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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미덥지 않은 '떨리는 사과'
2022-01-13 06:00:00 2022-01-13 06:00:00
신년벽두부터 참혹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2022년이 시작된 지 불과 닷새만에 평택 청북읍 냉동창고 신축공사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진압에 투입됐던 소방관들이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로부터 닷새 뒤 광주 서구 화정동에서는 신축 중인 아파트가 무너져 내려 근로자 6명이 실종됐다. 정부가 합동수사본부까지 꾸려 수색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추가 붕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쉽지 않은 상황이다. 
 
두 사건 모두 정확한 사고원인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속속 드러나는 정황들을 곱씹어 보면, 이번에도 부실공사 등이 원인이 된 인재라는 인상이 강하게 든다. 현장으로 급파된 취재기자들의 타전을 보고 있자면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죄어 온다.  
 
늘 그렇듯 사고 처리는 같은 패턴으로 돌아가고 있다. 공사를 진행하는 대기업 대표가 현장을 찾아 책임을 통감한다며 머리를 숙이고, 희생자와 가족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정부 역시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책임자를 추려 입건하고, 기업에 대한 압수수색과 부실시공·관리감독 소홀 등의 책임을 물어 적정한 선에서 관련자들을 구속하고, 이들에 대한 기소와 함께 중간수사결과 발표 형식으로 그동안의 수사결과를 국민 앞에 설명하고, 기소된 책임자들의 공판이 열리고, 1심·2심·3심이 진행 돼 형이 확정되고… 
 
그나마 이런 반복적 절차도 기소된 책임자들의 1심 판결이 선고된 이후에는 사실상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산업재해, 특히 대형 참사의 원인을 분석하다보면 꼭 마주치는 원칙이 있다. 미국 보험회사가 발견한 하인리히 법칙이다. 본 사건·사고 발생 전 유사 사고가 발생하고 그에 앞서 전조 증상이 동반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법칙 활용의 최종 목표는 본 사건·사고의 예방과 방지다.
 
임인년 1월에 발생한 이 두 사고도 전조와 유사사고가 있었다. '평택 화재' 사고의 경우 이미 지난해 3월 시공사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아 과태료까지 처분 받았다. 2020년 이천 한익스프레스 화재사고와 2021년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도 발생했다.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의 전조는 더 선명했다. 2021년 6월9일 철거 건축물이 시내버스를 덮치면서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다. 이 사고 건축물의 철거를 맡은 회사가 이번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 시행사인 현대산업개발이다.  
 
당시 사고 현장을 찾은 권순호 대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사고가 발생해 아직도 마음이 떨리고 있다"고 말했다. 7개월 만에 발생한 이번 사고로 역시 사고 현장을 찾은 유병규 대표는 "있을 수 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저희 현대산업개발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사죄와 사고수습·피해회복에 대한 약속 역시 같았다. 판박이 수준이다.
 
경찰은 현대산업개발의 2021년 6월 사고의 원인을 건물해체 과정에서 수평하중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공사 강행이었다고 발표했다. 지난 9일 발생한 '광주 신축아파트 붕괴 사고' 원인 역시 미루어 짐작이 간다. 
 
이들은 왜 있을 수 없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사고를 반복해 내는 것이며, 우리는 왜 이들의 똑같은 사과를 계속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사람 사는 세상이니 사고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동일한 사고가 반복된다는 것은 온전히 그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문제다. 현대산업개발의 '떨리는 사과'가 그래서 미덥지 않다.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비슷한 사건에 분노하고 절규하다가도 막상 시간이 지나면 잊고 지낸다. 그 결과가 때로는 아파트 붕괴로, 음주 교통사고로, 여객선 침몰로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이번 사건도 그렇다. 
 
어쨌든 이번 사건은 간발의 차로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하게 됐다. 이 법은 1월27일부터 시행으로, 소급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이 항상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가 망각을 반복하는 한, 참사는 계속되기 마련이다. 결국 어이 없는 참사를 막을 수 있는 주체는 결국 우리 자신 아닐까. 
  
최기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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