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민경연 기자]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이 은행권을 상대로 집단소송에 나섭니다. 판매사인 은행권의 자율배상 동의율이 66%를 넘어섰지만, 나머지 투자자들은 금융당국과 은행들이 제시한 배상안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홍콩ELS 투자자들이 형사소송을 비롯해 100% 보상을 목표로 중장기전으로 뛰어드는 가운데 실효성에 대한 전망은 엇갈리고 있습니다.
홍콩ELS 투자자 800여명 소송 채비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ELS 투자자들은 이달 중 정확한 참가자 규모를 정리하고 본격적인 소송전에 나선다는 방침입니다. 홍콩ELS 투자자들로 이뤄진 금융사기예방연대는 이달 중 법무법인 YK와 정식 계약 후 형사소송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금융사기예방연대 관계자는 "최근 피해자들과 소송 비용과 자료 등을 공유하면서 소송비를 모으고 있다"며 "이번 주 중으로 관련 절차를 마무리하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단체는 형사소송을 먼저 제기한 후 형사소송 결과에 따라 민사소송을 진행한다는 방침입니다.
홍콩ELS 투자자를 대상으로 소송을 준비하는 모임에는 현재 약 780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소송 대상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SC제일은행 등 홍콩ELS 상품을 판매한 6개 은행입니다. 은행권은 지난 3월부터 홍콩ELS 투자자에 대한 자율배상을 진행 중입니다.
지난달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 등 5대 은행(판매 금액이 적은 우리은행 제외)의 자율배상 동의율은 66.3%에 달합니다. 판매 규모가 가장 큰 국민은행의 경우 자율조정대상계좌 8만4284좌 중 76.5%인 6만4477좌가 조정을 수용한 상태입니다.
계약 취소·100% 배상 주장
홍콩ELS 투자자들이 집단소송에 나서는 것은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마련한 자율배상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3월 판매사와 투자자간 분쟁이 속히 해결될 수 있도록 홍콩ELS 관련 분쟁조정기준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판매사 요인과 투자자 고려요소, 기타 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0~100% 이내에서 배상 비율을 결정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최대 배상비율은 100%지만 실제 합의자들의 배상비율은 평균 30%대 수준에 불과합니다. 한 시중은행의 배상 진행 세부내역을 보면 배상안내 대상의 손실액 대비 배상액 비율은 평균 30.9%, 배상동의자의 손실액 대비 배상액 비율은 평균 33.7%로 나타났습니다.
판매사가 적합성 원칙, 설명 의무, 부당권유 금지 등 판매원칙을 위반하거나 불완전판매를 했는지 여부에 따라 기본배상비율 20~40%를 적용합니다. 불완전판매가 있었다면 은행은 최대 10%포인트, 증권사는 최대 5%포인트까지 내부통제 부실로 인한 배상비율 가중치를 가산합니다.
투자자별로는 고령자 등 금융취약계층인지, ELS 최초 가입자인지에 따라 최대 45%포인트를 가산합니다. 또한 ELS 투자 경험이나 금융 지식 수준에 따라 투자자 책임에 따른 과실 사유를 배상 비율에서 최대 45%포인트 차감합니다.
민사소송 결과까지 '산 넘어 산'
다만 장기전으로 이어질 경우 홍콩ELS 투자자들에게 득이 될지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자본시장법의 근간인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은 ELS 같은 고위험 투자상품의 경우 투자자가 손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은행의 불완전판매를 입증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다만 계약서와 투자성향분석표, 해피콜 녹취자료 등 ELS 가입 당시 남은 자료에 본인이 자필로 서명했다면 법원은 당사자 의사에 따라 계약이 이뤄졌다고 해석합니다.
또한 불완전판매의 증거가 될 녹취파일 등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관련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사례도 많습니다. 상품 가입 이후 소비자의 이해도를 확인하는 '해피콜'에서도 "예"라고 대답했다면 불완전판매로 판단받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과거 불완전판매로 '계약 취소'를 판정을 받아냈던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와 다르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ELS의 경우 상대적으로 상품 구조가 정형화돼 있었고, 재가입자 비율이 90%에 달할 정도로 대중화된 상품이었습니다.
형사소송을 거쳐 민사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소진되는 데다 과거 사례로 봤을 때 100% 배상은 쉽지 않다는 점도 관건입니다. 지난 2020년 말 DLF 손실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던 투자자의 경우 2년이 지난 2023년 1월 1심 승소 판결을 받아들었습니다. 이 건의 경우에도 투자자 과실이 인정돼 배상 책임은 60%로 제한됐습니다.
은행들은 소송을 경계하는 분위기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송이나 분쟁조정에 가서도 배상 비율이 더 낮아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일부 불완전판매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고객들은 ELS가 투자상품이라는 걸 모르고 가입한 분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면서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소송에 따른 실익이 크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은행권의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 손실 자율배상 동의율이 대상자의 70%에 이르는 가운데, 일부 소비자의 법적 대응이 가시화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민경연 기자 competiti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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