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낙원의 밤’ 태구와 배우 엄태구 그 사이의 간극
영화 속 주인공 이름 ‘태구’, 박훈정 감독 엄태구 모르고 작명
“날 믿고 주연 맡겨 준 감독님에게 보답하겠단 마음뿐이었다”
입력 : 2021-04-20 00:00:01 수정 : 2021-04-20 00:0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젠 대한민국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참 이상하긴 하다. 배우 엄태구는 작품 속 배우가 아니라면 도대체 납득하기 힘들 정도의 심약한 심성으로 주변을 긴장하게 한다. ‘조금 쎈질문을 잘못할 경우 얼굴에서 실제로 식은 땀이 흘러 내리는 게 보일 정도이니 말이다. 눈동자는 핵폭탄 지진을 일으키는 것처럼 진동한다. 그런데 이런 엄태구가 유독 작품에서만큼은 완전 딴 사람이 된다. 특히 잔인하고 냉혈한 캐릭터는 엄태구가 대한민국에서 최고라고 자부해도 될 정도이니 말이다. 영화 차이나타운속 피도 눈물도 없는 깡패 역, 영화 밀정에서의 친일파 하시모토는 엄태구가 아닌 작품 속 배역으로 오롯이 대중들에게 각인돼 있다. 다시 말하지만, 작품을 경계로 안과 밖의 엄태구는 전혀 딴 사람이다. 차이가 너무 커서 가늠이 안될 정도이니 말이다. 박훈정 감독의 신작 낙원의 밤에서의 엄태구도 여전히 안과 밖이 너무 다른 모습이라 적응하기 힘들 정도였다. 작품 속 엄태구는 어둠의 세계 속 프로페셔널 조직원이다. 하지만 밖의 엄태구는 질문 하나에 식은땀을 흘리며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리는 목소리로 긴장감을 드러냈다. 이 배우, 정말 희한하긴 하다.
 
배우 엄태구. 사진/넷플릭스
 
한국형 누아르 장르 대표작으로 불리는 신세계를 만든 박훈정 감독이 다시 한 번 심혈을 기울여 연출을 한 낙원의 밤은 작년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초청을 받았었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감독과 배우들 모두 참석을 하진 못했다. 엄태구 입장에서도 배우로서 평생 다시 없을 기회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을 것이다. 당시 아쉬움부터 먼저 물었다.
 
당연히 초청됐단 얘기를 듣고 너무 깜짝 놀랐어요. 감독님에게도 축하 드린다 연락 드리고 여빈 배우에게도 연락하고. 속으로 나도 베니스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는구나 싶었죠(웃음). 당연히 코로나19’ 때문에 못 갈 가능성이 큰 것은 알았는데 잠잠해 지길 기도했거든요. 그런데 결국 못 가게 됐고. 솔직히 너무 아쉬웠죠. 제 배우 인생에 또 그런 행운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배우 엄태구. 사진/넷플릭스
 
그만큼 아쉬움이 컸지만 엄태구에게 낙원의 밤은 아직도 꿈 같은 작품임에는 틀림 없다. 우선 엄태구가 데뷔한 이후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 배역을 맡았다. 가장 분량이 많은 메인 주연이다. 그리고 포스터에도 그의 얼굴이 가장 크게 나온다. 무엇보다 엄태구가 정말 놀란 것은 영화 속 배역 이름이 태구. 엄태구는 시나리오를 받고 눈을 의심했다고 한다. 놀랄만한 일임에는 분명했다.
 
“’주인공 이름이? 태구했죠. 감독님에게 저 생각하고 쓰신 거냐고 물었는데. 그건 아니라고 하셔서 하하하(웃음). 굉장히 예전에 쓰신 시나리오인데 나중에 엄태구란 배우가 있단 걸 알고 감독님도 놀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낙원의 밤출연 제의를 받고 밀정때가 생각 났어요. 김지운 감독님이 절 믿고 그런 큰 배역을 주셨는데 어떤 식으로든 기대에 보답하겠단 생각뿐이었거든요. 이번에도 딱 그런 마음뿐이었어요.”
 
배우 엄태구. 사진/넷플릭스
 
앞서 차이나타운에서 누아르 장르를 한 번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박훈정 감독의 누아르는 그 강도와 색깔이 전혀 다르다. 국내 영화계에선 하나의 또 다른 장르로 인식이 된다. 더욱이 본인 스스로도 메인급 주연이 이르다’ ‘밀정 당시가 생각났다는 말처럼 부담감이 강력했단다. 또한 영화 속에선 이런 저런 강력한 표현과 이미지 그리고 그걸 소화해야 하는 배우 엄태구의 태구가 있어야 했다.
 
