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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공모주 투기판 만드는 ‘따상’ 규정 뜯어고쳐야
2020-10-28 01:00:00 2020-10-28 01:00:00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증시에 이름 올린 지 채 보름도 지나지 않았는데 투자자들의 피로감은 상당해 보인다. 파파라치에 의해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는 슈퍼스타처럼, IPO 한참 전부터 공모가를 정하고 청약을 거쳐 상장한 후 지금까지 빅히트의 모든 일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탓이다. 
 
알다시피 좋은 얘기는 아니다. 상장 전에는 칭찬과 기대 일색이더니 지금은 푸념 토로를 넘어 비난 수준에 이르렀다. 
 
당연히 그 이유는 주가 하락 때문인데, 이건 누가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상장일의 시초가 35만1000원이 눈에 박힌 사람은 반토막났다고 생각하겠지만, 공모가 산정 때부터 비싸다고 했던 사람은 지금도 여전히 비싸다고 할 것이다. 증권사들의 의견도 크게 엇갈리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무튼 이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빅히트의 공모주 투자자들도 그렇게(비싸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상장 첫날 대부분 공모 때 받은 주식을 처분해 이익을 실현했다. 
 
비싸다고 생각하면서도 공모에 참여한 이유는 이들의 관심사가 적정주가가 아닌 ‘먹고 나올 수 있느냐’에 있기 때문이다. 공모가 13만5000원은 비싸지만 그보다 2.6배 더 높은 35만1000원에 팔 수 있다는 기대감, 그리고 이 기대감을 현실로 만들어준 장치가 바로 ‘따상’으로 대변되는 IPO 시초가 규정이다.
 
공모주는 상장 첫날 거래를 시작할 때 동시호가에서 주문을 받아 공모가의 90~200% 범위에서 시초가를 결정할 수 있게 돼 있다. 한쪽은 공모가의 2배인데 반대쪽은 –10%를 범위로 둔 것도 이상하지만 어쨌든 규정에 따라 공모가가 1만원이면 9000원에서 2만원 범위에서 시초가가 결정된다. 시초가가 정해지고 나면 즉시 시초가에서 다시 가격제한폭 ±30%까지 움직일 수 있다. 1만원이 공모가인 주식은 이론상 2만6000원, 즉 공모가의 2.6배까지 오를 수 있다.  
 
빅히트도 공모가의 200%로 시초가를 정한 뒤 상한가로 직행해 35만1000원을 기록했다. 그리고 ‘따상’ 1분만에 하락을 시작했다.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공모가는 기관들이 수요예측에서 써낸 가격을 바탕으로 정해진다. 기관은 투자 전문 집단이다. 그들은 상장후보기업과 주관사가 제출한 기업자료를 분석 평가해 얼마나 인기를 얻을 지까지 감안해서 가격을 적어낸다. 그러니까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들의 집단지성이 공모가 산정에 영향을 준다. 이 정도면 공모가는 실제 해당 기업의 가치를 가장 근사치로 평가한 가격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집단지성의 산물이 상장 당일에 2.6배로 뻥튀기되는 것이다. 공모가 정하고 상장하기까지 한 달도 안 걸리는데 그 사이 기업가치가 2.6배로 커졌다는 말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저 2.6배까지 키울 수 있게 판을 만들어줬으니 그 판을 적극 이용하는 것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투기판이다. 
 
공모가를 2배로 불려서 거래를 시작해야 할 이유가 없다. 기관의 평가가 잘못됐다면 상장 후 시장에서 알아서 평가할 것이다. 그걸 굳이 첫날에 ‘뻥튀길’ 이유가 없다. 
 
만약 공모주를 200%까지 오를 수 있게 열어줘야 한다면 그게 공모주에 국한될 이유는 없다. 그럴 바엔 전체 상하한가 폭을 50~200%로 넓히거나 가격제한폭을 없애는 게 맞다. 
 
빅히트 사태의 주범은 높은 공모가가 아니라 시초가 90~200% 규정에 있다. IPO 시장이 투기판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 규정의 폐지를 고민해야 한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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