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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풍경)'세기의 기증' 이건희 컬렉션, 꼭 봐야할 작품은
‘세기의 전시’ 베일 벗자 한달 치 매진
2021-07-31 07:00:00 2021-07-31 07: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 입구에 들어서니 초대형 화면이 관객들을 맞습니다. 장맛비가 잦아들고 인왕산이 자태를 드러냅니다. 기차바위, 코끼리바위, 치마바위 곳곳에 낀 운무는 98인치 삼성 로고가 박힌 TV 밖으로 흘러나올 듯 합니다. 5분10초 분량의 이 화면을 보다보면 1751년 5월 하순, 붓에 먹을 적시며 높이 330여m의 바위산을 바라보는 겸재의 시선이 압도적으로 다가옵니다.
 
이건희 홍라희 부부가 처음으로 수집한 국보 ‘인왕제색도’를 새롭게 재해석한 ‘인왕산을 거닐다’라는 제목의 영상.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이 영상과 ‘인왕제색도’를 비롯해 고려 불화 ‘천수관음보살도’ 등 45건 77점의 국보와 보물을 모은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을 열고 있습니다. 그간 이 전 회장의 기증 작품이 일부 공개된 적은 있지만, ‘이건희 컬렉션’ 대표작들로만 구성한 대규모 전시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만1600여점의 기증품 중 국보와 보물 77점을 이번 전시에서 선보입니다. 지난 26일 박물관을 찾아 이재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와 꼭 보고와야 할 작품과 전시에 대한 설명을 들어봤습니다.
 
이재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이번 전시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는 호암미술관 '위대한 문화유산을 찾아서'의 연속 전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많은 문화유산을 수집하고 기증해주셨지만 그 전에도 호암미술관 전시에서와 같이 한국을 문화 강국으로 만드는데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런 의미를 살려서 전시 제목을 지은 것이고"
 
이 전 회장의 뜻에 따라 1995∼1998년 호암미술관과 호암갤러리에서 세 차례 진행한 ‘위대한 문화유산을 찾아서’와 연결되는 전시입니다. 생전 한국을 문화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이건희 회장의 업적을 기리고자 이번에도 전시명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생전 이 전 회장은 당대 최고의 기술과 디자인이 집약된 문화유산으로부터 기업의 미래를 보곤 했습니다.
 
"2만1600여점의 기증품 중에는 국보와 보물 비롯한 국가 지정문화재가 60점이나 포함돼 있다. 그동안 가치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작품들 위주로 전시를 하고 있는데, 특히 문화 유산이라는 것은 각 시대 마다 최고의 기술 최고의 디자인이 집약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고 이건희 회장의 경영 마인드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입니다.
 
"76세 노대가 눈에 비친 인왕산은 그 어떤 명산들보다도 친근하고 장중하게 다가왔을 것이라 생각된다. 겸재정선 특유의 먹을 쌓아올린 듯한 짙은 바위 표현을 통해서 비에 젖은 하얀화강암 모습이 (흑백대비로) 효과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인왕제색도 나무 한그루한그루까지 산에 대한 애정이 잘 담겨 있는 그림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사경과 부처가 반겨줍니다.
 
"고려시대 사경 100건이 전시돼 있다. 금은빛으로 빛나는 사경 속에는 옛 사람들의 열망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문화유산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먼저 사경으로 소개해드리고 싶었다. 사경을 보고 난 뒤 빛나는 금빛 부처를 만나게 된다. 불상들은 삼국시대 초기부터 통일신라 초기까지 우리나라 고대 불교 조각의 명품들이 한 자리에 모인 자리다. 가까이 다가가면 아주 작고 섬세한 불교 예술 세계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토기, 도자기, 금속, 조각, 서화, 목가구 등 주요 문화재와 유물을 아우르는 '세기의 기증전'입니다. "금속활자는 세계 최초의 하드웨어이며 한글은 기막히게 과학적인 소프트웨어"라던 생전 이 회장의 집념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청동방울을 보시고 나면 가운데에 한글책들이 전시돼 있다. 석보상절과 월인석보인데 조선전기 한글 창제 직후 만들어진 책이란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월인석보의 편집 디자인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보았다. 오늘날에도 글씨체나 글씨크기 등 폰트라 불리는 디자인이 깃들게 되는데 당시에는 한글, 한자의 한글 발음까지 책 한권에 녹여내야 했다. 이것을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했는지, 조선시대 디자인의 높은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 '수월관음도' 1점만을 보유하고 있던 국립중앙박물관 입장에서는 '천수관음보살도' 기증이 추가돼 고려불화 연구에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현대기술로 기증품 가치를 돋보인 면모들도 눈에 띕니다.
 
"맨 눈으로 세부를 들여다보기가 상당히 어렵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적외선과 X선으로 촬영해 제공하고 있다. 작품 앞에 놓인 터치모니터를 만지게 되면 적외선 자외선으로 촬영한 또렷한 밑그림과 안료까지 볼 수 있다. 기증받은 소중한 유산을 섬세하게 연구하고 국민들과 공유하겠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들이 널려 있다면,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이건희컬렉션' 중 가장 그림 값이 비싼 한국의 명작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국내 미술 경매 최고가 기록을 쓴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장욱진, 유영국 등의 희귀 명작들이 ‘한국 미술 명작’이란 부제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가히 ‘세기의 전시’라 할 만큼 현재 전시 예매(무료)는 치열합니다. 30분당 20명 예약을 받는 국립중앙박물관은 8월28일까지 예약이 완료된 상태입니다. 시간당 30명 예약이 가능한 국립현대미술관 역시 8월12일까지 예약 접수를 마감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는 9월2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은 내년 3월13일까지 전시 일정을 이어갑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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