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22일 오전 10시 40분,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 위치한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 VR 장비와 햅틱 장갑을 착용한 인재진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총감독이 제스처를 하자, 바로 옆 모니터 화면 베레모와 뿔테 안경, 콧수염 차림의 분신(分身)이 같은 동작을 하며 입을 열었다.
“버려졌던 황무지 섬이 음악으로 새 생명을 갖게 된 셈이죠. 19년 된 ‘자라섬’은 재즈라는 장르를 가지고 세계 지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후 대한민국 야외 음악 공연 축제들의 동력이 됐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22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 위치한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 인재진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총감독(왼쪽)과 아바타 모습. 사진=자라섬재즈페스티벌
팬데믹을 이겨온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이 올해 ‘자라섬재즈유니버스’를 선언한다. 오는 10월 1~3일 경기도 가평 자라섬에서 오프라인으로 열되 온라인 생중계 연출을 병행한다. 메타버스와 NFT 같은 신기술을 유입해 축제의 시간, 장소 제약을 벗어나겠다는 포부다.
이날 이곳과 네이버 앱 ‘젭(ZEP)’을 통해 온오프라인 동시에 생중계한 기자간담회는 일종의 축제 미리보기였다. 자라섬을 온라인으로 본 따 만든 가상 공간에 아바타로 접속하면 프레스 라운지가 펼쳐졌다. 아바타로 분한 인재진 총감독 발제에 이어 계명국 자라섬재즈페스티벌 감독 발제 순서 땐, 가상 공간 속 링크가 바로 유튜브 생중계 페이지로 연동됐다.
인재진 총감독은 “코로나 기간 동안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동시에 대비하면서 ‘축제의 확장 가능성’을 고민했다. 올해는 국내 야외 대중음악 페스티벌 최초로 관객들의 백스테이지 투어와 출연 아티스트들의 인터뷰, 재즈 보컬 3인의 무대, NFT 입장권 등을 메타버스 안에서 구현할 것”이라 말했다.
계명국 감독은 “지난 2년 간 온라인 송출을 기획해오면서 그쪽 수요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20주년이 되는 내년과 이후를 생각했을 때 자라섬 역시 ‘콘텐츠 플랫폼’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구상했다. 메타버스 같은 신기술을 유입하고 추후에는 자라섬의 IP만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22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 위치한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에서 열린 '자라섬재즈페스티벌' 기자간담회. 사진=자라섬재즈페스티벌
미래를 내다보고 “온라인 세계 재즈 팬들까지 확보하겠다”는 구상이지만, 다수 기술 제약도 넘어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메타버스 무대에는 현재까지 500명만 접속이 가능한 데다, XR 구현도 보컬만이 구현 가능해 연주자 중심의 음악인 재즈라는 장르에선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계명국 감독은 “처음에는 오프라인 무대의 체인지 시간에도 온라인에서 공연이 이어지는 축제를 구상했지만 기술적 한계를 깨달았다”며 “다만 내년과 후년까지 발전 가능성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2004년 처음 개최한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지난해 기준 58개국, 1200여팀의 아티스트가 거쳐 간 행사다. 비가 오면 물에 잠겨 쓸모없는 땅으로 버려졌던 척박한 섬은 이제 한국을 비롯 아시아 재즈를 대표하는 문화 행사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첫 회부터 행사를 이끌어온 두 감독은 이날 “폭우가 내린 첫해부터 코로나 기간이었던 지난해, 그리고 20주년이 되는 내년까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 가야 할까에 대한 고민은 지속돼왔다”며 “향후 ‘자라섬 재즈 플러스’(가제)를 구상하고 있다. 끊임없이 재즈의 가치를 더해갈 수 있는 페스티벌이 되고자 하는 것이 목표”라고 입을 모았다.
