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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다만 악’ 이정재 “관객 분들에게 상상할 틈을 주고 싶었다”
“황정민이 ‘인남’이라 생각하고 읽은 시나리오, 그림이 그려지더라”
“‘레이’의 무자비한 인간성, 여러 설정과 감독과의 대화로 만들었다”
2020-08-09 00:00:00 2020-08-09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사실 겨우 단 두 편뿐이었다. ‘관상의 수양대군은 지금도 한국영화 역사상 최고의 악역으로 평가 받는 캐릭터다. 그리고 이번 영화가 실질적인 두 번째 악역이다. 이정재는 자신을 악역의 대명사로 꼽는 것이 못내 아쉽다며 웃는다. 물론 한 때는 대한민국 청춘의 표상처럼 여겨지던 시기도 있었다. 멋지고 선한 인물, 권선징악의 중심에만 있어야 할 것 같은 이정재였다. 본인도 그랬다고 웃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쩔 수 없는 자리 이동이었을 것이다. 그것조차 인정한다. 그렇다고 중심에서 벗어나진 않고 있다. 아직까진 그렇다. 이정재라서 당연한 것이고, 이정재이기에 당연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정재만큼 캐릭터의 두 얼굴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도 드물다. 악인이라고 하지만 처절한 악인이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는 인물. 악을 표현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동정을 할 수 있고, 또 이유를 부여할 수 있는 연기. 그래서 이정재는 아직도 충무로의 대체불가 캐릭터 가운데 최정점에 선 배우라고 꼽아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이정재를 보면 이런 평가에 대해 부인할 관객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 싶다.
 
배우 이정재. 사진/CJ엔터테인먼트
 
우선 가장 이슈가 되는 점은 황정민과 무려 7년 만에 한 작품에서 다시 만난 점이다. 남자 배우 두 명이 한 작품에서 다시 만난 게 뭐 그리 대수일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7년 전에 촬영한 영화가 신세계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대한민국 영화에서 신세계는 느와르 장르에서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는 기준점 같은 작품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전혀 다른 관계가 됐다.
 
아주 잘 맞는 배우와 한 작품에서 다시 만나는 건 인연이 있어야 되는 일 같아요. 그 작품이 내게 오고, 또 내가 그걸 선택하고. 또 그 배우가 그걸 선택하고, 그 작품도 그 배우에게 가야 하고. ‘신세계에서 정민 형과 정말 잘 맞았죠. 그때도 꼭 다시 해보자라고 했는데. 그게 7년이나 걸렸네요. 하하하. ‘다만 악시나리오는 정민형이 캐스팅이 된 상태에서 제가 받았어요. 읽어보니 정민형이 이런 걸 살려주면 정말 멋진 그림이 나오겠다 싶었죠.”
 
결국 이정재가 다만 악을 선택한 이유의 가장 큰 중심은 황정민의 출연 확정이란 얘기였다. 물론 그 점만이 이정재를 이 영화로 이끈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의 시선을 사로 잡은 것은 사실 본인이 연기를 해야 할 레이란 인물이었다. ‘레이는 한국영화에서 전무후무할 강력함을 지니고 있다. 무자비할 정도의 잔인함은 둘째다. 배우 본인이 이 캐릭터에 덧씌울 레이어가 무궁무진해 보였다.
 
배우 이정재. 사진/CJ엔터테인먼트
 
시나리오상에선 레이가 인남을 쫓아가는 동기 혹은 그 동기와 관련된 여러 요소들이 상당히 적었어요. 자기 형의 죽음만으로 인남에게 그렇게 집착한다? 복수심? 제 판단으론 너무 부족했죠. 제가 생각하고 떠올린 게 사냥감을 찾아 두리 번 거리는 사냥꾼의 느낌이었죠. 사실 복수는 동기가 아니었죠. 그저 방아쇠일 뿐이고, 형을 죽였단 이유 때문에 인남에게 내가 널 죽여도 되지?’란 이유를 준 거죠. 감독님도 이런 판단을 할 수 있게 제가 많은 부분을 주셨어요.”
 
