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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속 역설적 희망
단순 명료한 장르적 특성 살린 연출, 소재와 이야기 ‘압축’ 효과
‘트라우마’ ‘추격’ ‘산불’ ‘재난’ 더해진 상황 속 인물들 ‘생존본능’
2021-05-13 12:22:00 2021-05-13 12:22: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장르적 특성이 뚜렷하다. 그리고 장르적 특성 안에서 스토리를 풀어가는 방식이 단순 명료하다. 스토리를 위해 여러 장치를 더하고 빼는 작업이 국내 상업영화에서 보여지는 불필요한 각색 작업의 가장 만연한 지점일 듯하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이런 점을 최소화 시켰다. 재난과 추적 그리고 대결. 단 세 가지가 압축적으로 그려지면서 꽤 강한 힘을 드러낸다. 예상할 수 있는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강력함도 있지만 의외로 유약한 면이 측면이 더 뚜렷하다. 이런 점은 드라마적 요소가 충분히 채워 버린다. 다시 말하면, 이야기의 탄탄함을 커버하는 지점이 뚜렷하다. 장르적 특성이 뚜렷해지면 필연적으로 이야기 구성력이 헐거워지는 단점을 드러낸다. 그래서 주인공의 트라우마가 주된 이야기 동력으로 흘러가지만 그건 상업 영화 범주 안에서 충분히 납득 가능한 장치로 흘려 보낼 수 있다. 추격자들의 무자비함 속에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이유도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영화 전체를 끌어 가는 중심 스토리의 힘이 그래서 중요하단 결론이 나온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이 그렇다.
 
 
 
화재가 난 곳에 낙하산을 타고 투입되는 공수소방대원 한나(안젤리나 졸리)는 과거 대규모 산불 진압 과정에서 세 명의 아이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죄책감은 한나를 더욱 더 위험 속으로 몰아 부치는 동력으로만 드러날 뿐이다. 결국 그는 자신과 팀원을 위해 스스로가 고립을 택한다. 자신이란 존재 자체가 위험이 될 것이란 점을 충분히 인지했다. 이제 홀로 고립된 상황에서 모든 것을 벗어나보려 스스로 노력하는 과정 속에 빠진다. 거대한 산림 한 복판 화재 감시탑 근무를 자원한다.
 
하지만 고립을 택한 그곳에서 한나는 자신을 괴롭혀 온 위험과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자신을 빼 닮은 듯한, 자신의 트라우마 속 소년들과 너무도 닮은 피투성이 한 소년을 만난다. 소년은 한나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냐는 말을 건 낸다. 그 말 한마디가 한나를 움직인다. 자신을 믿었던 세 명의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던 한나. ‘믿을 수 있냐는 그 말 한 마디가 도저히 빠져 나올 것 같지 않던 수렁 같은 트라우마에서 한나를 끌어 올려준다. 이제 한나는 소년을 위해 모든 것을 건다.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스틸.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제목 자체의 끔찍함처럼 두 명의 무자비한 킬러가 벌이는 추격, 그리고 그들의 추격을 막고 생면부지의 소년을 지키려 드는 한나의 싸움이다. 그들의 싸움과 함께 거대한 숲을 순식간에 삼켜 버리는 화염은 모든 것을 궁지로 몰아 넣으며 쫓는 자쫓기는 자에게 절박함을 넘어선 악다구니를 펼치게 만든다.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스틸.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거대한 권력의 이면이 모든 것을 작동시키는 듯한 힘의 균형논리가 분명히 예상되지만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에선 큰 의미는 없다. ‘누가’ ‘무엇을’ ‘에 대한 질문은 과감히 생략돼 있다. 그저 주인공들이 펼치는 행동과 처절함에 방점을 찍는다. 그 처절함이 바로 앞서 언급한 추격산불이다. 쫓고 쫓기는 과정은 화염이 몰아가는 과정처럼 누가 쫓기고 누가 쫓는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피아식별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흡사 토끼 몰이를 하듯 한나와 소년을 몰아 붙이는 두 명의 추격자들은 결과적으로 자신들도 빠져 나올 수 없는 구덩이 속에 갇힌 상황을 인지하게 된다. 이젠 죽고 죽이는 문제가 아니라 누가 살아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생존만 남는다.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스틸.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드라마로 시작한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추격 서스펜스가 더해지고 생존을 위한 강렬한 액션이 더해지면서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의외로 예상 밖의 감정이 마지막에 자리하고 있다. 주인공 한나가 겪고 있던, 그를 괴롭히던 트라우마 그리고 피투성이 소년이 겪게 될 또 다른 트라우마에 대한 고통이 사라지는 마법이다. 두 사람은 또 다른, 그리고 분명하게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존재하고 있는 희망에 대한 실마리를 보게 된다. 끔찍한 단어로만 이뤄진 이 영화의 제목이 역설적으로 희망을 그리고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결말의 밝음은 그래서 꽤 의미가 깊어 보인다.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스틸.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안젤리나 졸리의 강인한 연기가 압권이다. 쓰러질 듯하면서 쓰러지지 않는 그의 강렬함은 여성과 모성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다른 지점을 이끌어 낸다. 졸리만의 특별함이 아니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압도적인 이미지가 강력할 뿐이다. 국내에 팬층이 두터운 니콜라스 홀트 그리고 메이즈러너시리즈, 미드 왕좌의 게임으로 국내에 낯익은 에이단 길렌이 무자비한 두 명의 추격자로 등장한다. 5 5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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