22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 위치한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에서 진행된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오프라인 간담회는 네이버 앱 '젭(ZEP)'을 통해 메타버스로도 병행하는 방식을 취했다. 사진=자라섬재즈페스티벌
대중음악 축제가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려면 출연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독자적인 콘텐츠의 축적이 중요하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이 현재의 이미지를 공고히 갖게 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올해도 해마다 한 국가를 선정해 음악과 음식, 문화를 소개하는 ‘포커스 컨츄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스페인을 주빈국으로 설정하고 전통 민속음악 플라멩고부터 모던재즈까지 소개할 예정. 플라멩코와 재즈 사이를 오가는 바렌시아(Barencia)를 비롯해 스페인 갈라시아 지방을 대표하는 재즈 트리오 숨라(SUMRRÁ) 등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 스페인 영화와 피아노 콘서트를 결합한 ‘시네마 스테이지’도 10월 1~2일 가평 음악역1939에서 진행된다.
재즈와 다른 음악 장르를 결합하는 ‘자라섬비욘드’도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이다. 2018년 가왕 조용필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대표곡들을 재즈로 편곡한 무대 ‘JAZZ MEETS 조용필’을 시작으로 ‘한국 재즈 피아니스트 4인(임미정, 이지영, 고희안, 김광민) 합동 무대(2019)’, ‘한국 재즈 기타리스트 3인(찰리정, 조영덕, 김수유)의 합동 무대(2020)’, ‘한국 재즈 여성 연주자 4인(남유선, 송미호, 서수진, 오은혜) 합동무대(2021)’ 등을 꾸며왔다. 올해는 전통 민요와 재즈를 결합시킨 ‘덩기두밥 프로젝트’를 무대에 세운다. ‘덩기두밥’은 국악 추임새 ‘덩기덕’과 재즈스캣으로 쓰이는 ‘두비두밥’을 섞어 쓴 용어. 베이시스트 겸 음악감독 이원술과 민요와 정가를 두루 섭렵한 보컬 김보라를 주축으로 전국 다양한 민요들을 재즈식으로 풀어낼 작정이다.
인재진 총감독과 계명국 감독은 “‘덩기두밥’의 경우 자라섬 무대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닌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도 나서고 있다. 자라섬의 의미가 단순히 자라섬에만 그치지 않고 한국의 재즈 장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방향들을 구상 중이다. 20주년 방향으로 내 건 ‘자라섬 재즈 플러스’가 그 시작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올해 자라섬재즈페스티벌에는 스페인 외에도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아시아 세계 각지 아티스트들 총 32팀이 참여한다. 해외 초청이 19팀, 국내가 13팀이다. 자라섬과 가평 잣고을 광장, 음악복합문화공간 음악역 1939의 무대에 오른다.
제 60회 그래미 어워즈 ‘베스트 보컬 앨범’에 노미네이트 됐던 재즈미어 혼(Jazzmeia Horn)과 남아프리카 재즈신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은두두조 마카티니(Nduduzo Makhathini Trio)은 특히 눈 여겨볼 아티스트다.
조이 알렉산더(Joey Alexander), 아비샤이 코헨(Avishai Cohen), 밥티스트 트로티뇽(Baptiste Trotignon), 보얀 지(Bojan Z) 같은 해외 출연진과 김현철, 하드피아노 같은 국내 출연진 등도 출연한다.
이달 초 3일간 역대 최대 관객인 13만 명을 동원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상기하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첫 대규모 대면 행사인 '자라섬'에도 수만 관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자연, 가족, 휴식 그리고 음악’은 20년 동안 ‘자라섬’이 내세워 온 주제입니다. 음악 축제 역시 시간이 지나면 무형문화재처럼 우리의 중요한 문화 자산이 된다고 봅니다. 20년, 30년, 40년이 지나도 건강하고 청량한 축제를 만들고 싶습니다.”(인재진 총감독)
2018년 '자라섬재즈페스티벌' 모습. 사진=자라섬재즈페스티벌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