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증권사 직원들도 감정노동자다
입력 : 2021-04-20 06:00:00 수정 : 2021-04-20 14:01:14
우연수 증권부 기자
"칼만 안 맞을 뿐, 경찰까지 출동할 정도로 신변의 위험을 느낀 적이 있다" "협박에 못이겨 고객에게 사비로 손실 금액을 물어주기도 했다"
 
최근 주식 직접투자와 파생상품 투자로 손실 을 본 투자자들이 증권사에 노골적으로 화풀이하면서 증권사 직원들이 말 못할 고충을 겪고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진행한 증권업 종사자들에 대한 정신건강 실태 조사를 진행한 결과 그들의 호소는 심각한 수준이다.
 
물론 증권사의 불완전판매에 넘어가 피 같은 돈을 잃은 투자자들의 고통은 말로 표현을 못할 것이다. 상품의 부실 가능성을 알아채지 못하고 고객에게 금융상품을 권유한 판매사에 면죄부를 주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증권사 영업점 현장의 일개 직원이 불완전판매의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느냐의 문제는 별개로 봐야하지 않을까. 회사 윗선에서 상품을 기획했고, 그 상품의 판매 성과를 요구 받는 직원 입장에서 상품 자체의 결함을 인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장 일선에서 투자 손실에 대한 민원과 책임까지 모두 떠안아야 하는 구조적 문제는 이들의 정신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종사자 10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43%가 우울을 경험하고 있으며, 수면장애와 불안증을 겪는 경우도 상당했다. 
 
수면제나 알코올에 의존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진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10년간 증권업 종사자의 자살 사건은 19건에 달한다.
 
증권사 직원의 고충에 대해 회사 안팎에서는 개인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짙다. "그만큼 돈을 잘 벌지 않나", "실적 채우려고 무리하게 일했구만" 이라는 인식이 파다하다. 정신적인 문제를 회사에 호소할 경우 업무평가에서 부정적인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부담감이 노동자를 옥죄고 있다. 
 
이와 관련 국회에서는 금융투자업계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한 국회의원은 최근 금융사 고객 응대 직원에 대한 보호 수준을 강화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금융사가 노동자의 정신적·신체적 피해에 대해 치료나 상담을 지원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다.
 
수년 전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됐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업 현장에서는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개인투자자들의 직접 투자가 급증하고,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새 파생상품이 등장하는 만큼 금융사 직원들의 그늘은 짙어지고 있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으로 금융사 직원들의 책임은 더욱 막중해졌다. 고객에게 모든 상품 정보를 설명해야하고 그 과정을 녹취하거나 기록에 남겨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고객의 불만도 직원이 고스란히 소화해야 한다.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 취지는 이해하지만 부실 판매의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해서는 안된다. 세상에 '당해도 싼 사람'은 없다.
 
우연수 증권부 기자 coincidenc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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