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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훈

성범죄 모의만 해도 처벌한다…잠입 수사도 도입

정부, 합동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 심의·확정

2020-04-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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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최근 텔레그램에서 이른바 'n번방', '박사방'이 운영되는 등 온라인에서 디지털 성범죄가 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정부가 법정 형량을 올리고, 잠입 수사를 도입하는 등 강력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23일 오전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정부는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마련한 관계부처 합동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을 심의·확정했다.
 
이번 대책은 '디지털 성범죄 근절'이란 목표에 따라 4대 추진전략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무관용 원칙 확립 △아동·청소년에 대한 보호 강화 △처벌과 보호의 사각지대 해소 △중대 범죄란 사회적 인식 확산을 설정하고, 4대 분야에서 17개 중과제와 41개 세부과제를 마련했다.
 
기존 디지털 성범죄 방지 대책이 불법 촬영 등 범죄 수단별 타깃형 대책이었던 것과 달리 이번 대책은 기업화·조직화한 신종 범죄에 대한 사각지대가 없도록 디지털 성범죄 전반을 포괄하도록 했다.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광고 행위도 처벌
 
우선 범죄의 중대성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형량이 낮아 처벌이 충분치 않았지만, 앞으로는 중대 범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정 형량을 상향할 계획이다. 특히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판매 행위에 대한 형량의 하한을 설정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고, 수요자 유인 행위를 막기 위해 SNS·인터넷 등을 통해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광고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도 신설한다. 
 
이번에 SNS 등을 통해 성폭력을 모의한 후 오프라인에서 실행하는 사례도 발생한 것과 관련해 예비·음모죄를 처벌하는 살인 등과 마찬가지로 합동 강간, 미성년자 강간도 중대 범죄로 취급해 실제 범행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준비하거나 모의만 해도 예비·음모죄로 처벌할 방침이다.
 
그동안 국민 눈높이보다 낮은 형량이 나와 불신 요인으로 작용한 양형 기준도 새로 세운다. 검찰은 지난 9일부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강화된 사건 처리 기준과 구형 기준을 우선 마련해 시행하고 있으며,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대폭 강화된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해외 도피, 사망 등의 경우에 기소나 유죄판결 없이도 몰수가 가능한 독립몰수제를 신규로 도입하고, 범행 기간 중 취득 재산을 범죄수익으로 추정하는 규정도 신설하는 등 범죄수익 환수도 강화한다. 독립몰수제는 검사가 기소 없이 법원에 몰수·추징만을 별도로 청구해 법원이 결정하는 제도다. 
 
수사 단계에서부터 사안이 중한 피의자는 얼굴 등 신상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등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신상 공개를 범위도 늘린다. 특히 유죄가 확정된 범죄자의 신상 공개 대상이 종전에는 아동·청소년 대상 강간 등 성폭력범으로 한정되던 것을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제작·판매한 자도 추가한다.
 
의제강간 기준 13세→16세 미만 상향
 
아동·청소년 보호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이들을 유인·길들여 동의한 것처럼 가장해 성적으로 착취하는 온라인 그루밍 처벌을 신설한다. 이에 따라 '성적 영상물이나 사진 요구-유포 협박-만남 요구-만남' 등 일련의 단계를 처벌한다. 이번 'n번방' 사건 등에서 다수의 피해자였던 미성년자의 보호 범위를 확대할 수 있도록 의제강간 기준 연령도 13세 미만에서 16세 미만으로 상향하기로 했다.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이 점점 은밀하게 이뤄지는 점을 고려해 탐지와 적발이 쉽도록 수사관이 미성년자 등으로 위장해 수사하는 잠입 수사도 디지털 성범죄에 도입한다. 잠입 수사는 현재도 마약 수사 등에 활용되는 수사 기법으로 우선 수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즉시 시행하고, 수사 과정에서의 수사관 보호와 향후 재판 과정에서의 증거능력 등을 고려해 법률에 근거를 마련할 예정이다.
 
온라인상 디지털 성범죄물을 더 적극적으로 적발할 수 있도록 디지털 성범죄물을 발견하면 신고하는 신고포상금제도 도입한다. 이 제도는 신고된 사람이 해당 범죄로 기소되거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으면 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또 현재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 착취물에 대해서만 소지죄로 처벌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성인 대상 성범죄물을 소지해도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한다.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구매죄도 신설해 소지하지 않고 구매만 해도 처벌하도록 한다. 이와 함께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소지로 벌금형 받은 자도 새로 학교, 어린이집 등 취업제한 대상에 포함할 방침이다.
 
이번 사건에도 연루된 미성년자와 군 장병 등을 대상으로 맞춤형 예방 교육도 마련한다. 특히 학생을 대상으로 성 인지 감수성에 기반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올바른 성 가치관과 태도를 함양하는 포괄적 학교 성교육을 진행하기로 했다.
 
성 매수 대상 아동 처벌 대신 보호 강화
 
그동안 성 매수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이 '자발적 성 매도자'인 피의자로 취급받아 소년원 감치 등 보호 처분 대상이 되는 것에 따라 신고를 주저하게 되고, 가해자는 이를 악용했던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성 매수 연루 아동 등을 '대상 아동·청소년'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을 '피해자'로 변경해 처벌 대신 보호를 강화한다.
 
온라인상 유포 피해가 주로 발생하는 취약시간대인 야간에도 신속한 지원이 이뤄지도록 한다. 이를 위해 여성가족부 산하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의 기능을 강화해 삭제 지원, 상시 상담, 수사 지원, 2차·3차 유포에 대한 추적 삭제 지원 등 24시간 원스톱 지원 체계를 가동한다. 
 
현재 피해자가 신고한 후 심의를 거쳐 사업자에게 삭제를 요청하기까지 24시간이 걸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삭제 절차도 더 간소화해 '선 삭제, 후 심의' 절차도 도입한다. 또 '예측–유포 차단–검거–삭제; 등 디지털 성범죄 대응 전 과정에 걸쳐 신속하게 탐지해 자동 필터링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인터넷 사업자가 발견 시 바로 삭제해야 할 성범죄물이 종전에는 불법 촬영물로 국한됐던 것을 디지털 성범죄물 전반으로 확대하고, 유통 방지를 위한 삭제·필터링 등 기술적 조치 의무가 웹하드 사업자에만 적용되던 것을 모든 사업자로 확대하는 등 책임도 강화한다. 이에 대한 위반 시 제재 수단으로 징벌적 과징금제도 도입한다.
 
개인정보 유출을 통한 온라인상 2차 피해와 오프라인상 직접적인 범죄 위협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피해자 주민등록번호의 변경이 필요하면 처리 기간을 종전의 3개월에서 3주 내로 단축할 방침이다. 이번에 문제가 됐던 사회복무요원의 행정기관 내 개인정보 취급도 전면 금지하고, 복무 중 정보 유출 등의 경우 제재를 강화한다.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은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를 반인륜적 범죄 행위로 간주하고, 끝까지 뿌리를 뽑는다는 자세로 온 역량을 모아 철저히 대응해 국민 여러분께서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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