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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끄러미 하늘을 쳐다본다. 그리고 나지막이 “가을하늘 공활한데 맑고 구름 없이”라는 애국가 3절의 시작 부분을 중얼거린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잠시나마 가슴이 확 뚫리는 것 같다. 가사에 나오는 ‘공활(空豁)’이라는 말처럼 하늘은 정말 텅 비어 있고 무척이나 넓다. 구름의 행선지를 따라 나도 저 넓디넓은 텅 빈 하늘 길을 자유롭게 떠다니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뿐일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을 헤쳐 나가고 있는 동시대의 사람들이라면 지금의 저 가을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축복이고 아름다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저 하늘과 함께 전보다 깨끗해진 공기도 고맙다. 눈(眼) 질환과 비염을 앓고 있는 어떤 이는 전보다 공기가 깨끗해졌다는 말과 함께, 요즘은 눈과 코가 더 편해졌다는 느낌을 피력한다. 잠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낳은 세상 풍경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사람들은 어쩌면 앞으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와 불편한 동행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운명을 말하기도 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 살았던 시절이 너무나 그립다고도 한다.
갈증이다. 세상은 목마름의 연속이다. 눈과 귀를 자극하는 기사들로 갈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특히 정치 분야에서 누적된 피로는 더 갈증을 불러일으킨다. 그 갈증의 양상들을 일일이 나열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나열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갈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힘든 시절을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다음의 글이 떠오른다.
“이지(理智)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휘말리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려운 것이 심해지면, 살기 쉬운 곳으로 옮기고 싶어진다. 어디로 이사를 해도 살기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을 때, 시가 생겨나고 그림이 태어난다.// 인간 세상을 만든 것은 신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역시 보통 사람이고 이웃끼리 오고 가는 그런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만든 인간 세상이 살기 어렵다고 해도 옮겨 갈 나라는 없다. 있다고 한다면 사람답지 못한 나라로 갈 수 밖에 없다. 사람답지 못한 나라는 인간 세상보다 더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 문장은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가 쓴 명작 『풀 베개(草枕)』(1906)의 도입 부분에서 볼 수 있다. 백 여 년 전에 출간된 이 작품의 문장들이 어찌하여 지금 이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소통하고 있을까. 소통에는 해법도 담겨 있는 듯하여, 소설은 또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옮겨 살 수도 없는 세상이 살기가 어렵다면, 살기 어려운 곳을 어느 정도 편하게 만들어서 짧은 생명을, 한 동안만이라도 살기 좋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중략)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살기 어렵게 하는 번뇌를 뽑아내고, 고마운 세계를 직접 묘사해내는 것이 시고 그림이다. 혹은 음악이고 조각이다.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면 묘사해내지 않아도 좋다. 그저 직접 보기만 하면 거기에서 시도 생기고, 노래도 샘솟는다. (중략)”
구구절절 마음에 와 닿는다. 이 글을 백 년 후에 벌어지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시절에 덧대니 가슴을 더 후벼 판다. 작가는 이 간난의 시절을 풀어내는 방법으로 시와 그림, 음악과 조각, 노래 등을 제시하고 있다. 즉, 예술로 삶에서 오는 갈증을 풀어내라고 그 해법을 던져주는 듯하다. 어쩌면 예술은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인간의 목마름을 풀어줄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것이 예술이 가진 중요한 기능의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의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 1943~ )가 “중세 프랑스에서 흑사병 이후 '테이블 아트' 즉, 미식 문화가 생겨난 것처럼 전염병 이후엔 새로운 예술이 등장하곤 했다. 전염병은 변화를 촉진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유효하게 들린다. 그리고 그가, “창조하고, 발명하고, 성장하라. 우리 스스로 예술가가 돼 호기심을 갖고 찾아보러 가야 한다."는 방식의 제시는 갈증의 계절을 지나고 있는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음악처럼 전해진다.
목마름이 더해가는 시간. 움츠리고 있는 예술의 기운을 깨워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공활한 가을 하늘처럼 가슴이 뻥 뚫릴지도 모른다.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비즈니스 일본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