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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고독’, 그 잔인함에 대하여
2022-09-23 04:01:01 2022-09-23 04:01:01
그리 크지 않은 집 거실 중앙, 어머니의 굽은 등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작년 초까지 부모님 집이라 불렀다. 하지만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 집이라 부르는 공간이다. 휑한 집에서적당히잔뜩의 중간 어디쯤에 존재하는 듯한 굽어진 어머니의 등을 보면서 순간 공포가 내게 쏟아져 들어왔다. 공포의 실체는 고독이다. 고독이라는 공포.
 
활기찬 성격으로 온 동네를 휘어잡고 살아온 어머니였다. 그런데 그날 어머니 집은 어둑한 집안 공기 속 고독의 습기가 온통 가득했다. 마치 집안 전체에 가득했던 공기를 눅진한 곰팡이가 짓누르는 듯하게 느껴졌다. 그런 어머니 모습을 보면서 나와 내 아내, 그리고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전기세 아낀다며 불을 끄고 있었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거실 전등 스위치부터 켰다. 커튼도 걷어 버렸다. 집안을 장악한 고독의 습기를 조금이나마 덜어내려고 잠시나마 어머니의 말동무를 하고 집으로 건너왔다. 여러 자기계발서를 필두로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고독을 즐겨라. 사별 후 홀로 남은 팔순 노모의 삶을 보면서도 그 말을 할 수 있을지 난 묘한 헛웃음이 터졌다.
 
이제 겨우 40대 중반의 내가 고독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건 아들 때문일 것이다. 고독한 삶, 누군가에겐 늙어서 맞이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단지 장애가 있거나 장애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나 일찍부터 맞닥뜨리는 현실에 대한 공포가 됐다. 그게 두렵고 무섭다
 
요즘 부쩍 잔소리가 심해지고 있다. 제때 끼니를 챙겨 먹지 않는 아내에게 건강을 위해 끼니만이라도 잘 챙겨 먹으라고 닦달한다. 야채를 먹지 않아 변비로 고생 중인 딸에겐 야채 먹으라고 잔소리한다. 물론 둘 다소 귀에 경읽기. 아들은 부쩍 소리를 지르는 행동이 많아졌다.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음성틱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녀석도 사춘기가 왔는지 목소리를 낮추라는 잔소리에 더 큰 소리로 반항하곤 한다. 나 혼자만 꼰대가 돼 가는 듯하다. 내게도 기묘한 고독이 피어 오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꼰대가 나쁜 것인가 싶은 생각으로 고독을 밀어내려 노력해 본다.
 
얼마 전 영화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며 극중 남편 강진봉(류승룡)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측은함을 느꼈다. “그의 모습이 내 모습 같았다는 구태의연한 비유는 필요 없다. 그냥 영화를 보는 내내 진봉의 모든 게 다 이해됐다. 서툴지만 표현하고 있었고, 표현하고 있었지만 서툴기에 닿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걸 몰라주는 아내의 마음이 서운했다. 자식들의 냉랭함이 서운했다.
 
진봉의 어깨가 굽어 보였다. 그 굽은 어깨 뒤로 밀려오는 고독이 무서워 보였다. 그는 무서워서 그랬을 것이다.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굳건하게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너무 무서웠을 것이다. 진저리 나게 무서웠을 것이다.
 
영화 마지막엔 찬란하게 빛나는 잔치의 화려함이 돋보인다. 부러울 정도다. 사실 이 장면, 장례식이다. 극중 진봉의 아내는 폐암 말기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장례식을 즐기고 생을 마감하는 감사한 선물을 받는다. 그리고 혼자 남겨진 진봉의 모습이 다시 등장한다.
 
오늘 저녁, 퇴근길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할 생각이다. 통화를 하는 동안이라도 고독의 습기는 잠시 건조해질 수 있지 않을까 란 기대를 품고. 저녁을 먹고 나면 아내와 아들 그리고 딸과 함께 동네 산책을 나갈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삶, 고독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을 생각이다. 고독한 삶, 그건 정말 별로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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