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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학교 가는 길’에서 만난 ‘이 세상’이란 괴물
강서구 특수학교 ‘서진학교’ 설립 과정 ‘기록’, 발달장애 부모들 ‘투쟁’
‘설립 호소’ 발달장애 부모 vs ‘설립 반대’ 지역 주민 ‘충돌’ 대립 결말
2021-05-04 12:13:10 2021-05-04 12:13:1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관점을 고민해 본다. 우선 좋아하는 것. 왜 좋아하는지, 무엇 때문에 좋아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좋아하는지, 누가 그것을 좋아하는지. 수백 가지를 넘어서 수천 가지라도 댈 수 있다. 그럼 싫어하는 것. 왜 싫어하는지부터 무엇 때문에, 누가 그것을 어떻게 싫어하는지까지. 좋아하는 것을 떠올려 보면 점점 더 긍정적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그 대상에 대한 호의와 선의를 갖게 된다. 결론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그 존재로 인해 나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또 다른 수용체가 된다. 하지만 반대로 싫어하는 것은 ‘이유’와 ‘목적’이 처음에는 분명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싫어하는 것’에 대한 개념은 완벽하게 단순해 진다. 그냥 싫은 것뿐이다. 존재 자체로 나 개인의 이익을 침해하는 해로운 객체가 된다. 여기까지 오게 되면 ‘싫어하는 것’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차별’이란 이름의 또 다른 개념이 등장한다.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이 담아낸 ‘세상’이란 이름의 괴물이 그랬다.
 
 
 
‘학교 가는 길’, 늦잠 자고 헐레벌떡 뛰어가는 누구에게나 있는 길, 오늘과 내일도 같을 평범한 그 길이 아니다. 오전 6시부터 시작한다. 아침부터 전쟁이다. 세수와 양치질과 아침밥 먹기와 옷입기. 오전 7시 집 근처 스쿨버스를 타야만 한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편도 1시간 30분. 왕복 3시간. 아이는 그렇게 하루 24시간 가운데 3시간을 스쿨버스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한 여학생의 매일 아침 등굣길 풍경이다. 이 여학생은 발달장애인이다.
 
영화라고 불러야 할지, 기록물의 대체어인 ‘다큐멘터리’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스크린에 투영된 이 상황 속 저 학생의 등굣길은 도대체 왜 저래야 할까. 사실 이유는 명확하다. ‘좋아하는 것’이 극단적으로 흘러가다 보니 ‘싫어하는 게’ 너무도 명확해져 버린 어른들의 이기심이 저 학생에게 고통스럽고 무의미하고 고단한 매일의 아침을 선사했다. 강서지역 특수학교인 서진학교 설립 과정에서 나온 ‘무릎 꿇은 학부모’ 사진이 탄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큐 '학교 가는 길' 스틸.
 
사정은 이렇다. 강서구에 사는 발달장애인 학생들은 해당 지역 특수학교에 등교할 수 없다. 이미 강서구에 자리한 한 곳의 특수학교는 정원이 포화상태다. 이건 서울시 다른 구도 마찬가지 현황이다. 강서구 장애인부모연대 소속 학부모 일부는 자녀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호소를 시작했고, 한 교육 부지가 특수학교 설립 해당 부지로 선택을 받았다. 하지만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해당 지역구 정치인이자 정부 여당의 유력 정치인 한 명이 이 부지에 ‘국립한방병원 유치를 선언한 것이다. 교육 부지에 병원 설립은 불가능하다. 교육청이나 해당 정치인 누구도 부지 용도 변경에 관한 권한이 없다. 문제는 이 정치인의 무책임한 발언이 사태를 일파만파로 키워버린 데 있다. 그의 말을 믿은 지역 주민들과 학교가 필요한 장애 부모들 사이에 갈등이 시작됐다.  
 
‘학교 가는 길’은 이유를 찾는 기록이 아니다. 과정을 담아낸 그릇이다. 모든 ‘다큐멘터리’는 기록을 통해 관객에게 각각의 이유를 찾게 하는 전환점을 제시하지만 ‘학교 가는 길’만큼은 다르다. 이 안에는 지금도 학교 가는 길이 현재진행형인 이유가 그대로 담겨 있다. 때문에 그 이유가 ‘왜’ 생겼는지에 대한 ‘과정’에 집중한다. 그래서 발달장애 학생들이 비장애 학생들과 달리 단지 학교를 갈뿐인 그 길이 왜 그렇게 멀고 험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유, 아니 그 과정을 때로는 아래로 내려가고 또는 위로 거슬러 올라가며 탐구한다.
 
다큐 '학교 가는 길' 스틸.
 
이유를 불문하고 피해는 고스란히 발달장애 학생들의 몫이다. 앞으로도 제2, 제3의 서진학교 사태는 계속해서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묻는다. 그래서 호소한다. “특수학교가 내 집 앞에 들어선다” “당연히 싫다고 할 것이다” “당신들의 그 마음도 존중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교육이다” “이해해 달라” “무릎이라도 꿇고 부탁한다” 이에 대한 방어도 난무한다. “왜 하필 우리 동네냐” “못사는 동네 더 못살게 만들고 있다” “우리가 장애인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고쳐야 하는 것 아니냐”.
 
하지만 진짜 근본적 문제는 ‘학교 가는 길’이 아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 질문하는 우리도 대답을 하는 우리도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걸 말하기 두려울 뿐이다. ‘그냥 싫은 것’이라는 차가운 진실을 말하기 싫을 뿐이다. 
 
다큐 '학교 가는 길' 스틸.
 
‘학교 가는 길’은 강서 지역의 주거 환경 시스템 실패 원인 그리고 기존 폐교 직전 학교의 학습권 조정 문제가 ‘서진학교’ 문제를 만들어 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표면적 이유다. 진심은 따로 있다. 질문하는 발달장애인 부모들도 질문을 받고있는 특수학교 반대 주민들도 그 진심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입밖으로 내 뱉을 순 없다. 대의를 위한 반대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냥 장애인 관련 시설이 혐오스러운 것이다. 장애인과 함께 하는 것이 그저 싫은 것뿐이다.
 
끝내 서진학교는 개교를 했다. 하루 왕복 3시간의 멀고 멀었던 ‘학교 가는 길’은 이제 비장애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학교 가는 길’이 됐다. 그 길은 어른들이 ‘무언가’를 주고 또 ‘무언가’를 받은 대가로 얻어진 길이다. ‘학교 가는 길’에서 무릎을 꿇고 호소했던 부모들은 안타까워했다. 화를 냈다. 당연한 걸 받기 위해 당연하지 않은 걸 줘야만 하는 부당한 시스템은 장애와 비장애의 문제가 아닌 이 세상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 분노다. 
 
다큐 '학교 가는 길' 스틸.
 
결과적으로 ‘학교 가는 길’이 담아낸 여정은 차별에 관한 것이었지만 보다 단순해질 필요를 말한다. 그건 그냥 좋고 싫음의 문제다. 그 문제는 두 가지 중 ‘싫음’이 극단적으로 확장된 상황에서 만들어 낸 ‘차별’이란 대체제의 허울뿐인 포장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어른들의 시선이 이토록 치졸하다. 어쩌면 장애는 학교에 가는 학생들이 아닌 아주 조금 다른 그들을 맹목적으로 싫어만 하는 마음을 여과없이 드러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우리 모두를 부르는 진짜 이름일지 모를 일이다. 개봉은 5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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