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응열 기자] 윤석열 정부에서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대거 바뀌는 가운데 특정 직군·연령에 치중된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법조계와 법학계에서 커지고 있다. 최종적인 법리를 판단하는 최상급기관인 만큼 두 기관에서 해석하는 법적인 판단이 사회 전체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회 각계각층 의견을 듣고 이해의 폭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 재임 기간인 2027년 5월까지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13명 중 12명이 퇴임한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9명 모두 교체된다.
서울시 서초구 대법원. (사진=대법원)
현재 임기를 지내고 있는 대법관 13명은 대다수가 판사출신이다. 법관 코스만 밟다가 대법관에 오른 이는 △김명수 △오경미 △안철상 △민유숙 △이동원 △노태악 △천대엽 △이흥구 △노정희 △박정화 등 10명이다. 76%를 차지한다. 변호사 활동을 하다 대법관으로 선임된 조재연 대법관도 판사로 법조 경력을 시작했다.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한 김재형 대법관 역시 판사 출신이다. 판사 출신이 사실상 12명으로 92%에 달한다. 변호사였던 김선수 대법관만이 재야 법조인 출신이다.
대법관 연령대는 올해 기준 모두 50~60대다. 가장 젊은 오경미 대법관도 55세로 50대 중반이다. 김 대법원장은 64세고 조재연 대법관이 67세로 가장 고령이다. 40대 대법관은 없다.
헌법재판관 구성도 별반 다르지 않다. 유남석 헌재소장을 비롯한 9명의 재판관 중 7명이 판사 업무를 하다가 헌법재판소로 왔다. 판사로 법조 경력을 시작한 변호사인 이선애 재판관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8명이 법관 출신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을 지낸 이석태 재판관만 순수 재야 법조인 출신이다.
헌법 재판관의 연령대 역시 대체로 50~60대에 걸쳐있다. 이미선 재판관이 53세로 가장 젊고, 이석태 재판관은 유일하게 70세다.
특정 직군이나 연령대, 학벌, 성별 등에 쏠린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대법원과 헌재는 민사·형사·행정·국제법 등 법조 전반에 걸쳐 법리적인 이정표를 제시하는 상급기관이기 때문에, 판사 이외에 여러 직군의 전문성을 도입하고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이해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정권으로 분류되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 같은 사회적 요구는 좀처럼 반영되지 않았고 50대·60대와 판사 출신 법조인으로 구성이 집중됐다. 이런 탓에 법조계와 법학계는 대법원과 헌재 구성의 대거 교체를 앞둔 윤석열 정부를 향해 후임 인선시 구성 다양화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재경법원에서 근무하는 한 판사는 “형사쪽에서는 사건을 가까이 접하는 검찰이나 변호사 시각이 대법원에 필요할 수 있고, 행정법에 관해서는 학자 출신이 사건을 잘 판단할 수 있다”며 “국내법 수준으로 중요성이 커지는 국제법에 관한 분쟁을 다루기 위해서 외교관 출신의 법조인도 고려해봄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이 다루는 사건은 형사, 행정, 특허 등 분야가 넓고, 판단에 있어 판사가 다른 직군보다 우위에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며 “직군뿐 아니라 보다 다양한 시각을 제시할 수 있는 40대 대법관을 비롯해, 여성 대법관이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법원 내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다른 요인을 배제한 채 구성 다양화에만 초점을 맞출 수는 없지만, 능력과 도덕성 검증이 제대로 됐다면 대법원과 헌재의 구성은 다양할수록 좋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지난 2006년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자격을 인정하도록 규정한 법률에 위헌 결정을 한 헌재 결정처럼, 일반인의 시각으로는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판결이 나오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장애인 활동을 지원해온 법조인을 포함시키거나 절반 정도는 여성을 선임하는 등의 방법으로 두 기관이 사회 여러 구성원을 폭 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서울대 출신 편중 현상을 고쳐나가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출신 학벌을 비서울대 등으로 확대해 보다 다양한 환경에서 지식과 소양을 쌓은 이들을 선임하고, 이로써 다양성 확보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법률전문가들 중에서도 서울대 출신이 아닌 다른 학교 출신 인물을 대법관과 헌법 재판관으로 선임해야 한다”며 “다양한 교수진 밑에서 다양한 의견을 배우며 성장한 이들이 다양한 견해를 가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서울시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있다. (사진=뉴시스)
김응열 기자 sealjjan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