우선 제가 상당히 마른 체형이잖아요. 뭔가 강인한 이미지를 주려면 체중을 좀 불려야 겠더라고요. 단백질 보충제를 정말 많이 먹었어요. 9kg정도 증량을 했는데, 촬영 기간 동안 다시 살이 빠져서 너무 속상했죠(웃음). 영화 속에서 기억 나는 장면을 꼽자면 목욕탕 나체 격투 장면인데, 저만 올 누드였어요(웃음). 시간이 흐를수록 되게 외로워지더라고요. 하하하. 근데 또 그 덥고 습한 곳에서 다른 스태프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촬영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다잡았죠.”
 
배우 엄태구. 사진/넷플릭스
 
낙원의 밤은 엄태구의 강렬한 연기가 중심이지만 사실 진짜는 영화 속 배경인 제주도의 화려한 풍광이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영화 속 처연하고 잔인한 얘기는 극렬한 대비를 주면서 낙원의 밤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어 버렸다. 엄태구는 이런 영화 속에 존재하면서 낙원의 밤제주도의 대비되는 공간을 넘나드는 색다른 경험을 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정말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제주도 촬영이에요. 매 순간순간이 너무 황홀했어요. 어느 순간에는 촬영이란 걸 잊어 버릴 정도로 강렬했어요. 한 번은 촬영 끝나고 해안도로를 달리며 밖을 보는 데 너무너무 멋진 광경에 힐링이 되고 순간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그리고 제주도에서 감독님이 맛 집을 정말 많이 데려가 주셨어요. 영화 속에 등장한 물 회가게하고 아이스바닐라라떼 카페는 정말 최고였어요.”
 
배우 엄태구. 사진/넷플릭스
 
낙원의 밤이 최고인 점은 당연히 엄태구란 배우가 만들어 낸 태구란 인물의 강렬하고 처연한 분위기가 압권이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태구가 그렇게 보인 것은 그의 옆에 존재하는 재연이란 소녀의 아우라도 큰 몫을 했다. ‘재연을 연기한 전여빈과 엄태구는 이번이 첫 만남은 아니다. 김지운 감독 밀정에서 함께 했었다. 하지만 당시 엄태구는 비중 있는 조연, 반면 전여빈은 이름도 없는 단역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전여빈은 영화 죄 많은 소녀를 통해 충무로 연기 괴물이 됐다.
 
“’죄 많은 소녀를 보고 연기 괴물이란 기사 타이틀을 봤는데, 이번에 함께 작업한 뒤 정말 연기 괴물이구나를 몸으로 느꼈어요. 여빈 배우가 절 보고 향수 같은 배우라고 했단 기사를 봤는데(웃음), 여빈 배우야 말로 연기 괴물이면서 향수 같은 배우라고 부르고 싶어요. ‘낙원의 밤에서 여빈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전여빈을 찾을 수 없더라고요.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제 눈에는 재연이었어요.”
 
배우 엄태구. 사진/넷플릭스
 
엄태구는 충무로에서 유명한 형제 영화인이다. ‘감독 류승완-배우 류승범에 이어 두 번째 형제 영화인으로 유명하다. 그의 친형은 감독 엄태화. 2016년 동생 엄태구와 강동원을 출연시킨 가려진 시간으로 장편 데뷔를 했다. 현재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이 출연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연출 중이다. ‘낙원의 밤속 엄태구의 연기에 대해 형 엄태화 감독의 코멘트가 궁금했다.
 
“(웃음)저희가 정말 말이 없어요. 형과 제가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니라 그냥 둘 다 성격이 그래요. 뭔가 막 부족한 점이 보일 것 같아도 별로 말을 안해요. 제가 그래도 용기를 내서 물어보면 괜찮았다’ ‘재미있던데정도가 최고의 칭찬이에요. 모르죠(웃음) 뒤에서 다른 분들하고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하하하. 낯간지러워서 그럴 거에요. 저도 형 영화 보고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가 너무 쑥스러워요. 조만간 형이 낙원의 밤을 볼 텐데 뭐라 할지 궁금하긴 해요. 진짜 오늘 보라고 한 뒤 물어봐야겠네요(웃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 뉴스카페
  • email
  •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