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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시론)우리 민주·입헌주의, 갈 길 아직 멀다

2018-07-26 06:00

조회수 : 1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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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놀란 평화적 촛불시위로, 헌법에 정한 탄핵심판을 통해 대통령을 파면한 나라. 그 과정에서 주권자의 명령이 전국에 울려 퍼질 때, 몰래 숨어 계엄을 준비한 자들이 있었다.
 
"불법시위 참석 및 반정부 정치활동 의원 집중 검거 후 사법 처리하여 의결정족수 미달을 유도" 한다는 내용이 구군기무사령부의 공문서에 2급 군사기밀로 담겨 국방부장관에게 보고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기무사는 또 국회가 위수령을 무효로 하는 법안을 제정하면 대통령 거부권으로 대응하고, 그 과정에서 적어도 2개월은 벌 수 있다는 분석도 했다. 쿠데타를 예방하라며 만들어 놓은 부대가 오히려 쿠데타를 준비한 것이다.
 
윤석양 이병의 공익제보로 민간인을 사찰한 존안자료가 세상에 드러나자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며 보안사령부의 이름을 기무사령부로 바꾼 게 1991년, 거의 30년이 흘렀는데도 그 본질이나 행태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었다면서 촛불시민혁명을 세계에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기무사가 이런 내용을 충분히 검토하고 준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시대착오적인 자들은 여전히 목소리를 높인다.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그 수하 노태우 등의 12.12 쿠데타에 면죄부를 준 공안검사 장윤석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했었다. 이후 특별법에 따라 다시 그들을 기소한 검사에게 기자는 하루아침에 바뀐 법리의 배경을 물었다. 그러자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물고 놓으라면 놓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여곡절 끝에 내란과 군사반란의 수괴들에게 사형선고를 했으면서도, 그래서 군사독재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달성했다고 자랑하면서도 우리는 정작 반란의 수괴가 전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계엄법과 그 시행령은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니 기무사령관은 자신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하여 국정원을 장악하고, 법령에 정해진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채 자신의 동문인 육군총장을 합참의장 대신 기무사령관에 앉혀 국정을 장악해야 한다는 내용의 문건을 역시 동문 선배인 국방부장관에게 보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건의 어디를 보아도 헌법과 법률, 주권자를 의식한 부분은 없다. 장관이 지적한 부분도 당연히 없다. 왜 계엄업무의 주무기관인 합참이 보고하지 않고 기무사가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며 지적한 적도 전혀 없다.
 
군인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며 사관학교에 들어가 40년 가까운 세월을 군대에서 보냈던 이들의 헌법과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수준은 그 정도였다. 민주화가 되었다면서도 군사독재 시절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제도로 정비하지 못한 대가는 이토록 뿌리 깊고 참담하다.
 
그러니 아버지를 대통령으로 두었던 딸을 대통령으로 옹립하고, 그 엄청난 국정농단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켜야 한다고 외치는 이들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군대여 일어나라”, “계엄령 선포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성조기를 흔들며 그토록 목청을 높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무리들 속에는 국민의 돈으로 키워낸 육사 동문들이 기수별로 깃발을 휘날리며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과 호흡을 같이했던 한 때의 집권세력이 여전히 제1야당으로 존재하며 기무사는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두둔하는 나라를 과연 민주화를 이룬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주권자로서 자신의 책임과 권리를 자각한 시민(citizen)이 되지 못한 채, 아직도 신민(臣民)의 위치에 머무른 이들이 너무도 많다.
 
하긴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임하던 대법원장과 그의 수하들이, 언론으로부터 ‘정통 법관’으로 ‘엘리트 판사’로 불리던 이들이 청와대와 재판을 거래하고, 진실이 드러날까봐 디가우징을 포함한 증거인멸을 감행한 나라에서 민주화의 완성을 논하는 것은 연목구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민주주의와 입헌주의는 기초부터 다시 검증되어야 한다. 다시는 독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철저히 정비되어야 한다. 갈 길은 아직 멀다.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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