에서 비대위원장으로 추인된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정부의 성공과 집권여당의 안정을 위해 책임을 다하겠다"며 "그것이 제게 주어진 대의요, 애국"이라고 말했다. 또 "당원의 총의를 모아 조속히 당을 안정화시킬 것"이라며 "저를 윤핵관이니 뭐니 하는 상황에서 제가 나서는 게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 수없이 자문을 했고, 비대위장을 '독배'라고들 하지만 독배라고 해서 피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 부의장에게 주어진 과제는 정기국회 이후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열고 새 지도부 체제를 꾸리는 일이다. 권 원내대표가 새 비대위 출범 후 원내사령탑에서 물러난다고 공언했기 때문에 이달 중 새 원내대표를 선출해야 하는 일정도 예정됐다. 정 부의장은 "지금 막 비대위원장을 맡게 되어서 좀 멍하다"면서도 "전당대회 시점은 생각을 좀 할 시간을 주시길 바라고, 새 원내대표는 이달 내 선출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정 부의장이 비대위원장 직무를 수행하는 데 가장 큰 난관은 이준석 대표의 법적 대응이다. 이 대표는 앞서 지난달 26일 1차 비대위 출범 직후 제기한 가처분신청에서 일부 인용 판결을 받아낸 데 이어 2일엔 "제2의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이 임명되면 직무정지 가처분을 또 한 번 신청할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이 대표가 1차 비대위와 전국위원회에 반대하면서 낸 2·3차 가처분신청, 주호영 의원의 이의신청 심문은 14일 동시에 진행된다. 또 다시 집권여당의 운명이 사법부로 넘겨진 셈이다. 법조계에선 1차 가처분신청 당시 이 대표의 손을 들어준 재판부가 이번 심문을 진행하고, 동일한 상황에서 똑같은 진술을 다루기 때문에 사실상 이 대표의 가처분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렇게 되면 2차 비대위도 좌초가 유력해진다.
정 부의장도 이를 의식한 듯 "이 대표가 당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런 분열·갈등 양상을 이어가지 않도록 현명하게 판단해 주길 요청드린다"며 "최근에 이 대표와 통화한 적이 없고 만날 계획이 아직 잡히지 않았으나 못 만날 이유 없다"고 정치적 해법을 모색했다. 이어 "저는 당을 안정·정상화시키고 새롭게 결집된 에너지의 엔진을 충전하기 위해선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며 "제가 23년 동안 정치를 했는데 계파에 치우친 사람도 아니었고 늘 통합의 정신을 앞세우려 노력했기에 누구와 대화하는 데 장애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유화적 태도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 대표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정 부의장은 지난 6월6일 이 대표가 지방선거 승리 직후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로 출국하자 페이스북에 "자기 정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즉각 "어차피 기차는 갑니다"라고 응수했다. 정 부의장은 다시 글을 올려 이 대표가 주도한 혁신위위원회를 비판하며 "이 대표가 제대로 중심을 잡았느냐, 지도부 측근에게 '당협 쇼핑'을 허락하면서 공천 혁신 운운은 이율배반적이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이 대표도 "당대표에게 공천과 관련해 이야기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할 것"이라고 맞불을 놨다. 급기야 정 의원은 "정치 선배의 우려를 '개소리'로 치부하는 만용은 어디에서 나오느냐"고 화를 냈다.
이 대표는 우크라이나에서 귀국할 때는 "우크라이나 의원님들이 우리 방문단에 답례품으로 가시 달린 육모 방망이 비슷한 걸 주셨다"며 철퇴 사진을 올렸다. 육모 방망이는 포도청에서 도둑을 잡는 데 쓰던 방망이다. 앞서 정 부의장이 2017년 대선 패배 후 "보수 존립에 근본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은 육모 방망이를 들고 뒤통수를 뽀개야 한다"고 한 걸 그대로 끌어다 쓴 것. 이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도 "나이나 선배가 어떻고 이런 얘기할 거면 앞으로 나이 순으로 뽑죠. 당대표도"라며 정 부의장을 겨냥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13일 기자회견에서도 윤핵관으로 권성동·장제원·이철규 의원을, 윤핵관 호소인으로 정진석·김정재·박수영 의원을 지목하며 이들이 차기 총선에서 수도권 등 험지에 출마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특히 윤핵관에도 끼이지 못하며 호소인으로 전락하게 된 정 부의장으로서는 자존심에 큰 상처가 났다.
최병호·유근윤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