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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민관

(피플)"창조경제센터, 존폐 앞서 객관적 평가부터"

대통령 탄핵과 함께 창조경제혁신센터도 좌초 위기…"제대로 된 평가도 없었다"

2017-03-2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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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의 연속이었다. 연일 지면을 메우는 국정농단 소식에 '이 정도였나'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지난해 불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그렇게 대한민국 국민들을 지독한 좌절감에 빠뜨렸다. 실망은 분노로 이어졌다. 글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분노에 국민들은 촛불을 들었고, 결국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로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명예를 안았고, 최순실씨와 함께 법의 심판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이제는 희망을 말해야 하는 순간, 여전히 과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곳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창한 '창조경제'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혁신센터)다. 게이트가 표면으로 떠오른 순간부터 박 전 대통령 탄핵까지 혁신센터의 존속 여부는 정치적 논쟁의 단골 소재로 활용돼 왔다. 자신들의 폐지 여부를 논하는 외부의 목소리에도 혁신센터 직원들과 소속 스타트업들은 반론 한 번 제대로 낼 수 없었다. 여론의 지적이 두려웠고, 그저 대통령을 탓할 뿐이었다. 20일 경기도 판교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백세현 글로벌협력실장을 만났다. 담당 대기업 측도, 정부 측도 아닌 혁신센터를 직접 꾸려온 실무진 입장에서 혁신센터의 과거와 지금, 그리고 미래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백세현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글로벌협력실장.사진/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뉴스토마토 남궁민관기자] "큰 동요 없이 업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센터가)폐지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라기보다, 올해에도 펼쳐놓은 사업들이 많으니 일단 성실하게 임하자는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사기가 낮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된 이후 혁신센터의 분위기를 묻자 백세현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글로벌협력실장은 덤덤하게, 그러나 긴 한숨을 토해내며 말을 이어갔다. 비단 경기센터만의 일은 아니다. '창조경제'가 사실상 용도 폐기되면서 전국에 산재해 있는 19개 혁신센터 역시 존폐 기로에 놓였다. 각 센터 직원들과 소속 스타트업 관계자들의 불안감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백 실장은 이 같은 불안감이 단순히 직원 입장에서 직장을 잃거나, 스타트업 입장에서 지원 기관을 잃는 등 각각의 이해관계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현재 혁신센터의 존폐를 논하는 핵심 이유로 '정치적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는 "지난해 9월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언론에서 취재요청이 줄을 잇고 있는데, 안타까운 점은 모든 시각이 '정치적 이슈에 따른 혁신센터의 존속 여부'에 맞춰져 있다"면서 "스타트업 생태계 지원이라는 큰 그림 하에 혁신센터의 지난 성과와 현재의 역할, 앞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에 대한 객관적 평가 없이 당장 존폐 여부만 묻고 있다"고 현 상황을 한탄했다.
 
"관련성만으로 유죄판결…최대 피해자는 대한민국 미래"
 
그럼에도 모든 논란의 시작점인 혁신센터를 둘러싼 정치적 이슈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박근혜표 창조경제를 상징하는 만큼 짊어지고 가야 할 태생적 한계였다. 백 실장은 "그저 최순실과 관련이 있거나, 정권과 관련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 같아 너무 속상했다"며 "나를 비롯해 모든 혁신센터 직원들은 정부 또는 특정 정당, 혹은 최순실을 위해 일한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스타트업 관계자들 역시 지원이 필요한 가운데 혁신센터가 생겼다고 하니 지원한 것으로, 정치적 어젠다가 작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혁신센터가 전 정권의 전유물이라는 이유로 탄핵과 마찬가지로 척결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정치적인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정책의 연속성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그는 "일본의 한 학자는 '한국은 변화에 강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차기 정권이 전 정권의 흔적들을 지우려고만 한다. 사실상 같은 역할과 기능을 하더라도 일단 갈아치우고 본다. 이는 너무나도 큰 국가적 낭비'라고 지적한 바 있다"며 "최대의 피해자는 스타트업들이자,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말했다.
 
그가 주장하는 '객관적 평가'란 무엇일까. 백 실장은 혁신센터의 최초 설립 목적에서부터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혁신센터는 스타트업 및 생태계 지원이 목적으로,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당연히 문을 닫는 게 맞다"며 "스타트업들을 위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 공론화하고, 필요성을 따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객관적 평가를 위해서는 혁신센터를 이루고 있는 3대 축인 정부, 대기업, 스타트업 등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고루 반영할 수 있는 토론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봤다. 백 실장은 "지금까지 각 센터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논의 또는 토론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정부를 비롯해 대기업, 스타트업 관계자들까지 한 데 모여 서로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개선사항을 논의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평가에 대한 공론화 과정은 향후 스타트업 지원 체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줄 것으로 확신했다. 백 실장은 "정권마다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펼쳐왔지만, 실효성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물론 이를 공론화한 적은 없다"며 "정치적 비난이 아닌 실효성에 대한 비판을 공론화함으로서 개선점을 찾아가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20일 태국 고위공무원들이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 방문해 스타트업 육성방안 등 현장 연수를 실시하고 있다.사진/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실무자가 본 장단점…"반짝지원은 그만!"
 
실무자 입장에서 그가 바라본 혁신센터에 대한 주관적 평가를 직접 내놓기도 했다. 백 실장은 "경기혁신센터의 경우 설립 이후 120개국에서 3000명이 넘는 해외 고위 관계자들이 다녀갔다"며 "이들이 오는 이유는 해외에서조차 민관이 합동으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기관을 운영하는 국가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풍부한 자금력, 기술력 그리고 네트워크를 가진 대기업과 혁신적 제품을 유연하고 민첩하게 개발할 수 있는 스타트업의 결합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혁신의 단초가 된 상황으로, 규제의 키를 쥐고 있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까지 협력할 수 있는 모델이 드물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만 이 같은 장점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꾸준한 지원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봤다. 백 실장은 "당장 중국만 해도 텐센트, 알리바바와 같은 젊은 대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며 "우리도 이 같은 기업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정권마다 뒤바뀌는 반짝 공약, 반짝 지원이 아닌 꾸준함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단점에 대한 냉철한 자기진단도 이어졌다. 민간 파트너의 제약에 대한 아쉬움이 첫째로 꼽혔다. 백 실장은 "스타트업들은 현재 자신이 입주해 있는 혁신센터 담당 대기업만 연결돼 있는 경우가 많다"며 "다른 혁신센터 담당 대기업과 원활하게 협업할 수 있는 네트워크와 함께 유사업종 중견기업들과의 연결고리도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비용 측면에서 정부의 비중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그는 "스타트업들은 효율적 예산 운용이 관건인데, 국비를 통해 지원하고 이에 의존만 하다 보니 신속성과 유연성이 떨어져 제때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민간 지원의 경우 이 같은 경직성이 덜 하기 때문에, 국비는 최소화하고 민간 지원을 최대한 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 지원을 펼치는 대·중견기업 역시 이 과정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육성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남궁민관 기자 kunggi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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