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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레드팀 실종…직언·쓴소리 없이 대통령 엄호만
"여론도 뒷전, 심기경호에만 몰두"…"레드팀은 어불성설, 대통령이 인식을 바꿔야"
2022-10-05 17:37:16 2022-10-05 19:34:26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대통령실이 윤석열 대통령 엄호에 올인하면서 내부에서 직언이나 쓴소리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현재 대통령실이 가장 신경 쓰는 대목은 미국 뉴욕 순방 중 있었던 윤 대통령의 '비속어' 파문이다. 대통령실은 "바이든"이 아닌 "날리면"이었다는 입장을 내놓은 데 이어, 당시 해명에서는 우리 국회, 야당을 지칭했다는 "이 XX들" 관련해서도 부인으로 돌아섰다. 그러면서 진앙을 MBC의 자막조작, 가짜뉴스로 규정하며 전선을 형성했다. 윤 대통령의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여전히 없다.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지난달 29일 브리핑에서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언론인들이 많이 제기하는 비속어 논란, 저희 쪽에서 말하는 건 가짜, 바이든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 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XX들"에 대해서도 "잡음을 없애고 들어보면 또 그 말이 안 들린다"며 "그래서 모든 게 불분명하고, 그 뒷부분(바이든 또는 날리면) 같은 경우 전혀 아닌 것도 나와 좀 분명하게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는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는 발언 보도에 대해 뉴욕 현지에서 '바이든'을 전혀 언급한 적 없으며 '이 XX'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변 참모진에 말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앞서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해당 발언이 있은 지 16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브리핑을 열고 '바이든'이 아닌 '날리면'이었으며, '이 XX' 대상도 미국 의회가 아닌 우리 국회라고 해명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XX'발언 관련해 국회와 야당에 유감 표명은 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따로 말씀드리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김대기 실장이 지난 3일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 모두발언을 통해 "언론사가 가짜뉴스로 한미동맹을 훼손하는 일도 있었고 대통령의 외교 성과가 상당한데도 국회에선 외교장관 해임을 건의하는 일도 있었다"며 MBC와 민주당에 책임을 돌린 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이런 논란이 벌어지고 있어 국민에게 면목이 없다"는 게 사실상의 유감 표명이라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비속어에 면목이 없다는 건지, 특히 발언 당사자인 윤 대통령의 직접 해명을 기대하는 국민 입장에서 보면 이는 지극히 두루뭉술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대통령실은 느닷없이 순방 성과를 재강조하고 나섰다. 윤석열정부 출범 후 첫 국정감사를 이틀 앞둔 지난 2일 김은혜 홍보수석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이 미국·캐나다 순방과 해리스 부통령 방한을 통해 대한민국 외교 방향을 명확히 선언했다"며 "IRA 대응, 금융안정을 위한 유동성 공급, 대북 확장억제 등 당면 문제의 해결 가능성을 높였다"고 자평했다. 야당과 대다수 언론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영국 조문 논란을 시작으로 48초 짧은 환담으로 끝난 한미 정상회담과 30분 약식회담으로 대체되며 과거사 언급조차 없었던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지적이 제기된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여론 대신 윤 대통령 눈치만 살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논란을 뒤로 한 채 윤 대통령은 민생 행보를 보이지만 국민 여론은 냉담하기만 하다. 지난 30일 발표된 뉴스토마토·미디어토마토의 '선거 및 사회현안 54차 정기 여론조사'에서 국민 54.1%는 윤 대통령의 영국·미국·캐나다 3개국 순방에 대해 100점 만점 기준 25점 이하의 낙제점을 매겼으며, 논란이 된 발언 역시 절반 넘는 58.7%가 "언론 보도대로 '바이든'으로 들었다"고 했다. "대통령실 해명대로 '날리면'으로 들었다"는 29.0%에 그쳤다. 또 60% 이상은 비속어 대상이 된 국회와 민주당을 향한 윤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했다.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55.8%가 '실패한 회담'으로 바라봤다.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이 대통령실 자평과 달리 총체적 실패로 규정되면서 국정운영 지지도 역시 급락했다. 한국갤럽이 같은 날 발표한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8월 첫째주에 이어 또 다시 24%를 기록하며 최저치로 떨어졌다.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여권 안팎에선 이 같은 현상이 대통령에 직언하지 못하는 경직된 분위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레드팀도 사실상 실종됐다.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레드팀이라는 말은 사실상 금기어"라며 "대통령이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다른 관계자는 "저희가 (대통령께)의견 자체를 안 드리는 건 아니다. 다만 전체 노선이 결정됐을 때 존중하고 서포트해야 되는 부분들도 있다"고 했다. 이어 "의사결정이 단순하게 이뤄지지 않다보니 발생하는 한계들이 있다"며 "회의를 거쳐서 여러 의견들 중에서 채택을 해서 의사결정이 되는 거라 100% 효율적으로만 이뤄지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의 대선 캠프 대변인을 지낸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 때문에 이긴 거야. 나는 하늘이 낸 사람이야'(라고 한다.) 1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한다.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느냐'며 화부터 낸다"는 의미심장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전 위원은 "항우가 왜 실패했나. '스스로 공을 자랑하고 그 자신의 지혜만 믿었지 옛 것을 본받지 않았다'는 사마천의 간단명료한 진단이 가슴을 때린다"며 "누군가의 얼굴이 바로 떠오른다. 큰일이다"고 우려했다. 그가 항우에 빗댄 인물은 윤 대통령으로 해석된다.
 
쓴소리도 달갑게 듣겠다는 분위기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이준석 키즈로 꼽혔던 1993년생 박민영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지난 7월 집권여당 대변인으로선 이례적으로 윤 대통령의 인사 관련 발언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후 대통령실은 지난 8월 박 전 대변인에게 함께 일할 것을 제안했다. 당시 박 전 대변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 곁에서 직접 쓴소리를 하며 국정을 뒷받침해 보려 한다"며 "누구도 대통령에게 쓴소리하지 못할 때 가장 먼저 포문을 열었던 저를 포용해주신 대통령의 넒은 품과 변화의 의지를 믿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겠다"고 적었다. 하지만 현재 박 전 대변인의 존재감을 찾긴 어렵다.
 
결국 근본적으로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권 한 인사는 "대통령이 '바이든'이라고 안 했고, '이XX'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데 참모들이 무슨 얘기를 하겠느냐. 이런 상황에서 레드팀은 어불성설"이라며 "대통령 본인이 생각과 인식을 바꾸지 않고는 참모들이 쓴소리 하는 여건은 만들어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도 "여론은 뒷전인 채 심기경호에만 몰두하고 있다"면서도 "지금으로서는 두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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