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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오피니언)성공보수 약정이 축첩계약인가

2015-07-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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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일 변호사
지난 23일 대법원은 형사사건에서의 성공보수 약정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어긋나므로 민법 제103조에 따라 무효라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판결이다.
교과서에서는 민법 제103조를 위반한 대표적 계약으로 축첩계약(蓄妾契約)을 들고 있다. 그동안 변호사로서 의뢰인과 맺어왔던 수많은 계약들이 축첩계약 수준으로 비하되는 것을 보며 자괴감을 느낀다. 사실 연수원을 나와 개인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며 사법불신의 원인이 될 만한 거액의 성공보수 약정을 하고 형사사건을 수임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수사와 재판절차가 공정하고 투명한 과정을 통한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어떤 외부의 부당한 영향력이나 연고와 정실 극단적으로는 돈의 유혹이나 검은 거래에 의해 좌우된다고 국민들이 의심한다면 그러한 의심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법치주의는 뿌리부터 흔들리게 되고 형사절차의 공정성과 염결성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라고 판시했다.
 
판결문의 위 부분만을 보면 대법원은 성공보수약정을 ‘의뢰인이 변호사를 통하여 수사와 재판담당자들과 연고를 이용하고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는데 대한 대가’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성공보수는 ‘후불 수임료’ 보는 것이 오히려 현실에 부합한다.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하면 법적으로 보장된 모든 권리를 행사하고 그 과정에서 변호인의 도움을 받기를 바란다. 수사과정에서의 변호인 참여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지인의 소개로 찾아온 의뢰인에게 “참여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수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형사사건을 의뢰하기 위하여 변호사를 찾아오는 사람은 대부분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여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같은 경우 의뢰인은 현재는 어렵지만 사건이 마무리된 후 성공보수를 지급하겠다며 수사참여까지 요구한다. 이 때 사건을 성공하지 못하면 참여비가 포함되지 않는 착수금만을 받고 사건이 마무리되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으면 처음부터 참여비를 지급받을 때보다 조금 더 많은 수임료를 기대할 수 있다.
 
평소 알고 있던 지방에 거주하는 지인의 대학생 아들로부터 구속된 아버지의 형사사건을 맡아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는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수임료를 마련했지만 충분하지 못하다고 했다. 지방재판이라 어렵다고 하니 아들은 아버지와 따로 성공보수를 약정하시고 재판을 진행해 달라고 했다. 간곡한 청에 사건을 맡았고 다행히 좋은 결과가 있어 성공보수를 받았다. 물론 전원합의체 판결 사안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나는 의뢰인에게 재판 관여자와 연고를 기대하게 하여 사법불신을 초래한 변호사가 된다.
 
국선변호에 관한 예규(재형 2003-10) 제15조 제1항, 6의1은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된 경우에는 기본보수액의 100% 범위 내에서 증액하여 지급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선변호의 성공보수를 규정한 것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이는 적은 보수에도 열심히 사건을 수행한 국선변호사에 대한 보상인 것이지 재판부와의 연고를 이용한 사건성공에 대한 대가는 아닐 것이다. 사선 사건의 경우에도 이 같은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동안 법원은 약정된 보수액이 부당하게 과다해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형평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감액하는 방법으로 성공보수액을 조정해 왔다. 지금도 타당한 기준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대법원은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며 갑자기 기존의 판례를 파기했다. 대법원의 이번판결은 공론화 과정을 생략하여 성공보수가 약정되는 개별적인 사안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큰 아쉬움이 남는다.
 
앞으로 형사사건을 수임할 때는 “성공보수 약정은 무효이니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사정을 고려해 드릴 수 없습니다”라며 사건을 수임해야 하는데 의뢰인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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