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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상범

(영화리뷰)'터널', 우스운 현실을 비꼬다

2016-08-0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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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딸의 생일 케이크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평범한 가장 정수(하정우 분)는 갑작스레 무너진 터널에 갇히게 된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다친 곳은 없지만 콘크리트로 앞뒤가 꽉 막힌 탓에 구조가 쉽지 않다.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 정수는 어떻게든 그 좁은 공간에서 삶의 의지를 드러낸다. 과연 정수는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영화 '터널''끝까지 간다'의 김성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끝까지 간다'에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누군가로부터 완벽히 통제된 상황을 힘겹게 극복해 나가는 인물을 통해 통쾌함을 안겼던 김 감독은 '터널'에서는 생명을 경시하는 우스운 현실을 과감히 비꼰다.
 
영화 '터널' 포스터. 사진/쇼박스
 
 
영화는 무너진 터널 안에 갇힌 남자를 구하는 구조과정이라는 단순한 플롯을 지녔다. 이 단순한 플롯 안에서 속수무책이고 의전만 챙기는 공직자와 생명보다 뉴스가 더 중요한 언론, 경제적 이익을 더 중시하는 부동산 관계자들을 그리며 사회에 만연한 '생명 경시'를 꼬집는다. '세월호''메르스'와 같은 과거의 참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재난물이라는 점에서 고도의 긴장감과 가족 신파적 감각이 예상되지만, 영화는 유머와 풍자로 예측을 깬다. 구조를 기다리며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정수의 생존기를 통해 웃음을 자아내는 지점과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공직자와 언론, 부동산 관계자들의 행위는 재난 영화의 전형성을 탈피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장관(김해숙 분)의 의전을 먼저 생각하는 공직자나 제목을 더 '섹시하게' 뽑아낼 생각에 "하루만 더 늦게 구출되지"라고 말하는 언론인, 생명보다 돈을 중시하는 지자체 관계자들의 행위는 데자뷔처럼 다가온다.
 
"사람들은 비슷한 것이라도 조금만 틀면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김 감독의 철학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다.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재난 물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적절한 긴장과 이완을 빠른 템포로 반복하는 구성은 시종일관 관객의 마음을 쥐락펴락한다. 눈물이 날 것 같은 순간 혹은 공포감을 느끼는 순간에 웃음이 터진다.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에 빠져들게 된다.
 
'황해''더 테러 라이브' 등 카메라 앞에서 혼자 연기하는데 익숙한 하정우는 또 한 번 자신이 입체적인 배우라는 걸 증명한다. 돌덩어리 사이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면서도 위대한 삶의 의지를 보이는 양면적인 모습을 훌륭히 표현한다. 긴장과 이완의 반복이 하정우의 얼굴을 통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정수 캐릭터 안에 인간 하정우의 매력이 녹아있으며, 이는 그가 꼭 구출되길 바라게 된다. 어떤 작품에서든 늘 자연스러운 인간을 그려왔던 하정우의 진가가 발휘된다.
 
영화 '터널' 하정우 스틸컷. 사진/쇼박스
 
 
하정우의 원맨쇼가 예상되지만, 영화는 강아지마저도 모두 주인공으로 만든다. 정의감에 불탄 대경 역의 오달수는 기존과 다른 지점의 표현력을 보여준다. 대경은 재난 물에서 꼭 등장하는 정의감 있는 역할인데, 오달수가 맡다보니 새로운 색깔을 갖게 된다. 오글거릴 수 있는 부분이 오달수의 얼굴만으로 완화된다. 아내 세현 역의 배두나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리얼한 연기를 선보인다. 배두나의 얼굴에서 남편이 구조되길 바라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과 그럼에도 남편을 꼭 살려내고 싶은 강단이 동시에 묻어나온다. 슬픔을 드러내지 않고 꾹 참아내는데, 그 과정에서 새어나오는 눈물이 더 아프게 다가온다. 그래서 배두나만 나오면 울컥하게 되며, 몇 몇 장면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인상이 깊다.
 
아울러 단 10여분 정도만 등장하는 남지현과 밉지 않은 장관을 표현한 김해숙, 하정우와 완벽한 호흡을 보인 강아지까지 모두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인다. 단순한 플롯에서 강렬한 감동이 탄생하기까지 배우들의 공이 적지 않아 보인다.
 
유머와 풍자가 가득한 덕에 런닝타임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고, 후반부에는 강렬한 감동이 있다. 영화를 보고나면 '생명의 중요성이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경시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며 되돌아보게 된다. 또 다른 불안감을 주는 엔딩은 신선하고 여운이 깊다. 7~8월에 개봉한 국내 영화 중 완성도가 가장 높다. 오는 10일 개봉하며, 상영시간은 126분이다.
 
영화 '터널' 배두나 스틸컷. 사진/쇼박스
 
 
플러스(+) 별점 포인트
 
공포와 유머를 통해 만들어낸 '긴장과 이완'의 반복 : ★★★★★
삶의 의지에 대한 위대함을 보여주는 메시지 : ★★★★
노골적이지는 않게 정곡을 찌르는 풍자 : ★★★★
카메라 앞에 혼자 있을 때 가장 빛나는 하정우 : ★★★★
남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슬픔을 온전히 간직한 배두나의 모든 것 : ★★★★
예상 밖 타이밍의 슬로우 컷으로 긴장을 불어넣은 김성훈 감독의 연출 감각: ★★★★
전형성을 탈피한 정의감을 만든 오달수 : ★★★
꼭 기억하고 싶은 10분의 남지현 : ★★★
김해숙·최귀화·유승목, 빈틈을 메운 배우들 : ★★★
또 다른 메시지를 담은 엔딩 : ★★★
기적에 가까운 연기를 보인 강아지 :
 
마이너스(-) 별점 포인트
 
조금은 더 풍성하게 만들 수도 있었던 엔딩으로 가는 길 : ☆☆☆
지나치게 몰상식했던 언론 :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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