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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검객’, 야수의 시대 살아간 칼의 뜨거운 진심
남자 그리고 칼, 혼란과 힘의 지배 속 세상을 향한 분노 폭발
칼을 통한 대화, 칼을 향한 인물 설명, 인물 관계 속 ‘무와 협’
2020-09-18 00:00:00 2020-09-18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야수의 시대다. 강한 자만이 살아 남는 시대다. 힘 앞에 굴종하는 시대의 비극이다. 조선 중기 광해군 시절은 중국 대륙을 지배한 청나라가 이빨을 드러내던 시대다. 그 시절, 조선의 역사는 굴종의 비극을 담고 있었다. 비극은 필연적으로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비극이 지배하는 야수의 시대는 궁극적으로 영웅을 만들어 낸다. 그 시절 조선을 다스린 군주 광해는 그랬다. 반정으로 폐위된 광해는 지금에선 재평가를 받아 마땅한 군주로 주목된다. 하지만 그 시절의 군주 광해는 명과의 사대의 명분을 저버린 패악의 군주였다. 명분이 지배하는 그 시절은 결국 야수가 지배하는 시대였다. 영화 검객은 번뜩이는 칼의 날카로움을 담은 한 남자의 처절한 외침이 담겨 있다. 명분과 실리의 충돌 속에서 한 남자는 세상에 분노한다. 야수의 시대를 살아간 한 남자의 분노는 오롯이 칼 속에 담긴 채 세상을 베어버리려 한다.
 
 
 
광해군 폐위인조 반정 시기다. 광해의 호위무사였던 겸사복’(이민혁)은 자신의 상관 민승호(정만식)가 주군 광해를 향해 칼을 들이댄 것에 분노한다. 겸사복은 민승호에게 무사의 본분을 묻는다. 민승호는 대답 대신 칼을 겨눈다. 무사의 응답이다. 둘은 칼을 부딪친다. 다시 말하지만 야수의 시대다. 강한 자만 살아 남는다. 겸사복은 혼란스럽다. 강한 자는 도대체 누군지. 시대의 야수가 강한 자인지, 아니면 시대의 혼란을 이용하는 그들이 야수인지. 민승호와 겸사복의 칼을 굉음을 울리며 스크린을 찢는다.
 
세월은 흘렀다. 조선은 청나라의 압박과 득세에 시달리는 바람 앞의 등불이다. 청나라 황제의 조카 구루타이(조 타슬림)은 황방을 운영하는 방주다. 그는 황제의 권위를 능가하는 힘을 이용해 조선의 군주를 압박한다. 청나라로 끌려간 조선의 포로들을 돈을 받고 팔아 넘기는 노예상이기도 하다. 사실 그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조선을 자신의 노예 보급소처럼 운영하려는 야욕을 숨기고 있었다. 또 한 가지, 구루타이를 설명할 수 있는 한 단어. 바로 이었다. 청나라 황제의 조카이자 노예상인 황방의 방주였지만, 황방의 노예 매매는 겉모습일 뿐. 실제로는 중국 대륙을 지배하는 청나라 황실 최고의 살수 집단이었다. 구루타이는 그 살수 집단 최고 고수이자 수장인 셈이다.
 
