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기사들을 마무리 했다. 아주 잠시 숨 좀 돌리는데. 며칠 전 뉴스 방송을 통해 본 장면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게 계속 머리 속에 남아 있었다기 보다 내 머리 속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다가 내가 방심한 틈을 노려 번뜩하고 내 의식을 때리는 느낌이다.
“아들에게 미안하지 않습니까?”
한 기자가 아들을 죽인 엄마에게 묻는 질문이었다. 아들을 죽인 엄마는 고개를 숙인 채 당연히 아무 말도 없이 여형사들에게 양팔이 붙들린 채 끌려가고 있었다.
초등학생 발달장애인 아들을 죽인 엄마. 정확하게 기억 나지 않지만 아들의 발달장애 때문에 학교도 1년 늦게 입학시켰다는 것으로 기억된다. 엄마는 혼자 아이를 키웠다고. 생활고 때문에 아들을 죽였다고. 물론 본인도 자살하려 했겠지. 하지만 그게 쉬웠을까. 그럼 아들을 죽이는 건 쉬웠겠나. 글쎄 거기까진 모르겠다. 저 엄마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고 저 엄마의 행동에 면죄부를 주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추호도 없다.
정말 오래 전 내 페북에도 링크를 걸었던 적이 있지만 언론에 보도된 기획기사였다. 평생 발달장애 아들을 키우던 70대 아버지가 어느 날 50대 발달장애 아들을 망치로 때려 살해한 사건. 당시 기억에 아버지는 “그날 나도 모르게 머리 속에 퓨즈가 나간 것 같았다”라며. 아들을 살해 후 곧바로 투신했지만 죽지 않고 살아났다. 재판에서 그 아버지는 처벌을 받고 나온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삶을 살아가는 그 아버지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진 기사의 텍스트를 읽으며 숨이 막히는 듯했다.
그리고 몇 년 뒤 아들을 죽인 엄마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아들에게 미안하지 않느냐”라고 묻는 기자의 외침에 순간 숨이 막혀 버렸다.
오늘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과 관련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서 그리고 드라마 자체에서 가장 강조했던 게 하나다. 우리 사회가 돌봐야 하고 우리 사회가 이젠 인식해야 한다고. 어린 소년들에게. 그들의 범죄에게.
다시 말한다. 엄마가 아들을 죽였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였다. 자녀가 부모를 죽이면 패륜이라고 한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면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자식이 부모를 죽인다. 대부분 아마 거의 대부분 돈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죽인다. 대부분 거의 돈 때문이다. 그런데 앞과 뒤의 설명에서 돈의 개념은 다르다. 앞은 ‘탐욕’이고 뒤는 ‘삶’이다. 다시 말하지만 자식을 죽인 부모들의 죄를 두둔하고 이해하려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럴 이유 티끌만큼도 없다.
그 하찮은 돈 때문에 자식을 죽이고, 그 하찮은 돈 때문에 세상과 담을 쌓고 스스로 병들어 가면서 자식을 제 손으로 죽여야 하는 그 부모의 행위는 온전히 그 부모 혼자만의 몫이라고 해야 옳은 것인가. 다시 묻는다.
“아들에게 미안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무슨 대답을 원한 건가. 무슨 대답을….
가끔씩 이 세상이 진짜 지옥이라고 느껴진다.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