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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딜런의 '예술' 알면서 왜 그러는가

나는 2018년 7월27일의 밥 딜런을 봤다

2018-08-13 09:55

조회수 : 2,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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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은 공연장에서 사진을 찍는 것 마저도 불허했다. 미 로스앤젤레스에서의 공연 때 모습. 사진/뉴시스)

밥 딜런의 공연에서 나는 '77세의 지금 이 순간 딜런'을 봤다.

거칠 게 갈라지는 목소리였지만 그는 세월이란 나이테를 입혀 노래하고 있었다. 복잡하게 편곡한 라이브는 분명 원곡과 판이하게 달랐지만, 선율 만큼은 대체로 아름답고 따스했다. 그 안에서 그는 '음악으로 자유로운 놀이'를 하고 있었다. 

곡 중간 중간 삽입된 하모니카 연주씬은 이날 베스트였다. 노구의 센 입김이 그 큰 공연장에 쩌렁 쩌렁 울렸다. 다 불고는 정체 모를 물건을 피아노 옆으로 던진 적도 있는데, 50m남짓 떨어져 있던  PRESS석에서는 육안으로 식별이 불가했다. 공연 후에도 정확히 그게 무슨 물건이었는지 아는 이는 없었다.

그를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이 거의 없는 공연이었다. 그의 얼굴을 확대해서 볼 수 있는 스크린도, 흔한 공연 포스터 조차도 걸려 있지 않았다. 백발의 곱슬머리와 거친 음색으로 툭툭 뱉어내는 단어들, 음정이나 박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이 그의 몇 안되는 표식이었다.

그런 제약에 한 편으로는 '소리'에 더 집중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내는 소리 하나, 하나에 숨 죽인 듯 귀 기울였다. 읊조리는 말투 때문에 그야말로 노벨상 수상자의 '낭독' 수준에 가까운 경험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관중들은 오히려 더 '온 몸'으로 들었다. 그의 행동과 말투 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긴장한 채 보고 있다는 느낌이 역력했다. 

불친절했지만 그래서 더 특별한 경험이었다. 다른 공연에서는 느낄 수 없는.

2시간여의 공연은 그렇게 노래만 줄창 하다 끝났다. 8년 전 '땡큐, 팬(Thank you, Fan)'이라고 외쳤던 그가 그냥 팬들을 지그시 바라보고 떠나자 PRESS석에선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이 여기저기 터져 나왔다. "역시 대단한 노인네시군..."

공연 후 제 각각의 반응이 터져 나올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아쉽다는 이야기는 물론이고 이럴 거면 하지 말라, 소통 없는 공연은 뭣하러 하냐 등 불만을 쏟아내는 이들도 많았다. 


그게 틀린 말은 아니다. 관객 입장에서 치밀하게 따져보면 말이다. 자신이 좋아했던 명곡을 현장에서 오리지널 사운드로 듣고 싶고, 그가 해주는 소통을 기대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있었을테니까.

하지만 그의 내한이 처음이 아니란 사실을 알면 또 얘기가 다르다. 8년 전 비슷한 레퍼토리로 공연을 한국에서 한 적이 있고, 그 때 이미 우린 학습을 했다고 봐야 했다. 그런 레퍼토리가 그의 스타일이고 인생이었음을 어느 정도는 감안을 했어야 했다.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g’ On Heaven’s Door)’를 왜 과거 식 대로 왜 들려주지 않냐 따지는 이들의 목소리는 그래서 나에겐 어느 정도 공허했다.

밥 딜런은 늘 지금 이 순간의 딜런을 보여주기 바쁘다. 8년 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다. 어쩌면 과거에 안주하며 집착하는 태도가 '딜런의 신선함'을 못 보게 가린 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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