영화 '검객' 스틸. 사진/오퍼스픽쳐스
 
그런 그의 눈에 태율(장혁)이 들어온다. 태율은 세상을 등지고 산 속에서 딸 태옥(김현수)과 살아가는 촌부일 뿐이다. 눈 앞이 점점 흐려지는 병을 앓고 있다. 태옥은 아버지 태율의 병을 고치기 위해 세상으로 나오고, 태옥은 우연한 기회에 객잔 화선당객주 화선(이나경)을 만난다. 화선은 조정의 대신 이목요(최진호) 대감의 은밀한 부탁을 받고 태옥을 이끈다. 태옥은 이목요 대감으로부터 양딸제안을 받는다. 대가는 아버지 태율의 눈을 고칠 수 있는 약을 구해주겠단 약속이다. 이런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 구루타이는 이목요와 조선의 군주를 압박해 청나라로 끌고 갈 공녀 선발권을 얻는다. 거기에 태옥이 끌려갈 위기에 처한다. 조선의 백성들이 노예로 청나라에 끌려가고 태옥까지 공녀로 끌려갈 위기에 처한 상태에서 태율은 버렸던 검을 들고 화선당으로 들이쳐 구루타이의 수하들과 피 튀기는 격전을 펼친다. 이제 태율의 검은 구루타이를 향한다. 이목요의 수하로 있던 민승호는 과거 자신과 칼을 부딪친 겸사복의 검술을 태율의 칼 끝에서 보게 된다. 10년도 더 훌쩍 지난 그 시절의 겸사복과 태율의 관계. 그리고 태율과 구루타이의 대결. 두 사람의 대결이 펼치는 칼의 대화.
 
검객은 야수의 시대를 살아간 그 시절 그 사람들의 칼의 대화다. 이 영화에서 은 신념이다. 반정을 도모한 이목요를 필두로 한 그들의 칼. 그 칼은 나라를 위한 칼도, 군신의 신의를 위한 칼도, 백성을 위한 칼도 아니었다. 그들의 칼은 정치를 위한 칼이었고, 권력의 카르텔을 위한 칼이었고, 힘의 욕망을 위한 칼이었으며 생()을 위한 칼이 아닌 타인의 죽음을 위한 칼이었을 뿐이다. 반면 태율과 겸사복의 칼은 그저 존재 자체를 위한 증명이었다. 자신을 믿어 준 군주에 대한 신의였고, 그 신의에 대한 믿음을 담고 있었으며, 믿음에 대한 충()의 검이었다.
 
영화 '검객' 스틸. 사진/오퍼스픽쳐스
 
검객은 제목 그대로 칼을 든 남자들의 얘기다. 야수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칼은 그들의 삶을 지탱한 굳건한 믿음이었다. 그 칼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한 방향은 칼을 든 자의 몫이다. 구루타이가 승자의 무자비함을 위해 치켜 든 험악한 도()일도양단을 위한 권력의 상징이다. 자신을 따르던가, 아니면 죽음을 향하던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구루타이의 거대한 는 그 시절 청나라와 조선의 주종관계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도구적 장치다. 반면 태율의 부러진 검()은 잘려나간 신념이고, 배신 당한 신의를 상징한다. 태율은 부러진 검을 치켜들고 딸 태옥을 구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야수의 본진으로 진격한다.
 
검객은 칼을 든 남자들의 얘기이지만, 반대로 칼의 얘기이기도 하다. 다양한 칼이 등장한다. 앞서 언급한 구루타이의 거대한 ’, 태율의 부러진 ’, 민승호의 환도’. 그리고 구루타이 수하들의 변칙적인 도검류. 모두가 각각의 인물들 그들의 캐릭터를 상징하는 부차적인 도구들이다. 각각의 인물들을 대신한 도와 검의 격돌은 국내 상업 영화에선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던 무협의 활극을 제대로 풍겨내고 그려내고 완성시킨다.
 
영화 '검객' 스틸. 사진/오퍼스픽쳐스
 
영화 초반 등장한 민승호와 겸사복, 그리고 태율과 민승호의 관계, 이목요와 민승호, 광해와 겸사복 등 각각의 인물 관계가 세밀하게 서사되지 않은 점은 검객의 유일한 단점일 수는 있다. 인물의 관계성이 검객의 진심은 아니기에 연출의 방향성에서 과감한 생략과 유추로 풀어낸 점은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서사 중심의 관람에선 단점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
 
검객은 칼을 든 남자들의 얘기다. 칼이 주인공이던 야수의 시대를 그린다. 그 야수의 시대를 살아간 한 남자의 서늘한 분노가 드러난다.
 
영화 '검객' 스틸. 사진/오퍼스픽쳐스
 
칼이 신념이 될 수 밖에 없던 시대에서 칼의 진심이 오롯이 담긴 장르 영화가 오랜만에 상업영화 시장에 등장했다. 개봉은 오는 23.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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