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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종이꽃’ 유진 “삶과 죽음 다시 생각해 볼 기회 되길”
“시나리오 재미있었지만 ‘대선배’ 안성기 출연 고민 없이 선택”
“영화 속 고양이 장례 장면, 이 영화 촬영 전 실제 반려묘 장례”
2020-10-26 00:00:01 2020-10-26 00:0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요정이었다. 그냥 요정도 아니다. ‘원조. 비주얼과 실력을 겸비한 1세대 여성 아이돌 그룹 S.E.S의 비주얼 센터였다. 3040세대에겐 유진이란 이름은 요정의 다른 말이었다. 압도적인 비주얼을 앞세운 유진은 당시 남심 킬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그게 사실이었다. S.E.S 활동 이후 아이돌의 당연한 수순처럼 연기로 전향했다. 여러 드라마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스크린도 당연했다. 물론 그 이후 어느 순간 유진은 사라졌다. 1세대 아이돌 스타의 수순이었고, 정해진 길이었다고 하면 좀 서글플 수도 있다. ‘요정에서 가수그리고 배우에서 자취를 감춘 그는 배우 기태영의 아내가 됐다. 이제는 원조 요정그리고 유진이란 말보단, ‘기태영의 아내란 말보다도 그를 부르는 말이 생겨 버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로희, 로린)이 엄마가 바로 유진이다. 여러 육아 예능프로그램, 그리고 뷰티 프로그램에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오던 유진이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스크린에 등장했다. 2009요가학원이후 무려 11년 만이다. 대배우 안성기와 함께 한 저예산 독립영화 종이꽃이다. 그는 연기가 고팠고, 스크린이 그리웠다며 이번 복귀를 너무 즐거워했다.
 
배우 유진. 사진/로드픽쳐스
 
무려 11년만의 스크린 복귀가 그를 설레게 하는 원동력인 듯했다. ‘원조 요정이지만 이젠 ‘40대 아줌마라며 웃는 유진의 모습은 영락 없는 두 딸의 엄마이자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남자 팬들의 레전드 스타가 공존하는 묘한 느낌도 있었다. 그는 어떤 쪽이든 너무 감사하고, 또 즐거운 추억이며 내가 즐겁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현재에 감사하다고 첫 인사를 했다.
 
아직도 S.E.S의 유진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너무 감사하죠. 영화에서 제 딸로 나온 재희부모님이 실제로 쟤 또래 분들이세요. 재희가 촬영 전에 저한테 엄마! 예전에 유명한 가수였다면서요하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하하하. 영화를 해 본지는 벌써 11년이나 지났네요. 첫 촬영에 들어가는 데 정말 설레였어요. 너무 좋은분 들만 계셨고, 진짜 규모나 이런 게 문제가 아니라 진짜 좋은 사람들로만 이뤄진 너무 좋은 현장이었어요.”
 
다소 무거운 주제, 그리고 저예산 독립영화 등 상업 배우로서 선택하기엔 사실 종이꽃은 악조건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이 영화에 가장 먼저 캐스팅된 안성기세 글자는 유진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대한민국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라면 누구라도 그럴 만했다. 원조 국민배우와의 작업은 인연이 없다면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배우 유진. 사진/로드픽쳐스
 
전 정말 술술 시나리오가 읽혔어요. 주제는 당연히 무거운데 영화 보셨으니 아시잖아요. 되게 따뜻하면서도 재미도 있어요(웃음). 근데 사실 진짜 출연을 결정한 이유는 시나리오에 매료된 것도 있지만 안성기 선생님때문이란 걸 부인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도대체 어떤 분일까 궁금했죠. 현장에서의 선생님? 큰 소리 한 번을 안 내세요. 아니 그냥 왜 대배우고, 왜 국민배우라고 불린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대선배안성기가 장의사로 출연하는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죽음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당연히 무겁고, 관객의 입장과 생각에 따라선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주제다. 출연 배우들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을 듯싶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지만 대면하고 마주해야 할 시간에선 결코 대면하고 싶지 않고, 또 마주하기 싫은 것도 죽음이다. 유진은 그런 점은 고려 대상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전 지금도 그렇고 예전에도 그랬고. 죽음에 대한 거부감은 없어요. 신앙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죽음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의 감정까지 부정하고 싶진 않아요. 당연하죠. 하지만 저희 영화를 보시면 오히려 죽음과 삶에 대해 긍정적인 영향을 받으실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해요. 각자 삶의 방향과 가치관까지도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 '종이꽃' 스틸. 사진/(주)스튜디오보난자
 