그렇게 레이는 이정재의 해석을 통해 완전한 인물이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배우에겐 쉽지 않다. 본인이 이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수 많은 레이어를 입히고 또 입힐 여지가 많았다. 하지만 그건 반대로 작품 전체로 보자면 굉장히 위험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감독이 생각하는 전체의 색깔이나 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관객들에게 어떤 설득력을 부여해야 했다. ‘레이를 만들어 가면서 줄 수 있는 설득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맹목적으로 인남을 추격해 가는 데, 사실 관객 분들 입장에선 왜 저렇게 집착을 하지싶을 수도 있어요. 복수를 해야 하니까? 그것 만으론 부족하죠. 더욱이 대사도 별로 없잖아요(웃음). 뭔가 레이가 왜 이러는지를 관객 분들도 공감하셔야 하는데. 그게 뭘까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관객 분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주자는 게 제 해답이었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나오는 장면도 사실 작은 설정이지만, 뭔가 레이의 인간미를 빼는 작업이었죠. ‘저 사람은 뭐야 대체?’ 이런 느낌을 주고 싶었죠.”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그런 인간미 없는 레이의 광폭할 정도의 잔인함과 지독한 집착은 액션에서도 드러난다. 아니 액션이 사실상 레이의 대사였다. 레이와 인남은 영화에서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두 사람은 눈빛으로 대화를 한다. 때에 따라선 주고 받는 주먹질과 칼부림 그리고 총질을 통해서 대화를 한다. 그게 이 영화에서 레이와 인남이 주고 받는 감정이었다. 고도로 계산된 액션과 그 액션의 디자인은 그래서 치밀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부상까지 입었다. 그 만큼 격렬했다.
 
총기 액션이 정말 많았죠. 하지만 총기 액션은 합이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 그게 개의치는 않았어요. 예전에 태풍찍을 때 받은 훈련도 도움이 많이 됐고. 그런데 칼 액션과 육탄전 액션은 얘기가 다르죠. 첫 액션이 태국에서 제가 악당들을 제압하는 장면인데, 7명을 연속으로 제압을 해야 하는 장면이라 연습만 나흘 정도 걸렸어요. 그리고 촬영을 하는데 왼쪽 어깨가 하고 다쳤죠. 예전 빅매치때 다친 곳이라 걱정도 됐지만, 어쩔 수 없이 왼손을 최소화 시키는 액션으로 수정해서 촬영을 끝냈어요. 아직도 수술은 못했는데, 해야 할 거 같아요.”
 
사실 이 영화를 찍기 전 이정재가 가장 궁금했던 점은 따로 있었다. 연출을 맡은 홍원찬 감독도, 이정재의 상대역인 황정민도. 이정재 본인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히든 카드로 이 배우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었으니. 바로 영화 속 유이란 인물을 연기한 박정민이었다. 박정민의 존재감을 묻는 질문에 이정재는 옅은 웃음을 띠면서 엄지 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여전히 이 영화의 최고는 박정민이라고 단언하면서.
 
배우 이정재. 사진/CJ엔터테인먼트
 
시나리오를 보면서 제일 궁금했어요. 도대체 이 배역을 누가할까. ‘이 배역 누구 생각하냐고 물으니 박정민이라고 하더라고요. 전 속으로 진짜 꿈도 야무지다라고 생각했죠. 아니 박정민은 주연 배우잖아요. ‘오피스에서 홍원찬 감독과 인연이 있다고 해도 그 배우가 이런 파격적인 역할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근데 집에서 제가 혼자 곰곰이 생각해 봤죠. ‘만약 내게 이 배역이 들어오면?’ 전 할 거 같더라고요. 정민이하고는 사바하때도 함께 했었는데. 그 친구 성향이라면 무조건 할 거 같았어요. 그리고 나중에 촬영한 걸 봤는데, 진짜 감탄만 나오더라고요. 이건 연기가 아니라 완벽한 변신이에요. 박정민 아니면 안 되는 배역이에요.”
 
이정재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외에도 자신의 연출과 출연까지 겸하는 헌트로 이슈 몰이 중이다. 특히나 이 영화에는 최고의 절친 정우성이 출연을 검토 중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개봉을 앞두고 공개된 첫 연출작 소식으로 여러 관심을 받고 있는 중이다. 무려 21년 전 태양은 없다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뒤 영혼의 단짝이 된 정우성과는 현재 회사까지 함께 운영 중이다. 이후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작품을 보고 싶단 팬들의 바람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 팬들의 소원이 이젠 이뤄질 수 있을까.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하하하, 우선 우성씨한텐 4년 전부터 함께 하자고 한 작품인데 4년 동안 퇴짜를 맞고 있어요. 오늘 인터뷰 끝나면 VIP시사회가 있는데 우성씨도 오기로 했거든요. 끝나고 또 꼬셔봐야죠(웃음). 뭐 둘이 공감대는 있어요. 더 나이 들기 전에 한 번 같이 하자. 그런데 남들이 주는 시나리오에선 답이 안 나올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한 8년 전부터 우리가 기획해서 하자 싶어서 준비를 했는데. 이번 영화에 나올지는 모르겠어요. 하하하. 아직 결정된 게 아니라서. 오늘도 가서 꼬셔 봐야죠. 우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어떻게 봤는지부터 물어봐야죠. 하하하.”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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