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수은·무보 밥그릇 싸움 '풀리지 않는 갈등'
(11개 정책금융기관 비교검증)(1)업무중복
수출지원 업무 같지만 소관부처 달라
2024-08-08 06:00:00 2024-08-08 11:31:50
 
 
K-정책금융연구소는 11개 주요 정책금융기관에 대해 △시스템 △경영전략과 성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을 평가합니다. 먼저 정책금융기관 간 업무중복 문제를 들여다봤습니다. 업무중복 논란이 있는 8개 기관 가운데 6곳의 소관부처가 모두 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부처 간 업무 조율이 부재한 상황에서 기관 간 '밥그릇 싸움'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연구소는 유사 업무 경쟁으로 인해 국민 선택권이 제고되는 것인지, 혈세 낭비로 이어지는 것인지 진단합니다. 
 
[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는 대외 보증업무의 중복으로 갈등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수은은 대외채무보증을 확대해 국내 기업 수출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무보는 수출입은행의 영역 확대가 불편하기만 합니다. 수은과 무보는 각각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입니다.
 
수은은 지난 1976년 설립된 정책금융 기관입니다. 수출입은행법 제1조에 따르면 수은의 설립 목적은 수출입, 해외투자 및 해외자원개발 등 대외 경제협력에 필요한 금융을 제공하는 역할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수출과 수입, 해외사업 등과 관련한 대출, 채무·이행성 보증 등의 금융상품을 취급합니다.
 
무보 전신인 한국수출보험공사는 '수출금융제도 선진화'라는 명분으로 1992년 출범했습니다. 이후 2010년 한국무역보험공사로 재출범했습니다. 출범 당시만 해도 무보는 164명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817명(지난 2분기 기준)이 근무하는 거대조직으로 성장했습니다. 수은의 현재 인원은 1322명입니다.
 
대외 보증업무 두고 '옥신각신'
 
두 기관은 공적수출신용기관(ECA)입니다. ECA는 국내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 국제 수출 촉진을 지원합니다. 수은과 무보는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 간 수출입, 즉 무역과 관련한 정책금융을 담당하는 쌍두마차와도 같습니다. 다만 두 기관의 업무는 조금 다릅니다. 수은은 말 그대로 은행으로서 기업에게 대출 및 보증 같은 직·간접 정책금융을 하는 반면, 무보는 보험과 보증을 통해 간접적으로 정책금융을 지원합니다. 두 기관이 ECA라는 공통점을 가지지만 수은은 대출을, 무보는 보험을 다루는 것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두 기관은 대외 보증업무를 두고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수은의 대외채무보증과 무보의 중장기수출보험(구매자신용)이 용어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업무이기 때문입니다. 대외채무보증이란 해외 법인이 국내 물품을 수입하면서 구매 대금을 국내·외 금융회사로부터 대출받을 때 이뤄지는 보증입니다.
 
무보에 따르면 무보의 연간 사업 수입 중 보험료 수입은 전체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지난 3년 간 중장기수출보험이 총 보험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6%로, 무보에게 주력 사업인 셈입니다.
 
대외채무보증 한도를 늘리는 내용의 수은법 시행령이 지난해 개정되면서 수은과 무보 간 갈등은 극에 달했습니다. 시행령 개정 전 수은의 대외채무보증 연간 한도는 연간 보험인수금액의 35%였는데요. 지난해 법 개정으로 50%까지 늘어났습니다. 수은의 주무부처인 기재부는 시행령 개정으로 수은이 국내 기업의 수출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당시 폴란드 정부가 국내 기업과 방산 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수은의 대외채무보증 한도 확대 필요성이 대두된 영향도 있습니다. 
 
감사원 경쟁 자제 권고에도 요지부동
 
수은의 대외채무보증 한도 확대에 무보에서는 반발하는 분위기가 역력했습니다. 무보의 중장기수출보험이 위축되며 보험료 수입이 감소할 수밖에 없고, 결국 중소 수출기업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보 노조는 "국부 유출과 불필요한 정책금융 기능 중복을 야기하는 개악"이라며 "양 기관의 설립 취지와 2개로 운영되는 수출신용기관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감사원과 예산정책처 등도 대외채무보증과 중장기수출보험을 동일 제도로 간주해 경쟁 자제를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무보 노조는 개정안 입법예고 철회 요구 의견서까지 제출하며 반발했지만 개정안은 지난해 4월 시행됐습니다.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는 16년 째 무역 보험 업무 중복 논란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수출입은행(왼쪽), 무역보험공사 사옥 (사진=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수은과 무보의 업무 중복 논란은 국정감사의 단골 소재입니다. 감사원이 업무 갈등이 재발하지 않도록 지적하고 있지만 두 기관이 요지부동이기 때문인데요. 두 기관의 업무 갈등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통폐합을 논의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수은 관계자는 "해외수주 산업 규모가 점차 대형화되는 추세에 따라 우리나라 전체의 정책금융 지원 여력이 확충돼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무보 관계자는 "이제는 (업무 중첩에 대한) 분쟁은 과거로 묻어두고 우리나라 수출을 위해서 양 기관이 협력적인 관계로 나아갈 때"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무보 일각에서는 여전히 수은의 업무 영역 확대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여론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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