죽음에 대한 얘기를 하던 중 영화 속에서도 등장하는 고양이 장례장면에 대한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영화에선 장의사성길(안성기)이 유진이 연기한 은숙의 딸 노을과 함께 길고양이의 장례를 치르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의 장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절차와 과정까지 고스란히 나온다. 유진도 이 장면을 눈 앞에서 본 기억이 있다며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
 
“’종이꽃촬영 전에 저희 고양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어요. 그때 저희도 장례를 치러줬는데,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과 거의 비슷한 과정으로 마지막 인사를 했었죠. 반려견과 반려묘에 대한 장례 문화도 이젠 일반적이라고 하더라고요. 보시는 분들에 따라선 너무 과한 것 아닌가란 시선을 보낼 수도 있는데, 이것도 실제하고 또 하나의 가족을 보내는 과정이라고 보시면 될 듯해요.”
 
촬영을 하다가 웃지 못할 묘한 상황을 맞이한 적도 있단다. 아니 사실은 촬영을 끝내고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종이꽃이 첫 공개가 된 상황에서 맞이한 광경이었다고. 영화 속에서 은숙과 지혁(김혜성)이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있다. 사실 이 장면은 아주 심각하고 위험한 감정을 담고 있다. 하지만 부산영화제에서 상영 당시 이 장면을 보는 관객들이 폭소를 터트렸다고. 당시 유진과 김혜성 모두 너무 당황했지만 연출을 맡은 고훈 감독님 만큼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고.
 
배우 유진. 사진/로드픽쳐스
 
그 장면이 진짜 되게 위험하고 심각한 감정을 담은 장면인데, 관객 분들이 너무 웃으시는 거에요(웃음). 저랑 혜성이가 너무 당황해서 둘이 서로 얼굴을 보며 이거 뭔 상황이지싶었다니까요. 하하하. 며칠 전 언론 시사회에서 다시 보니 기자 분들이 또 웃으시던데(웃음). 작년 영화제 이후 감독님에게 도대체 왜 관객 분들이 웃죠라고 여쭤보니 다 내가 계산한 연출이다고 하시더라고요. 하하하. 그 계산이 뭔지는 아직 저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근데 며칠 전 언론시사회에서 보니 사실 제가 봐도 웃기긴 하더라고요. 하하하.”
 
이번 종이꽃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드라마 펜트하우스촬영도 시작했다. 두 딸이 아직 어려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진 못하더라도 좋은 작품이 있다면 결코 놓치고 싶지 않단다. 물론 남편과의 스케줄 조정은 필수라며 웃는다. 남편과 함께 배우 부부로서 사는 게 만만치 않다는 유진이다. 본인이 작품 활동을 할 때 육아는 남편의 몫이다. 반대로 남편이 좋은 작품을 만난다면 두 딸의 엄마로 유진은 컴백이다.
 
배우 유진. 사진/로드픽쳐스
 
이게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에요(웃음).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일해주시는 이모님이 계시지만 세밀한 손길을 아빠와 엄마가 담당을 해야 되잖아요. 지금은 남편이 집에서 아이들 담당을 해주고 있어요. 너무 고맙죠. ‘배우 부부선배님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오셨는지 궁금도 해요. 하하하. 이런 시기에 만약 남편에게도 좋은 작품이 오면 어쩌죠. 하하하. 이모님을 한 분 더 모셔야 하는 건지. 하하하. 뭐 좋은 작품이 오기만 한다면 그땐 남편과 함께 깊은 고민을 해봐야 할 거 같아요. 로희야 로린아, 엄마 아빠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중이다. 하하하.”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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