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슈퍼사이클 도래)미중 갈등 노골화…한국은 ‘샌드위치’ 신세
미 정부, 대중국 수출제한 강화 검토
중 '반도체 굴기' 맞불… 64조 사상 최대 투자기금 조성
국내 반도체 기업, 1위 수성 위한 초격차 기술 확보 절실
2024-07-29 14:00:00 2024-07-30 16:53:57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미중갈등 장기화에 따라 국내 반도체 업계가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미 본격적인 반도체 슈퍼사이클(대호황)에 접어든 가운데, 미국 대선이 끝난 후 2차 무역전쟁의 막이 오를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습니다. 이에 따른 국내 반도체 업계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국내 메모리반도체 산업이 세계 1위를 수성하기 위해 글로벌 초격차 기술력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입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중국 수출에서 반도체는 1위 품목입니다. 6월까지 8개월 연속 증가세가 이어져 신시장 창출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중국 못지 않게 미국도 중요합니다. 대미국 수출에서 1위 품목은 자동차이지만 반도체도 높은 수출증가율을 기록 중입니다. 6월에는 전년동월대비 215.4%나 증가했습니다. 올 상반기 누적 기준 중국과 미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액은 각각 219억7000만달러(약 30조), 43억3000만달러(약 6조)입니다. 미국의 보호주의 명목 아래 우리나라가 중국시장을 포기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미국에도 밉보일 수 없어,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최근 공급망 갈등은 한국을 양쪽에서 압박합니다.
 
이 가운데 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트럼프 2기가 현실화 할 경우 미중 갈등 본격화와 반도체 업계의 여파를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반도체 칩.(사진=연합뉴스)
 
"첨단 산업 기술 격화…국내 반도체 기업 연쇄 피해 가능성"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을 비롯해 첨단 산업 기술 경쟁이 격화된 가운데 미국의 대중 강경책과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고래 싸움에 낀 신세가 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추후 연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수출 제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자 국내 기업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추가 규제 내용과 방식 등이 확정되기 전이어서 업계의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앞서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정부가 동맹국들에 동맹국의 반도체 기업이 중국에 첨단 반도체 기술 접근을 계속 허용할 경우 가장 엄격한 무역 제한 조치 사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방침을 밝혔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통신은 이들 국가가 자체적으로 대중국 제재를 강화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나설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장비·기술 등을 조금이라도 사용했으면 수출 시 미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한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 등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미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도 "대만이 미국 반도체 산업의 거의 100%를 빼앗았다"며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의 대중국 견제 수위는 더욱 강화될 전망입니다. 논의되는 대상은 게이트올어라운드(GAA)와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최신 기술입니다. 
 
GAA는 기존 핀펫 공법의 한계를 극복할 차세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술로 꼽힙니다. 삼성전자는 3나노 기반 파운드리 공정에 GAA를 세계 최초로 적용한 데 이어, GAA를 앞세워 파운드리 1위인 대만의 TSMC를 따라잡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HBM은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으로, D램 여러 개를 수직으로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끌어올렸습니다. 현재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HBM 시장 점유율을 합치면 90%에 달합니다.
 
업계에선 미국의 추가 규제가 중국의 반도체 역량을 제한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일단 미 정부의 대중국 견제로 국내 반도체 기업이 일정부분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중국이 GAA, HBM 등 최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기술력을 따라잡는 데 시일이 걸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이 해외 업체의 중국 판매 제한 등으로 중국 견제를 확대할 경우, 국내 반도체 기업에 미칠 파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 기업으로서는 값싼 노동력 등을 이유로 중국에서 생산역량을 키우고 있는 중이어서 두 나라 중 어느 한쪽 편에 서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중국 반도체.(사진=연합뉴스)
 
미중 기술 패권 속 '반도체 대전'"산업계 협상력 필요"
 
반면 중국의 경우 반도체 굴기를 통해 자국 내 반도체 생산능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지난 5월 반도체 굴기의 일환으로 3440억위안(약 64조6720억원) 규모의 사상 최대 반도체 투자기금을 조성했습니다.
 
이는 미 정부가 수출통제 조치 등을 통해 중국 반도체 산업 견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됩니다. 특히 미국이 한국과 네덜란드, 독일, 일본을 포함한 동맹국에 중국의 반도체 접근 제한 강화를 촉구한 데 따른 맞불 정책으로 풀이됩니다. 
 
해당 기금은 중국 정부가 사실상 직접 운영할 전망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사상 최대 규모인 3차 펀드를 조성하며 반도체를 위시한 과학기술 자립자강으로 미국 견제에 맞서 기술패권 경쟁에서 겨루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첨단 반도체 선점을 위한 글로벌 경쟁이 한층 가열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여기에 유럽연합(EU), 일본, 인도, 대만까지 반도체 기술 패권에 가세하면서 반도체 세계대전에 돌입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접어든 현재 한국이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 수성을 위한 반도체 안보 정책과 세제 혜택, 인력지원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아울러 전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확산되고 있지만 적절한 협상력을 통해 우리 정부와 산업계의 이익을 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됩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대 교수는 "미국이 아무리 보호주의 정책을 펼친다고 하더라도 산업 구조상 모든 부분을 미국 혼자 감당하지는 못한다"며 "그렇기에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생각으로 미래를 위해 가장 핵심적으로 수성해야 할 우선 순위를 합리적으로 설정하고 자신들이 포기할 수 있는 것들은 과감히 포기할 수 있는 대신, 그 포기에 대한 보상을 확실히 받아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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