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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스트레스로 극단 선택한 군인…대법 "보훈대상자"

"직무수행과 상당인과관계 인정"…원고 패소 원심 파기

2020-03-09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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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군인에게 직접적인 구타나 가혹 행위가 없었더라도 정신적 스트레스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보훈대상자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이모씨가 경북북부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보훈보상대상자 비대상 결정 취소 소송에 관한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이씨의 아들 A씨는 지난 2014년 6월9일 육군에 입대해 복무하던 중 휴가 복귀일인 2015년 5월2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소속 부대에서 정신장애 또는 적응장애 등이 예측돼 배려 병사로 지정되거나 면담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는 이후 2015년 9월 경북북부보훈지청에 국가유공자 유족 등록신청을 했다.
 
하지만 경북북부보훈지청은 2015년 12월 "망인의 사망이 군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 중 사망했다거나 군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관련한 구타, 폭언 또는 가혹 행위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 돼 자해 사망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국가유공자·보훈보상대상자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처분을 내렸다. 이에 이씨가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1심과 2심은 "망인의 자살은 주로 망인의 개인적인 사정과 정신적 어려움 등으로 그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행해진 것으로 보이므로 이 사건 처분은 적법하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망인이 상관으로부터 각종 장비와 훈련 지시, 위험 지역에 있었다는 이유로 수회에 질책을 받은 적이 있어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보이는 사실과 적성적응도 검사 결과에서 즉각적인 지원과 도움이 필요한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소속부대에서 전문 상담관과의 면담을 진행하지 않고, 가족과 연계한 관리도 하지 않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이러한 사실과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군 복무 생활로 망인의 정신질환이 발병했거나 자연 경과 이상으로 악화한 우울증으로 인해 자유로운 의지가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자살하게 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상관들이 한 질책의 내용이나 정도가 망인이 적응장애로 인한 심신상실 또는 정신착란 상태에 빠져 삶을 포기하게 만들 정도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부대 내에서 망인에 대한 구타나 폭행, 가혹 행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입대 전부터 정신과 관련 진료를 받았고, 자살 충동을 느끼고 있었던 사실이 확인된다"며 "망인이 다른 전우보다 특별히 과중한 업무를 수행해 도저히 감내하지 못하거나 극복할 수 없는 정도의 육체적 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환경에 처해 있었다고 볼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확인되지 않고, 군 생활로 인해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발병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도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A씨가 국가유공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원심 판단을 유지했지만, 보훈보상대상자에는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망인이 자살 직전 극심한 직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해 정상적인 인식 능력이나 행위 선택 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여지가 충분하므로 망인의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판단의 근거로 육군본부 심사표에 기재된 의학적 소견을 제시했다. 심사표에는 '소속 부대에서는 사망자의 과거 병력과 인성 검사상 이상 소견이 있었으나 적절한 대처를 취하지 않았고, 따라서 망인의 자살 사망은 개인적 취약성과 병영생활 자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소속 부대에서의 부적절한 대처가 복합돼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기재됐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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